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新意)로 시를 쓰게 된 이유
답전리지논문서(答全履之論文書)
이규보(李奎報)
고려 중기 이후엔 동파를 본받아 시를 짓는 게 유행이었다
月日, 某頓首, 履之足下. 間闊未覿, 方深渴仰, 忽蒙辱損手敎累幅, 奉翫在手, 尙未釋去. 不惟文彩之曄然, 其論文利病, 可謂精簡激切. 直觸時病, 扶文之將墮者已, 甚善甚善! 但書中譽僕過當, 至況以李杜, 僕安敢受之. 足下以爲‘世之紛紛效東坡而未至者, 已不足導也. 雖詩鳴如某某輩數四君者, 皆未免效東坡, 非特盜其語, 兼攘取其意, 以自爲工. 獨吾子不襲蹈古人, 其造語皆出新意, 足以驚人耳目, 非今世人比.’ 以此見褒抗僕於九霄之上, 玆非過當之譽耶?
공부가 깊지 못해 부득이하게 신의(新意)를 쓰게 됐다
獨其中所謂之創造語意者, 信然矣. 然此非欲自異於古人而爲之者也, 勢有不得已而然耳. 何則? 凡效古人之體者, 必先習讀其詩, 然後效而能至也. 否則剽掠猶難. 譬之盜者, 先窺諜富人之家, 習熟其門戶墻籬, 然後善入其室, 奪人所有, 爲己之有, 而使人不知也. 不爾, 未及探囊胠篋, 必見捕捉矣, 財可奪乎? 僕自少放浪無檢, 讀書不甚精, 雖六經子史之文, 涉獵而已, 不至窮源. 況諸家章句之文哉? 旣不熟其文, 其可效其體盜其語乎? 是新語所不得已而作也.
동파를 제대로 본받은 것은 좋은 것이다
且世之學者, 初習場屋科擧之文, 不暇事風月. 及得科第, 然後方學爲詩. 則尤嗜讀東坡詩, 故每歲榜出之後 人人以爲‘今年又三十東坡出矣’ 足下所謂‘世之紛紛’者是已. 其若數四君者, 效而能至者也. 然則是亦東坡也. 如見東坡而敬之可也, 何必非哉? 東坡, 近世以來, 富贍豪邁, 詩之雄者也. 其文如富者之家金玉錢貝, 盈帑溢藏, 無有紀極. 雖爲寇盜者所嘗攘取而有之, 終不至於貧也. 盜之何傷耶? 且孟子不及孔子, 荀楊不及孟子. 然孔子之後, 無大類孔子者, 而獨孟子效之而庶幾矣. 孟子之後, 無類孟子者, 而荀楊近之. 故後世或稱孔孟; 或稱軻雄. 荀孟者, 以效之而庶幾故也. 向之數四輩, 雖不得大類東坡, 亦效之而庶幾者也, 焉知後世不與東坡同稱, 而吾子何拒之甚耶?
제대로 본받지 않고 그저 가져다 쓴 것은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然吾子之言, 亦豈無所蓄而輕及哉. 姑藉譽僕, 將有激於今之人耳. 昔李翺曰: “六經之詞, 創意造言, 皆不相師, 故其讀『春秋』也, 如未嘗有『詩』. 其讀『詩』也, 如未嘗有『易』. 其讀『易』也, 如未嘗有『書』. 若山有恒華, 瀆有淮濟.” 夫六經者, 非欲夸衒詞華, 要其歸率皆談王霸論道德與夫政敎風俗興亡理亂之源者也. 其辭意宜若有相襲, 而其不同如此.
所謂今人之詩, 雖源出於『毛詩』, 漸復有聲病儷偶依韻次韻雙韻之制, 務爲雕刻穿鑿, 令人局束不得肆意, 故作之愈難矣. 就此繩檢中, 莫不欲創新意臻妙極, 而若攘取古人已導之語, 則有許底功夫耶?
근체시가 확립된 시기의 시인들도 본받지 않고 시를 지었다
請以聲律以來近古詩人言之, 有若唐之陳子昂․李白․杜甫․李翰․李邕․楊․王․盧․駱之輩, 莫不汪洋閎肆, 傾河淮倒瀛海, 騁其豪猛者也. 未聞有一人效前輩某人之體, 刲剝其骨髓者. 其後又有韓愈․皇甫湜․李翺․李觀․呂温․盧同․張籍․孟郊․劉․柳․元․白之輩, 聯鏕竝轡, 馳驟一時, 高視千古. 亦未聞效陳子昂若李杜楊王而屠割其膚肉者. 至宋又有王安石․司馬光․歐陽脩․蘇子美․梅聖兪․黃魯直․蘇子贍兄弟之輩, 亦無不撑雷裂月, 震耀一代. 其效韓氏皇甫氏乎? 效劉柳元白乎? 吾未見其刲剝屠割之迹也. 然各成一家. 梨橘異味, 無有不可於口者. 夫編集之漸增, 蓋欲有補於後學. 若皆相襲, 是沓本也, 徒耗費楮墨爲耳, 吾子所以貴新意者蓋此也.
부득이하게 쓴 신의가 훗날 높게 평가되리라
然古之詩人, 雖造意特新也, 其語未不圓熟者, 蓋力讀經史百家古聖賢之說, 未嘗不熏鍊於心; 熟習於口. 及賦詠之際, 參會商酌, 左抽右取, 以相資用. 故詩與文雖不同, 其屬辭使字, 一也, 語豈不至圓熟耶? 僕則異於是, 旣不熟於古聖賢之說, 又恥效古詩人之體, 如有不得已及倉卒臨賦詠之際, 顧乾涸無可以費用, 則必特造新語, 故語多生澁可笑. 古之詩人, 造意不造語, 僕則兼造語意無愧矣. 由是, 世之詩人, 橫目而排之者衆矣. 何吾子獨過美若是之勤勤耶?
嗚呼! 今世之人, 眩惑滋甚. 雖盜者之物, 有可以悅目, 則第貪翫耳. 孰認而詰其所由來哉? 至百世之下, 若有人如足下者, 判別其眞贗, 則雖善盜者, 必被擒捕, 而僕之生澁之語, 反見褒美, 類足下今日之譽, 亦所未知也. 吾子之言, 久當驗焉. 不宣. 某再拜. 『東國李相國全集』 卷第二十六
▲ 인천 계양산에 세워진 이규보 선생의 시비.
해석
고려 중기 이후엔 동파를 본받아 시를 짓는 게 유행이었다
月日, 某頓首, 履之足下.
모월 모일에 아무개가 족하 이지께 머리를 조아립니다.
間闊未覿, 方深渴仰,
얼마간 보지 못해 갈급하고 앙망함이 깊었는데
忽蒙辱損手敎累幅,
갑작스레 편지 여러 편을 저에게 보내주셔서【손(損): 헤어진 사람에 대해 편지를 보내 시를 보내거나 물건을 보내는 것의 경칭으로, ‘보내다’는 뜻이다.[對別人來信, 贈詩或饋物的敬辭]. 意謂損及對方而勞惠贈. 晉劉琨『答盧諶詩並書』:“損書及詩,備辛酸之苦言,暢經通之遠旨 ”南朝宋劉義慶『世說新語‧雅量』:“郗嘉賓欽崇釋道安德問,餉米千斛,修書累紙,意寄殷勤 道安答直云:‘損米 ’愈覺有待之為煩 ”參見“損辱】 잘 받았고
奉翫在手, 尙未釋去.
손으로 받들어 읽어보다가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不惟文彩之曄然, 其論文利病,
문채가 화려할 뿐만 아니라, 文을 논하고 병통을 예리하게 말하였으니
可謂精簡激切.
정밀하고 간결하며 격정적이고 간절하다 할 만합니다.
直觸時病, 扶文之將墮者已, 甚善甚善!
그리고 곧 시대의 변통을 찔러 문장이 장차 추락하려던 것을 붙잡으셨으니, 매우 좋고도 매우 좋습니다!
但書中譽僕過當,
다만 내용 중에 저를 칭찬함이 과하였고
至況以李ㆍ杜, 僕安敢受之?
하물며 이백과 두보에게까지 이르고 나선 제가 어찌 감히 수용하겠습니까?
足下以爲‘世之紛紛效東坡而未至者,
족하께서는 썼습니다. ‘세상이 동파를 본받으려 분분한데 그렇게 했음에도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는
已不足導也.
이미 말할 것도 못 됩니다.
雖詩鳴如某某輩數四君者, 皆未免效東坡,
비록 시로 문명이 난 몇몇 사람들은 다 동파를 본받은 걸 면하지 못했으며,
非特盜其語,
그 말만 도적질한 게 아니라,
兼攘取其意, 以自爲工.
겸하여 그 뜻까지도 훔쳐 취하고선 스스로 훌륭한 작가라 여깁니다.
獨吾子不襲蹈古人, 其造語皆出新意,
그러나 홀로 그대만이 고인을 따르지 않고 말을 만들어낸 것이 새로운 뜻에서 나와
足以驚人耳目, 非今世人比.’
넉넉히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놀라게 할 만하니, 지금 사람들과 견줄 게 없습니다.’
以此見褒抗僕於九霄之上,
이것은 칭찬해줌으로 저를 하늘 높이까지 올린 것으로,
玆非過當之譽耶?
이게 과분한 칭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공부가 깊지 못해 부득이하게 신의(新意)를 쓰게 됐다
獨其中所謂之創造語意者, 信然矣.
유독 내용 가운데 ‘말뜻을 새롭게 만듭니다’라고 말한 부분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然此非欲自異於古人而爲之者也,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옛사람과 다르게 하고자 해서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니라,
勢有不得已而然耳.
기세가 부득이 해서 그렇게 된 것뿐입니다.
何則?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겠습니까?
凡效古人之體者, 必先習讀其詩, 然後效而能至也.
무릇 옛사람의 문체를 본뜨려면 반드시 먼저 그 시를 익숙히 읽은 후에 본떠야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否則剽掠猶難.
익숙히 읽질 않았다면, 표절하여 훔치더라도 오히려 짓기가 어려워집니다.
譬之盜者, 先窺諜富人之家, 習熟其門戶墻籬,
비유하자면 도둑이 먼저 부잣집을 엿보아서 그 문과 창, 벽과 울타리를 익숙히 익힌 후에
然後善入其室, 奪人所有, 爲己之有, 而使人不知也.
잘 그 집에 들어가 남의 소유를 훔쳐 자기의 소유를 삼아야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합니다.
不爾, 未及探囊胠篋, 必見捕捉矣, 財可奪乎?
그렇지 않으면 주머니를 뒤지고 상자를 열기도 전에 반드시 붙잡히게 됩니다.
僕自少放浪無檢, 讀書不甚精.
저는 어려서부터 방탕하고 거리낄 게 없어 독서함이 매우 정밀하지 못합니다.
雖六經子史之文, 涉獵而已, 不至窮源.
비록 육경과 사서와 역사의 문장만을 섭렵했지만 심원한 이치를 궁리하는 데엔 이르지 못했습니다.
況諸家章句之文哉?
하물며 제자서와 장구의 문장이라면 오죽하겠습니까?
旣不熟其文, 其可效其體盜其語乎?
이미 그 문장에 익숙하지 못한데 그 문체를 본받고 그 말을 훔칠 수 있겠습니까?
是新語所不得已而作也.
이런 이유로 새로운 말을 부득이하게 지어야 했습니다.
동파를 제대로 본받은 것은 좋은 것이다
且世之學者, 初習場屋科擧之文, 不暇事風月.
또한 세상의 학자들은 초반엔 과거의 문장만을 익혀 음풍농월을 일삼을 겨를이 없습니다.
及得科第, 然後方學爲詩. 則尤嗜讀東坡詩.
과거급제를 해야만 곧 배워 시를 지을 수 있으니, 더욱 동파의 시를 즐겨 읽습니다.
故每歲榜出之後,
그렇기 때문에 매년 과거 합격자 명단이 나오면
人人以爲‘今年又三十東坡出矣’,
사람들은 ‘금년에도 또 30명의 동파가 나왔다’고 생각한 것이니,
足下所謂‘世之紛紛者’是已.
족하께서 ‘세상이 동파를 본받기에 분분하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其若數四君者, 效而能至者也.
몇 몇의 군자들은 본떠 경지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然則是亦東坡也. 如見東坡而敬之可也,
그러하다면 이들 또한 소동파인 것입니다. 동파를 보고 그를 공경하는 것은 옳은 것이니,
何必非哉?
어찌 반드시 비난하겠습니까?
東坡, 近世以來, 富贍豪邁, 詩之雄者也.
동파는 근세 이후로 부유하고 넉넉하며 호방하고 매진하여 시의 으뜸이 되었습니다.
其文如富者之家金玉錢貝,
그 문장은 마치 부유한 집의 금과 옥과 돈과 패물이
盈帑溢藏, 無有紀極.
창고에 가득 찼고 저장고에 넘쳐흘러도 끝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雖爲寇盜者所嘗攘取而有之,
비록 도적질 하는 사람이 일찍이 훔쳐 취하여 소유하더라도
終不至於貧也.
마침내 동파는 빈털터리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盜之何傷耶?
그러니 도둑질 따위로 어찌 그를 상하게 하겠습니까?
且孟子不及孔子, 荀ㆍ楊不及孟子.
또한 맹자는 공자에 미치질 못했고, 순자와 양웅은 맹자에 미치질 못했습니다.
然孔子之後, 無大類孔子者,
그러나 공자 이후로 크게 공자와 비슷한 사람은 없었으나
而獨孟子效之而庶幾矣.
유독 맹자가 그를 본받아 거의 경지가 가까웠습니다.
孟子之後, 無類孟子者, 而荀楊近之.
맹자 이후로 맹자와 비슷한 사람은 없었으나 순자와 양웅이 가까웠습니다.
故後世或稱孔ㆍ孟; 或稱軻雄.
그렇기 때문에 후세에 혹자는 공자와 맹자라 말하며, 혹자는 맹자와 양웅이라 말합니다.
荀ㆍ孟者, 以效之而庶幾故也.
순자와 맹자는 그것을 본받아 거의 근접했기 때문입니다.
向之數四輩, 雖不得大類東坡,
앞에서 말한 몇 무리들도 비록 크게 동파와 비슷하다곤 할 수 없지만,
亦效之而庶幾者也.
또한 그를 본받아 거의 근접한 사람들입니다.
焉知後世不與東坡同稱,
그러니 어찌 후세에 동파와 함께 일컬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而吾子何拒之甚耶?
그대는 거절함이 그토록 심한 것입니까?
제대로 본받지 않고 그저 가져다 쓴 것은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然吾子之言, 亦豈無所蓄而輕及哉.
그러나 그대의 말이 또한 어찌 쌓아놓은 것도 없이 경솔히 한 것이겠습니까.
姑藉譽僕, 將有激於今之人耳.
짐짓 나를 칭찬하는 것을 빙자하여 장차 지금의 사람들을 격분하도록 한 것일 뿐이니 말입니다.
昔李翺曰: “六經之詞,
옛적에 이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육경의 말은 뜻을
創意造言, 皆不相師.
새롭게 하고 말을 만듦에 다 서로를 본받질 않았다.
故其讀『春秋』也, 如未嘗有『詩』;
그렇기 때문에 『춘추』를 읽으면 일찍이 『시경』이 없는 것만 같고,
其讀『詩』也, 如未嘗有『易』;
『시경』을 읽으면 일찍이 『역경』이 없는 것만 같으며,
其讀『易』也, 如未嘗有『書』.
『역경』을 읽으면 일찍이 『서경』이 없는 것만 같다.
若山有恒ㆍ華,
그건 마치 산에는 항산과 화산이 각자 있으며,
瀆有淮ㆍ濟.”
물길에는 회수와 제수가 서로 각자 있는 것과 같다.”
夫六經者, 非欲夸衒詞華.
무릇 육경이란 것은 문장의 과장되게 하거나 화려하게 하려하지 않습니다.
要其歸率皆談王霸論道德與夫政敎風俗興亡理亂之源者也.
요컨대 그 귀의함은 다 왕도와 패도를 논하고 도덕을 말하며, 정치와 종교, 풍속의 흥망과 다스려짐과 혼란스러움의 근원을 통솔하는 것입니다.
其辭意宜若有相襲, 而其不同如此.
그 말의 뜻이 마땅히 서로 답습한 것 같지만, 그 같지 않음이 이와 같습니다.
所謂今人之詩, 雖源出於『毛詩』,
지금 사람의 시라 말하는 것들은 비록 『모시』에서 근원하여 나왔지만
漸復有聲病儷偶依韻次韻雙韻之制,
점점 다시 성병(聲病: 평측을 맞춤)과 대우, 의운(依韻: 운자를 맞춤), 차운(次韻: 상대방이 지은 시의 운자를 맞춤), 쌍운(雙韻)의 제한이 있어
務爲雕刻穿鑿, 令人局束不得肆意,
힘들여 꾸며내고 깊이 파고들어 사람으로 하여금 한계지어 멋대로 뜻을 펴지 못하게 합니다.
故作之愈難矣.
그렇기 때문에 짓는 것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就此繩檢中, 莫不欲創新意臻妙極,
이렇게 구속된 가운데 나아가 신의(新意)를 만들어내고 묘한 곳에 이르려 하지 않음이 없으니,
而若攘取古人已導之語, 則有許底功夫耶?
만약 옛 사람이 이미 말한 말을 훔친다면, 어찌 공부가 되겠습니까?
근체시가 확립된 시기의 시인들도 본받지 않고 시를 지었다
請以聲律以來近古詩人言之,
청컨대 성률(聲律)이 확립된 이후로 근고(近古)의 시인을 말하자면,
有若唐之陳子昂․李白․杜甫․李翰․李邕․楊․王․盧․駱之輩,
당나라의 진자앙, 이백, 두보, 이한, 이옹, 양형, 왕발, 노조린, 낙빈왕의 무리가 있어
莫不汪洋閎肆, 傾河淮倒瀛海,
멋대로 행동하고 맘껏 노닐지 않음이 없어 하해와 회수를 기울고 영해를 뒤집어
騁其豪猛者也.
그 호탕하고 사나운 경지로 달려 나갔습니다.
未聞有一人效前輩某人之體,
그러나 한 사람도 전대의 어떤 사람의 문체를 본받아
刲剝其骨髓者.
그 골수를 벗겨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其後又有韓愈․皇甫湜․李翺․李觀․呂温․盧同․
그 후로 또한 한유, 황보식, 이고, 이관, 여온, 노동,
張籍․孟郊․劉․柳․元․白之輩,
장적, 맹교, 유우석, 유종원, 원진, 백거이의 무리들이 있어
聯鏕竝轡, 馳驟一時, 高視千古.
고삐를 나란히 하고서 한 시대를 달려 높이 천고를 쳐다봤습니다.
亦未聞效陳子昂若李杜楊王而屠割其膚肉者.
또한 진자앙과 이백, 두보, 양형, 왕발을 본받아 그 피부와 살을 도려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至宋又有王安石․司馬光․歐陽脩․
송나라에 이르러 또한 왕안석, 사마광, 구양수,
蘇子美․梅聖兪․黃魯直․蘇子贍兄弟之輩,
소자미, 매성유, 황노식, 소자첨 형제의 무리가 있어
亦無不撑雷裂月, 震耀一代.
또한 우레를 당기고 달을 찢지 않음이 없어 한 시대를 떨치고 빛냈습니다.
其效韓氏皇甫氏乎?
그들이 한유와 황보식을 본떴습니까?
效劉柳元白乎?
유우석, 유종원, 원진, 백거이를 본떴습니까?
吾未見其刲剝屠割之迹也.
나는 그들이 골수를 벗겨내고 피부와 살을 도려냈던 자취를 보지 못했습니다.
然各成一家.
그럼에도 각각 일가를 이뤄냈습니다.
梨橘異味, 無有不可於口者.
배와 귤은 다른 맛이지만 입에 맞지 않음이 없습니다.
夫編集之漸增, 蓋欲有補於後學.
시문집들이 편집되어 점차 늘어나는 것은 대개 후학들을 도와주고자 해서입니다.
若皆相襲, 是沓本也, 徒耗費楮墨爲耳,
만약 서로 답습해야 한다면, 이것은 근본을 탐하는 것으로 다만 종이와 붓을 소비할 뿐이니,
吾子所以貴新意者蓋此也.
그대가 신의(新意)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대개 이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득이하게 쓴 신의가 훗날 높게 평가되리라
然古之詩人, 雖造意特新也,
그러나 옛 시인들은 비록 뜻을 만들어 특별히 새로웠음에도
其語未不圓熟者.
그 말이 원숙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蓋力讀經史百家古聖賢之說,
그건 대개 경서와 역사서 백가서 옛 성현의 말씀을 읽는 데에 힘써,
未嘗不熏鍊於心, 熟習於口.
일찍이 마음으로 훈습하고 연마하며 입으로 익숙히 읽지 않음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及賦詠之際, 參會商酌,
부를 읊을 즈음에 참고하고 종합하고 헤아려
左抽右取, 以相資用.
좌에서 뽑고 우에서 취하여 서로 사용함을 힘입게 했습니다.
故詩與文雖不同,
그렇기 때문에 시와 문이 비록 같진 않으나
其屬辭使字,
그 말을 붙이거나 글자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선
一也, 語豈不至圓熟耶?
한 가지였던 것이니, 말이 어찌 원숙함에 이르지 않겠습니까?
僕則異於是, 旣不熟於古聖賢之說,
저의 경우는 이와는 다르니 이미 옛 성현의 말에 익숙지 못했고,
又恥效古詩人之體.
또한 옛 시인의 시체를 본뜨길 부끄러워했습니다.
如有不得已及倉卒臨賦詠之際,
그러니 부득이하게 갑작스런 상황에 닥치거나 부를 읊어야 하는 순간에 이르러선
顧乾涸無可以費用,
모든 알던 것들이 말라버려 사용할 수가 없게 되어버리니,
則必特造新語.
반드시 다만 새로운 말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故語多生澁可笑.
말이 많이 생소하여 웃을 만했던 것입니다.
古之詩人, 造意不造語,
옛 시인들은 뜻은 만들고 말은 만들지 않았지만,
僕則兼造語意無愧矣.
저는 말과 뜻을 함께 만들어내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由是, 世之詩人,
이런 까닭으로 세상의 시인들이
橫目而排之者衆矣.
눈을 부릅뜨며 저를 배척한 사람이 많았던 것입니다.
何吾子獨過美若是之勤勤耶?
어찌 그대만 홀로 이와 같이 부지런히 과하게 칭찬하는 것입니까?
嗚呼! 今世之人, 眩惑滋甚,
아! 지금 세상의 사람들은 현혹됨이 매우 심하여
雖盜者之物, 有可以悅目, 則第貪翫耳.
비록 도둑질한 물건이 눈을 즐겁게 한다면, 다만 탐하며 즐길 뿐입니다.
孰認而詰其所由來哉?
누가 이런 것들을 적어, 그 유래한 바를 힐난하겠습니까?
至百世之下, 若有人如足下者, 判別其眞贗,
지금부터 백세 이후에 족하와 같은 어떤 사람이 그 참과 거짓을 판별한다면,
則雖善盜者, 必被擒捕,
비록 잘 훔쳐 티가 안 나더라도 반드시 잡히게 될 것이고,
而僕之生澁之語, 反見褒美,
저의 생소한 말은 도리어 기림과 친미를 받게 되리니,
類足下今日之譽, 亦所未知也.
족하께서 오늘 칭찬한 것과 같은 것일지는 또한 모르겠습니다.
吾子之言, 久當驗焉.
저의 말이 머지않아 마땅히 증험될 것입니다.
不宣. 某再拜. 『東國李相國全集』 卷第二十六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더 펴진 않겠습니다. 아무개가 다시 절합니다.
▲ 강화군에 있는 이규보의 무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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