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항번호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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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이수과목 및 분야 |
한문학사 |
평가영역 |
조선전기 | |||||||||||
평가 내용 요소 |
조선전기 한문학의 전개 과정과 그 특징을 설명할 수 있다 | |||||||||||||
평가목표 |
조선조 전기 한국 한문학사의 중요한 흐름인 도와 문의 관계 및 도와 문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의 추이와 다양한 시각을 이해할 수 있다. | |||||||||||||
행동요소 |
지식/적용 |
문항유형 |
영역 통합형 논술 | |||||||||||
문항 |
다음 문장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1)위 문장의 논지를 요약 정리하시오. [6점] (600자 내외) 2. 제시된 문장 중, (1)과 (2)의 ㉠, ㉡을 참고하여 문에 대한 두 시각을 논술하시오. [6점] (800자 내외) | |||||||||||||
정답 |
- 예시답안 1. 문은 변할 수밖에 없다. 국가 행사나 여항의 가요도 문을 빌어서 발현되므로 사람이 문을 짓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는 신라 말 이후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의 사례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특히 조선의 경우 학교를 열어 인재를 양성하고 서적을 널리 반포하자 文을 하는 자들이 모두 古文의 근본을 탐구하여 俗儒들의 나쁜 습속을 바꾸자 문이 크게 변하여 바른대로 나아가 과거의 거칠고 자질구레한 것과 같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소와 부, 논과 책, 기사문은 각기 저마다 특색을 내는 방식이 있음에도 이를 오해하여 平淡과 端正과 倂儷 만을 생각한다. 이는 병통은 아니지만 그 폐단은 委靡하고, 疏散하고 鄙俚한 데에 이르니, 마치 마당의 나무는 가지와 잎과 꽃이 무성한 뒤에야 밑동과 뿌리를 덮어 나무가 제대로 자라게 되며, 음식을 조리하는 자는 다양한 맛과 간을 내는 적당함을 알아야 하는 것과 같다. 이에 반해 지금은 오히려 가지와 잎을 제거하고 무성하기를 바라고, 오미를 버리고 음식의 간을 얻고자 하니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시문은 상황에 따라 화려와 청담과 간고와 웅담을 취해 문체의 법도를 이루는 것이다. 어찌 하나만을 고집하여 매화를 사랑하므로 나머지 꽃들을 뽑으며 퉁소와 비파를 좋아하여 다른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게 하겠는가? 이는 문은 고정된 것이라는 경직되고 고집스러운 생각이다.
2. (1)과 (2)는 모두 도와 문, 혹은 도와 문의 관계를 본과 말의 입장에서 논한 것이다. (1)에서 도학파의 입장에 있었던 김종직은 문장의 근본은 경술에 있으며, 경술이 문장의 뿌리라고 강조한다. 이는 도와 문의 관계에서 도와 본을 강조한 문학 관점이다. 마치 草木의 경우 뿌리가 없으면서 가지가 죽죽 뻗고 잎이 무성하며 꽃과 열매가 번성하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고 하여 경술이 본이고 문장은 말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시서 육례의 문장의 문장도 그 근본은 경술에 있으니, 시서육례의 문장도 이치를 궁구하여 살피고 완미하고 따져야 문장이 나의 가슴과 융회되는 것이다. 이것이 발산하면 언어와 사부는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된다. 이는 구도나 훈구를 일삼거나 기교를 부려서 되지는 않는다. 오직 성리도덕의 학문에 힘써야 經天緯地의 문장을 논하고 경술과 문장이 합쳐져 한 시대를 울릴 수 있듯이 문학의 독자성 보다 도를 우선시한 논리다. 이에 반해 (2)에서 관각의 대표적 문인인 성현은 도문, 본말의 논리를 인정하되, 도와 문의 관계에서 문을 중시하고, 또한 문학의 독자성과 다양성을 보다 중시한 것이다. 이는 마치 틀에 서 있는 나무가 제대로 자라기 위해서는 가지와 잎과 꽃이 번화한 뒤에라야 밑동과 뿌리를 덮어 나무가 제대로 자라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성현은 가지와 잎과 꽃의 번화함을 보다 중시한 것으로 문과 말을 중시하고 이를 긍정한 것이다. 이는 나무에서도 꽃과 잎이 번화해야 나무답듯이, 문학에서도 성리도덕을 강조하기보다 문학의 독자성 내지 문학의 다양성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시문은 시대마다 경우에 따라 각각 저마다의 특색을 다채롭게 구현해야만 참다운 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오직 도와 본만을 강조하는 것은 경직되고 고집스러운 견해라는 것이다.
- 채점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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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제 근거자료 |
『佔畢齋文集』(김종직)과『虛白堂文集』(성현) | |||||||||||||
예상 정답률 |
1. 50 % 2. 40 % | |||||||||||||
교사자격 기준 중 관련 항목 |
9. 한문과 교사는 한국 한문학사에 대한 지식과 활용능력을 갖춘다. |
답안
1
상고시대엔 말로 하는 것들이 모두 문장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면 단군과 기자의 시대엔 남은 전적이 없고 신라 말기엔 최치원이 이름을 드날렸으며 고려 초엔 최승노가 폐단을 진술했고 중엽엔 정지상과 김극기, 이규보, 이인로, 임춘, 진화, 홍간의 무리들이 풍부함과 고움에 전념했다. 후기엔 이제현과 이곡과 이색과 이숭인과 정도전과 권근이 온전히 독실한데 힘써 허미한 말을 하지 않았는데 결국 등용되질 못해 고려는 망했다.
조선 초엔 정도전과 권근이 문형을 담당했고 변계량 이후로는 사문이 매우 황폐해져 오래도록 등용되질 못했다. 세종 대엔 집현전을 설치해 여러 작가들이 배출됐고 성종 대에도 성균관과 홍문관을 중심으로 여러 문사들을 배출했고 여러 전적들을 만들어냈다. 이때부터 문장이 크게 바뀌어 잘못된 습성을 고치므로 좋은 문장들이 지어지게 되었다. 부와 소는 화려함과 넉넉함을 주장해야 하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평담함을 하게 됐고 논책은 웅혼함을 주장해야 하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단정함을 하게 됐으며, 기사는 전실함을 주장해야 하지만 변려를 짓게 되었다. 평담함이 극단에 이르면 힘이 업어지고 단정함이 극단에 이르면 성글어지고 흩어지며 변려가 극단에 이르면 비루해진다. 그러니 지금의 문단은 가지를 잘라놓고선 뿌리가 건실하길 바라는 세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좋아하는 문체를 찾아 그걸 하면 되지 하나의 문체를 좋아한다고 나머지 문체를 없애선 안 된다.
2
성현의 글은 다양한 글들을 배격하려 할 것이 아니라 모두 긍정하며 그 중에 자신에게 맞는 글을 택해서 일가를 이루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가지가 울창해야만 뿌리도 건실하다는 비유를 든 것이다.
이에 반해 김종직은 근본이 되는 문장에 힘써야만 그런 건실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저절로 여러 글들도 지을 수 있게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뿌리가 건실해아만 가지도 울창해지고 과실도 튼실해진다는 비유를 든 것이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