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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호기롭던 차천로,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한 상반된 평가 『소화시평』 권하 21번도 에피소드가 있는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이 많긴 해도 재밌는 부분이며 홍만종의 시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우선 이규보의 일화로 시작한다. 당시의 글 잘 짓는다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규보는 일필휘지로 302운이 제시된 시의 차운시를 적어나간다. 그래서 홍만종은 이규보가 재빨리 시를 적어나가는 것에 대해 “비록 바람을 탄 돛단배나 군진 속의 전투마라도 쉽게 그 빠름을 견주질 못했다[雖風檣陣馬, 未易擬其速].”라는 매우 인상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지금의 방식으로 얘기하자면 ‘KTX만큼 빨랐고 롯데월드타워 123층 전망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만큼 잽쌌다.’는 식의 표현이 될 것이다...
21. 이규보와 차천로의 기개 李白雲嘗赴吳濮陽世文之邀, 一時文士咸集. 酒闌, 吳出所著三百二韻詩, 索和. 白雲援筆步韻, 韻愈强而思愈健, 浩汗奔放, 雖風檣陣馬, 未易擬其速. 又五山車天輅, 文章雄健奇壯. 李提督如松, 歸時索別語, 五山作七言排律一百韻, 半日而就, 如長江巨海, 愈寫而愈不窮. 體素李公, 嘗稱李奎報後一人. 五山嘗爲兵曹假郎廳, 戱題騎省壁上曰: “休將爛熟較酸寒, 一枕黃梁宦興闌. 天上豈無眞列宿, 人間還有假郞官. 愁看雁鶩頻當署, 笑把蛟龍獨自彈. 作此半生長寂寂, 烟江閒却舊漁竿.” 感慨激昻. 世或病其蛟螭蚯蚓, 往往相雜. 余則以爲五山詩長篇大作, 滾滾不渴, 其馳驟之際, 不遑擇言. 雖有少疵, 此猶鄧林枯枝, 滄海流芥. 해석 李白雲嘗赴吳濮陽世文之邀, 백운 이규보는 일찍이 복양 오세문이 초대한 자리에 갔는데 一時文士咸集...
백운소설(白雲小說) 목차 이규보(李奎報) 1최초로 중국에 알려진 우리나라의 시을지문덕 - 與隋將于仲文2진덕여왕의 태평송진덕여왕 - 致唐太平頌3최치원의 솜씨와 한계최치원 - 檄黃巢書4唐書不立崔致遠列傳議 5최치원까지의 문단(文壇)의 흐름최치원 - 登潤州慈和寺박인범 - 涇州龍朔寺閣박인량 - 使宋過泗州龜山寺6귀신이 지은 시를 완성하여 장원급제한 정지상 7정지상과 김부식의 악연한시미학산책8시적 재능이 특출난 오세재지봉유설보한집 역옹패설吳德全戟巖詩跋尾9죽림칠현을 본받았던 죽림고회와 나와의 인연 10동급자들과 지은 시가 중국에서 유행하다 11꿈속의 꿈을 통해 신세를 한탄한 이규보 12백거이를 닮은 나 13오류선생 같은 백운거사白雲居士傳14구양수가 국화꽃이 진다는 걸 몰랐다며 나무란 왕안석은 잘못했다 15좋은 시 감식..
줄거리와 인용 이규보(李奎報) 1화: 성의 가계와 성의 어렸을 적 이야기서막이 ‘성’이란 이름을 지어줌 ⇒ 그의 할아버지 모 때부터 주천에 살게 되었음 2화: 성의 관직진출과 승승장구, 그리고 위기국성에게 도연명과 유영 같은 친구들이 있어 몇 날 며칠이고 함께 놀음 ⇒ 임금이 불렀을 때 벼슬을 사양했지만 결국 총애를 받아 ‘국선생’이라 불리게 됨 ⇒ 그의 세 아들이 아버지의 빽을 믿고 멋대로 한 통에 모영의 상소문이 올라왔고 세 아들은 자결로 친구인 치이자(鴟夷)도 자살로 목숨을 끊음으로 국성은 쫓겨남. 3화: 지족의 지혜로 위기를 극복하고 삶을 잘 마치다‘제(배꼽)’과 ‘격(가슴)’에서 도적떼가 일어나자 아무도 나서지 못하자 쫓아낸 국성을 추천함 ⇒ 국성은 일망타진함 ⇒ 상동후란 벼슬을 받았고 2년 후..
6. 닫는 글: 자본이 쳐둔 그물망을 전태일 정신으로 넘기 용산참사에선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쌍용차 사태로 22명의 희생자가 났다. 도합 28명의 목숨이 자본의 촘촘한 그물망에 걸려 사라지고 만 것이다. ▲ 두 사태에 대해서는 오히려 여론이 모든 것을 덮어씌웠다. 박근혜의 목숨〈 28명의 목숨 2006년에 박근혜 대표가 ‘5세훈이’의 유세를 위해 단상에 오를 때, 칼날테러를 당했다. 상처가 깊지도 않았는데, 테러범(?)은 연일 언론에 신상을 털렸고 징역 10년형을 구형 받았다. ▲ '살인적 테러리즘이 발붙지 못하도록 엄정수사하라'며 여론이 들끓었다. 한 사람이 단지 살짝 상처 입었다는 이유로 이와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면, 28명이 목숨을 잃은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더 극적인 상황이 연출됐어야 맞다. 하..
7. 정지상과 김부식의 악연 侍中金富軾, 學士鄭知常, 文章齊名一時, 兩人爭軋不相能. 世傳知常有, ‘琳宮梵語罷, 天色淨琉璃’之句, 富軾喜而索之, 欲作己詩, 終不許. 後知常爲富軾所誅, 作陰鬼. 富軾一日詠春詩, 曰: ‘柳色千絲綠, 桃花萬點紅.’ 忽於空中鄭鬼批富軾頰曰: “千絲萬點, 有孰數之也? 何不曰 ‘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 富軾頗惡之. 後往一寺, 偶登厠, 鄭鬼從後握陰卵, 問曰: “不飮酒何面紅?” 富軾徐曰: “隔岸丹楓照面紅.” 鄭鬼緊握陰卵曰: “何物皮卵子?” 富軾曰: “汝父卵, 鐵乎?” 色不變. 鄭鬼握卵尤力, 富軾竟死於厠中. 해석 侍中金富軾, 學士鄭知常, 文章齊名一時, 시중 김부식과 학사 정지상은 문장으로 한 때에 이름을 나란히 했지만 兩人爭軋不相能. 두 사람은 종알거리며 서로 화목하질 못했다. 世傳知常有,..
신의(新意)로 시를 쓰게 된 이유답전리지논문서(答全履之論文書) 이규보(李奎報) 고려 중기 이후엔 동파를 본받아 시를 짓는 게 유행이었다月日, 某頓首, 履之足下. 間闊未覿, 方深渴仰, 忽蒙辱損手敎累幅, 奉翫在手, 尙未釋去. 不惟文彩之曄然, 其論文利病, 可謂精簡激切. 直觸時病, 扶文之將墮者已, 甚善甚善! 但書中譽僕過當, 至況以李杜, 僕安敢受之. 足下以爲‘世之紛紛效東坡而未至者, 已不足導也. 雖詩鳴如某某輩數四君者, 皆未免效東坡, 非特盜其語, 兼攘取其意, 以自爲工. 獨吾子不襲蹈古人, 其造語皆出新意, 足以驚人耳目, 非今世人比.’ 以此見褒抗僕於九霄之上, 玆非過當之譽耶? 공부가 깊지 못해 부득이하게 신의(新意)를 쓰게 됐다獨其中所謂之創造語意者, 信然矣. 然此非欲自異於古人而爲之者也, 勢有不得已而然耳. 何則? 凡效古人之體..
이규보李奎報: 1168(의종 22)~1241(고종 28) 초명은 인저(仁低),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ㆍ지헌(止軒). 1168년 12월 16일 부친 이윤수(李允綏)와 모친 김씨의 아들로 출생. 초명은 인저(仁氐), 자는 춘경(春卿). 황려현(黃驪縣) 사람. 1171년 4세 부친이 성주(成州) 원(員)으로 부임하였으므로 임소로 따라감. 1174년 7세 부친이 내시(內侍)로 발령되어 다시 개성으로 돌아옴. 1178년 11세 숙부인 직문하성(直門下省) 이부(李富)가 부른 ‘지(紙)’자 운(韻)을 받아, 여러 낭관(郎官)들 ‘지로장행모학사 배심상재국선생(紙路長行毛學士 盃心常在麴先生)’이라고 지음 1181년 14세 문헌공도(文憲公徒)가 되어 성명재(誠明齋)【최중(崔沖)이 설치한 구재(九齋)】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