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돈된 시를 잘 짓는 차운로
차천로에 대해선 다루고 있는 글들이 많아 접할 기회가 많았지만 그의 동생인 차운로에 대해선 그나마 『소화시평』 권하 44번에서 다룬 덕에 보게 되었다. 이게 바로 시화집을 읽는 맛이다. 한문학사든, 임용고사에서 다루는 사람이든 모든 사람을 다룰 수는 없다. 이미 ‘교육학에서 다룬 비고츠키를 지워라’라는 글에서도 얘기했다시피 현실을 자기의 의식 속에서 구조화하기 위해서는 취사선택의 과정이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고, 그럴 때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지도, 문학적 영향력 등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차운로보단 차천로가 더 영향력이 있다는 판단 하에 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것이고 차천로의 글 위주로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기준과 홍만종이 살던 당시의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앞선 시대에 산 인물 중 자신의 가치에 부합되는, 그리고 자신의 문학관에 부합되는 사람들만 뽑아서 엮으면 되니 말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우리보단 알아야 할 인물이 적으니, 차운로까지 말한 거지’라고 말하진 말자. 그건 단순한 수치로 보여지는 숫자의 문자가 아니라, 문학관이나 관점의 문제인 거고, 그건 요즘 흔히 하는 말을 빌려서 표현하면 ‘갬성’의 문제니 말이다.
頭陀雲樹碧相連 | 두타산의 구름 뚫고 솟은 나무는 푸르게 서로 이어져 |
屈曲西來五十川 | 구불구불 서쪽에서는 오십천이 흘러드네. |
鐵壁俯臨空外島 | 깎아지른 절벽에서 허공의 새를 굽어보고, |
瓊樓飛出鏡中天 | 멋진 누각, 거울 속 하늘로 날아 솟았지. |
煙霞近接官居界 | 아지랑이와 노을에 관청세계가 바짝 붙었고, |
風月長留几案前 | 바람과 달은 의자와 책상 앞에 오래도록 머무네. |
始覺眞珠賢學士 | 이제야 알겠네. 진주관의 어진 학사가 |
三分刺史七分仙 | 3부는 자사고, 7부는 신선이로세. |
차운로의 첫 번째 시인 「죽서루(竹西樓)」라는 시는 누각이 놓인 곳의 풍광, 그리고 그곳에 스며드는 기이한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는 시다. 더욱이 지금도 버젓이 이 누각은 남아 있기 때문에 그곳의 지도를 보고서 이 시를 읽는다면 더 현실적으로 이 시가 다가오게 된다.
1~2구는 마치 조감하듯이 누각이 놓여있는 자연환경을 그리고 있다. 오십천이 굽이드는 곳에 누각이 있는데 그 뒤엔 두타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두타산은 백두대간의 산줄기로 삼척에서 보면 엄청난 위용으로 보였을 것이다.
3~4구는 누각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3구에선 누각에 올라 새를 바라보니 마치 엄청 높은 곳에 있는 누각인양 날던 새 마저도 내려 보게 된다고 표현했다. 흔히 사찰시에 사찰이 세속과 완전히 단절된 곳에 있고 그곳은 높디 높은 곳에 있는 것처럼 과장되어 묘사되듯이 여기서도 그런 과장법을 써서 누각을 마치 신선세계에 있는 것인양 표현한 것이다. 위치적인 느낌을 3구에서 표현했으니 4구에선 오십천에 미친 누각을 환상적으로 묘사한다. 마치 거울 속에 비친 것처럼 누각의 처마들이 비상하는 새처럼 보인다고 했으니 말이다.
이미 3~4구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있지 않은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밑밥을 깔았으니 그런 관점은 그대로 둔 채 시선만 옆으로 옮긴다. 죽서루 바로 옆엔 삼척부사의 관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죽서루에서 보는 그런 기묘한 운치들은 그대로 삼척부사의 관아에도 적용되는 거였다. 아지랑이와 노을이 부사의 관사에 연이어져 마치 신선계에 있는 가옥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바람과 달이 부사의 책상에 오래도록 머무니, 부사가 마치 신선잉양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7~8구에선 아예 지금 저 관사에서 사는 사람은 정말 부사인 걸까? 신선인 걸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냈고 부사는 30%인데 반해, 신선은 70%나 된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죽서루 얘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신선세계에 대한 표현으로 옮겨갔고 그 시선을 부사의 관사로 옮겨가 결국 부사마저 신선처럼 묘사한 필치를 펼쳐낸 것이다. 그러니 홍만종이 ‘시어가 매우 기이하니 남들이 말하지 못한 것을 말했다[詩意甚奇, 道人所未道].’라고 한 평가는 매우 적절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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