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운로의 호기로운 한시
峽墮新霜草木知 | 골짜기에 내린 새 서리, 초목이 알려주는데, |
寒江脈脈向何之 | 차가운 강은 말없이 어디로 흘러가나? |
老龍抱子深淵裏 | 노룡은 새끼 품고 깊은 못에서 |
臥敎明春行雨期 | 누워 내년 봄의 비 내릴 때를 가르치겠구나. |
『소화시평』 권하 44번에서 두 번째로 소개된 시는 「산행즉사(山行卽事)」다. 1~2구에서 즉석에서 지은 시답게 눈에 보인 그대로의 풍경을 읊었다. 골짜기에 서리가 내렸다는 건 풀과 나무의 이슬을 통해 알 수 있고, 차가운 시냇물을 졸졸졸 어딜 향해 흘러가기만 한다.
공자 같았으면 물을 보고 철학적인 깨달음을 담았을지도 모르지만, 차운로는 그렇게까지 나아가진 않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다. 그 물속엔 늙은 용이 살고 있으며 지금은 서리가 내린 때라 칩거한 채 자식을 꽉 안고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꽉 안은 채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우리 같았으면 ‘동면 같은 길고 긴 잠을 청하고 있겠죠’라고 대답할 텐데, 차운로는 그러지 않았다. 칩거하고 있는 이유는 비를 내리게 하는 영물(靈物)이니만큼 내년에 우기가 올 거라는 것, 그러니 그때 새끼용이 비를 내리는 일을 수행해야 하는 것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차운로는 이 시를 통해 농경 사회였던 조선사회의 풍요와 안녕을 빌고자 한 마음을 담았던 것이다. 마지막이 도학자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긴 했지만, 조위한의 「총석정(叢石亭)」에서라는 시처럼 다짜고짜 나무라는 투는 아니기에 별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이 당시 사람들은 오산의 시보다 창주의 시가 훨씬 좋다고 보았나 보다. 그러니 아예 대놓고 두 형제의 시를 비교하는 상황까지 이르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창주는 그걸 그대로 인정할 순 없었다. 그러니 아예 곡식을 세는 단위는 ‘~섬’이란 단위를 빌려 “나는 정미한 곡식과 같은 시들이 겨우 500섬에 불과한데 반해 형님은 시의 질적인 부분을 따지지 않고 헤아려보면 1만섬이나 된다[吾則精米流脂五百石, 家兄則皮雜穀幷一萬石耳].”며 형님의 다작할 수 있는 능력을 높게 사는 발언을 한 것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시의 퀄리티는 차운로가 낫고, 다작하는 능력이나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 호기로운 시는 차천로가 낫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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