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답창애 (5)
건빵이랑 놀자
6. 지금을 담아내자 말하던 유한준의 아들 다시 연암이 그에게 보낸 짤막한 편지글을 한 통 더 읽어보자. 어제 아드님이 와서는 글 짓는 것에 대해 물어 보길래, “예禮가 아니면 보지를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라”고 일러 주었지요. 그랬더니 자못 기뻐하지 않고 돌아가더군요. 모르겠습니다만 아침저녁 문안을 여쭐 적에 이 말을 하던가요? 昨日令胤來, 問爲文. 告之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動, 非禮勿言.’ 頗不悅而去. 不審, 定省之際, 言告否. 「답창애지사答蒼厓之四」이다. 아마도 유한준의 아들이 아버지 편지 심부름으로 연암을 찾아왔다가 문장의 방법을 물었던 모양이다. “선생님! 글은 어떻게 써야 합니까?” 아버지와의 불편함을 눈치 챈 아들의..
4. 하늘이 저렇게 파란 데도 다시 여기서 본편의 주제(心似와 形似)와 관련된 연암의 짧은 글 세 편을 함께 읽기로 하자. 마을의 꼬맹이가 천자문을 배우는데, 그 읽기 싫어함을 꾸짖자, “하늘을 보면 푸르기만 한데, 하늘 천天자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 싫어요!”라고 합디다. 이 아이의 총명함이 창힐이를 기죽일만 합니다. 里中孺子, 爲授千字文, 呵其厭讀, 曰: ‘視天蒼蒼, 天字不碧, 是以厭耳.’ 此我聰明, 餒煞蒼頡. 전문이래야 34자에 불과한 엽서로, 「답창애答蒼厓」 즉 창애蒼厓에게 답한 세 번째 편지이다. 마을 서당에서 천자문을 가르치는데, 꼬마 녀석 하나가 자꾸만 딴청을 한다. 화가 난 훈장이 이놈! 하고 야단을 치자 그 대답이 맹랑하다. “선생님! 저 하늘을 보면 저렇게 파랗기만 한데, 하늘 ..
3. 제 목소리를 담아 문집을 지은 낙서야 이씨의 아들 낙서洛瑞가 나이 열 여섯인데, 나를 좇아 배운 지 여러 해이다. 심령이 맑게 열려 지혜가 구슬 같다. 한 번은 자신의 『녹천고綠天稿』를 가지고 와 내게 물었다. “아! 제가 글 지은 것이 겨우 몇 해이지만 남의 노여움을 산 적이 많습니다. 한마디 말만 새롭고 한 글자만 이상해도 문득 ‘옛날에도 이런 것이 있었느냐?’ 하고 묻습니다. 아니라고 하면 낯빛을 발끈하며 ‘어찌 감히 이 따위를 하는 게야?’ 합니다. 아아! 옛날에도 있었다면 제가 무엇 하러 다시 합니까? 원컨대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십시오.” 내가 두 손을 이마에 얹고 무릎 꿇고 세 번 절하며 말하였다. “네 말이 참으로 옳다. 끊어진 학문을 일으킬 수 있겠구나. 창힐蒼頡이 처음 글자를 만들 때..
2. 옛 것을 배우는 두 가지 방법 어떻게 하면 새로우면서 예로울 수가 있을까? 어찌하면 본받지 않으면서 본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새것이 옛것과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당나라 유지기劉知幾는 『사통史通』 「모의模擬」에서 옛 것을 배우는 방법을 두 가지로 제시한다. 모동심이貌同心異의 방법과 심동모이心同貌異의 방법이 그것이다. 대저 작자들이 위魏나라 이전에는 삼사三史를 많이들 본받았고, 진晉나라 이래로는 오경五經 배우기를 즐겼다. 대저 사서史書의 글은 얕고 모방하기가 쉽지만, 경전經典의 글은 뜻이 깊고 모의하기가 어렵다. 이미 어렵고 쉬운 차이가 있고 보니 얻고 잃음 또한 달라지게 마련인 것이다. 대개 겉모습은 달라도 마음이 같은 것은 모의의 윗길 가는 것이고, 겉모습은 같지만 마음이 다른 것은 모의의..
1. 진짜 같아지려 하면 할수록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는 진짜와 가짜, 같고 다름에 관한 이야기이다. 연암은 글의 처음을 ‘방고倣古’, 즉 옛날을 모방하는 문제로 시작한다. 글을 짓는데 사람들은 자기의 말과 뜻으로 하지 않고 옛것을 모방하여 짓는다. 옛것을 모방함은 옛 사람과 거의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꼭 같게 하면 되는가? 그 결과 읽는 이가 이것이 옛글인지 지금 글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우리의 글쓰기는 성공한 것일까? 옛것을 본떠 글을 지음을 마치 거울이 형상을 비추듯 하면 비슷하다 할 수 있을까? 좌우가 서로 반대로 되니 어찌 비슷함을 얻으리요. 그렇다면 물이 형체를 그려내듯 한다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본말이 거꾸로 보이니 어찌 비슷하다 하리오.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 할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