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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1. 경지의 『사기』 읽는 방식을 비판하다 그대는 태사공太史公[각주:1]의 『사기史記』를 읽었으되 그 글만 읽었을 뿐 그 마음은 읽지 못했사외다. 왜냐고요? 「항우본기項羽本紀」를 읽을 땐 제후들의 군대가 자신의 보루堡壘에서 초나라 군대의 전투를 구경하던 광경[각주:2]을 떠올려 보아야 한다느니, 「자격열전刺客列傳」을 읽을 땐 고점리高漸離가 축筑을 타던 장면[각주:3]을 생각해보아야 한다느니 하는 따위의 말은, 늙은 서생의 케케묵은 말일 뿐이니, 부엌에서 숟가락 줍는 것[각주:4]과 뭐가 다르겠습니까?足下讀太史公, 讀其書, 未嘗讀其心耳. 何也? 讀項羽, 思壁上觀戰; 讀刺客, 思漸離擊筑, 此老生陳談, 亦何異於廚下拾匙? 아마 경지가 지난번에 연암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에 “「항우본기」를 읽을 땐 제후들의 ..
1. 경지란 누구인가? 이 편지는 경지京之라는 사람에게 보낸 답장이다. 경지가 누군지는 확실치 않다. 나는 그가 혹 당대의 저명한 서예가이자 퉁소 연주자인 이한진李漢鎭(1732~?)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있다. 이한진은 호가 경산京山이고, 자는 중운仲雲이며,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경지’는 그의 또 다른 자字가 아닐까 한다. 이한진은 감역監役이라는 말단 벼슬을 지냈을 뿐이다. ‘감역’이라는 벼슬은 대개 문과에 급제하지 못한 양반이 음직蔭職으로 하는 벼슬이다. 홍대용과 박지원도 감역 벼슬로부터 벼슬을 시작했다. 이한진은 전서篆書와 퉁소에 능하고 아취가 있었으며, 성대중成大中(1732~1809)ㆍ홍대용ㆍ이덕무ㆍ박제가ㆍ홍원섭洪元燮(1744~1807) 등과 교유했다. 성대중의 문집인 『청성집』에 ..
5-1. 총평 1이 글은 1770년(34세) 아니면 1771년(35세)에 창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암이 백탑 부근에 살 때다. 연암은 이 시기에 쓴 자신의 글을 모아 두 권의 책을 엮었으니, 하나는 『공작관 글 모음孔雀館文稿』이고, 또 하나는 『종북소선鍾北小選』이다. 전자는 1769년 겨울에, 후자는 1771년 겨울에 엮었다. 이 글은 당시 『종북소선』에 수록했던 글이다. 『과정록』에 보면 연암은 중년 이후 『장자』와 불교에 출입했다고 했는데, 이 글은 『장자』의 어법과 사고방식이 아주 짙게 배어 있다. 하지만 연암이 『장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불가지론不可知論이나 상대주의에 빠진 것은 아니다. 그는 사유를 혁신하고, 감수성을 쇄신하며, 관점을 새롭게 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장자』를 활..
7-1. 총평 1이 글은 ‘문장을 짓는 건 진실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하여, 창작의 비의秘義와 비평의 독자적 의의에 대해 언급한 다음, 최종적으로 이 모두를 종합해 독자에게 당부하는 말로 끝맺고 있는바, 앞뒤로 아귀가 딱 맞다. 2이명과 코골이! 창작과 비평에 대해 말하기 위해 구사하고 있는 이 비유는 대단히 기발하고 참신하다. 한국문학사에서 길이 기억될 만한 창조적 비유가 아닌가 한다. 3이 글은 창작과 수용의 갭에 대한 예민한 성찰을 보여준다. 이는 창작에 종사한 사람으로서 연암의 깊은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작가만이 볼 수 있는 내밀한 지점이 존재한다는 점, 작가만이 듣는 은밀한 소리가 존재한다는 점에 대한 설파는 창작의 독자적 의의 및 창작 주체의 내면에 대한 깊은 ..
4-1. 총평 1이 글은 연암이 그 제자인 이서구에게 독서의 방법을 설파한 내용이다. 아마도 연암은 이서구의 독서 태도에서 어떤 문제점을 발견했기에 이런 의론을 펼쳤을 터이다. 하지만 이 글의 의의는 그런 쪽으로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글의 의의는 연암이 자기 시대의 독서법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연암 당대의 조선에는 크게 보아 세 가지 독서법이 있었으니, 하나는 성리학적 독서법이고, 다른 하나는 고증학적 독서법이며, 또 하나는 과거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독서법이었다. 성리학적 독서법은 연암의 시대에만 있던 독서법이 아니라 조선 시대의 사대부들이 기본적으로 견지해왔던 독서법이다. 성리학적 독서법은, 성리학을 하는 데 긴요한 책들의 목록을..
23. 처음으로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다 한때 기독교에 심취했던 나에게 이슬람은 ‘이단’이었고 ‘입에 담지도 말아야 할 종교’였다. 이미 기독교계에서 그렇게 규정한 이상, 내가 아무리 ‘왜 이단인가요?’라고 의문제기를 할지라도 쓸데없는 얘기였을 뿐이다. ▲ ① 한샤뜨르(종합쇼핑몰) ② 카즈무나이가스 ③ 카작오일 ④ 위: 바이테렉, 아래: 국방부 ⑤ 대통령궁 ⑥ 모스크 ⑦ 피라미드 종교적인 위안 하지만 기독교에서 자유로워지고 나니, ‘이단’이라 생각했던 모든 종교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던. 처음엔 불교가, 그리고 그 후엔 제칠일 안식교나 이슬람교 같은 기독교의 다른 분파의 종교들이 말이다. 그런 종교들이 지금껏 뿌리 내리고 유지될 수 있던 데엔 분명히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