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21. 호기롭던 차천로,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한 상반된 평가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21. 호기롭던 차천로,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한 상반된 평가

건방진방랑자 2021. 10. 28. 16:51
728x90
반응형

호기롭던 차천로,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한 상반된 평가

 

 

소화시평권하 21도 에피소드가 있는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이 많긴 해도 재밌는 부분이며 홍만종의 시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우선 이규보의 일화로 시작한다. 당시의 글 잘 짓는다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규보는 일필휘지로 302운이 제시된 시의 차운시를 적어나간다. 그래서 홍만종은 이규보가 재빨리 시를 적어나가는 것에 대해 비록 바람을 탄 돛단배나 군진 속의 전투마라도 쉽게 그 빠름을 견주질 못했다[雖風檣陣馬, 未易擬其速].”라는 매우 인상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지금의 방식으로 얘기하자면 ‘KTX만큼 빨랐고 롯데월드타워 123층 전망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만큼 잽쌌다.’는 식의 표현이 될 것이다.

 

이규보라고 하면 답전리지논문서[答全履之論文書]에서 한시를 지을 때 누군가를 모방하기보다 자신만의 시어인 신의(新意)로 시를 지어야 한다고 했던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한문 임용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늘 이인로와 대비하며 공부를 하곤 했었다. 전리지에게 답변한 글에서도 이규보의 호방함은 여실히 잘 나타나 있는데 이번 글에서도 그는 거침이 없었고 막힘이 없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休將爛熟較酸寒 잘 나갈 때를 궁핍하던 때와 견주지 말라.
一枕黃梁宦興闌 한 번 베개 베어 황량몽을 꾸니 벼슬살이 흥취가 재미 좋았네.
天上豈無眞列宿 하늘에 어찌 진짜 임시 낭관이 없겠는가?
人間還有假郞官 인간 세상에 오히려 임시 낭관이 있는데.
愁看雁鶩頻當署 기러기와 오리걸음으로 자주 서명하라하는 정식 관리를 근심스레 보다가
笑把蛟龍獨自彈 이무기가 홀로 스스로 움츠리는 상황을 웃으며 파악해본다.
作此半生長寂寂 이 반 평생을 오래도록 적적하게 만드느라
烟江閒却舊漁竿 안개 낀 강에서 한가로이 낚시대를 놀려두었네.

 

바로 이런 일화를 통해 그 다음에 등장하는 차천로의 이야기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고려시대의 대표 문인인 이규보의 거침없는 문장 실력이 조선시대에 이르면 차천로에게서 그대로 발현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이춘양의 일찍이 이규보 이후로 거침없이 시를 짓는 일인자[嘗稱李奎報後一人].’라는 칭찬까지 싣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뒷받침하기 위해 병조의 임시낭관이 되어 장난스럽게 쓴 시까지 실어 놨다. 그만큼 차천로라는 사람이 임시낭관이란 벼슬에 있으면서도 사람에게 기가 눌리지 않을 정도로 호기로웠으며, 심정적으로 호기로운 정도를 넘어서서 아예 시까지 즉석에서 시어 보여줄 정도였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지금과 같이 비정규직이 엄청 늘어난 시대에 생각해보면 결코 차천로의 행동이 쉽지 않다는 걸 더 쉽게 알 수 있다. 그건 차천로 스스로 자기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이러한 시적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홍만종도 차천로의 그런 기개는 높이 샀었나 보다. 그러니 이 글의 끝부분에 양경우의 평가를 삽입하며 그의 거침없던 재능을 기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 자신이 볼 때에도 차천로의 기개는 엄청 났으며 그가 지은 작품들도 조금의 흠은 있다 해도 전체적으론 괜찮다고 본 것이다.

 

양경우와 홍만종은 차천로의 거침없는 시작 재능과 작품의 질이 좋다고 본 반면 남용익은 그렇지 않다고 보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차천로가 병풍 뒤에서 시를 짓던 일화와 일본에서 모기장에 시를 짓던 일화를 들려주며 다작 작가로 충분히 어필한다. 하지만 바로 그 뒤에 평론을 덧붙이며 다만 그의 글엔 좋은 글은 적고 나쁜 글은 많아 후대에 전해지는 것이라면 실제로 어렵다[但蛟螭少而螻蚓多, 傅後則實難].’고 혹평을 가하고 있다.

 

이런 평가엔 옳고 그름은 없다. 자신이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냐에 따라 차천로에 대해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한 개인에 대한 평가가, 그의 시적 자질에 대한 평가가 아예 상반적으로 나누어지는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한다. 그만큼 입체적으로 한 사람을 볼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인용

목차

상권 목차

하권 목차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