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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 - 문변(文變) 본문

산문놀이터/조선

성현 - 문변(文變)

건방진방랑자 2020. 7. 3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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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 편견없이 배우고 익힌 후에 문장을 지어라

문변(文變)

 

성현(成俔)

 

 

1. 고대부터 전국시대까지 문장의 가치가 살아 있던 시기

 

고대엔 문장이 아닌 게 없었다

文不可變乎? 可變則斯爲變矣, 其變而就卑在人, 變卑而還淳, 亦在人耳.

典謨賡載之文作, 而爲文之權輿, 變而, 變而, 至于成周, 其文大備, 彬彬郁郁. 言宣于口, 無非文也; 事載于冊, 無非文也. 如君臣戒訓, 列國辨命, 兵師誓告, 祭祀祝嘏, 閭巷歌謠, 非文無以發. 故人雖欲不文, 而不得不爲文也.

 

공자시대엔 모든 게 문장이었다

天生宣, 木鐸之敎, 以天縱之聖, 删定贊修六經之語, 其道德文章, 足以經世垂範. 於是, 三千之徒霧滃而集, 七十二子升堂入室, 高矣美矣, 非後世之所可幾及也.

 

전국시대의 문장들은 쇠락해졌지만 그럼에도 볼 만한 게 있었다

逮道下衰, 之敎虛無, 之言滅裂, 主刑名之學, 肇悲怨之詞, 魏牟公孫龍作堅白同異之說, 各售其技, 斲喪道眞, 然其文辭則縱橫捭闔, 皆有可觀.

 

 

2. 한나라 이후 진행된 문장의 부침

 

한나라 시대엔 다시 문장의 부흥이 일어나다

, 其文最盛, 賈誼董仲舒司馬遷劉向揚雄, 尤傑然者也. 其他文名之士, 拔茅彙征, 波瀾所曁, 演迤放肆, 後之爲文者咸宗之.

 

이후 문장의 부침상황

下逮建安黃初間, 文體漸變, 浮艶脆弱, 極矣.

, 啓其始, 闖其門, 擅其宗, 承其流. 而革累代對偶之病, 爲一世風雅之正者, 昌黎一人而已.

晚唐五季之陋, 頹圮墊溺, , 楊文公王黃州, 雖名爲文, 而猶襲其蹟. 廬陵倡爲古文, 三蘇踵而隨之, 其針文之病, 救世之功, 昌黎無以異也.

 

원나라의 문장 상황

雖胡種, 培養文脈, 百年之間, 文物極盛, 多士皆懷瑾握瑜之人.

其文盛而至於華, 其華勝而至於侈, 其侈極而至於亡, 亦其勢之必然也.

 

 

3. 고대부터 조선 성종까지의 문장의 부침

 

고대부터 고려 초까지의 상황

以我朝之事觀之, 之世, 鴻荒朴略無所考, , 崔孤雲登第, 文名大著, , 崔承老上書陳弊, 其文可觀.

 

고려 후기의 상황

至于中葉, 鄭知常金克己李奎報李仁老林椿陳澕洪侃之徒, 皆以富麗爲工, 文雅莫盛於斯.

其後益齋稼亭牧隱陶隱三峯陽村諸先生, 斸崖岸而改爲之, 專務篤實, 不爲虛美之辭, 可以笙鏞世道. 朝不用, 遽終其運, 以啓我聖代文明之治.

 

조선전기 문장이 부흥되다

三峯陽村掌文衡, 春亭繼其蹤, 春亭以後, 斯文大廢, 久而不擧.

世宗集賢殿, 貯養文士, 一時儕輩, 轢駕代而能之者非一.

成宗世宗之志, 力於爲學, 專以成就人材爲急務. 內則弘文館, 外則成均四學, 誘掖多方而隆眷匪常, 又多裒書籍, 印頒而廣布之. 由是, 業文者皆探古文根本之文, 盡擺俗儒胡蘆之習, 文體大變, 趨於正閫, 非若曩時之碌碌猥瑣也.

 

 

4. 고루한 조선의 문장가를 위해 이 글을 짓다

 

널리 배워야 문장을 지을 수 있다

騷賦當主華贍, 而不知者以爲當平淡也; 論策當主雄渾, 而不知者以爲當端正也; 記事者當典實, 而不知者以爲當倂儷也.

平淡非文病也, 其弊至於委靡; 端正非文病也, 其幣至於疏散; 倂儷非文病也, 其弊至於鄙俚.

譬如庭樹枝柯花葉紛鬱, 然後得庇本根, 而樹必碩茂, 調飮食者當審五味滫瀡之宜, 然後乃得其和. 今者削枝葉而望樹之茂, 擯五味而得食之和, 寧有是理.

孔子: “博學而詳說之, 將以反說約也.” 博學則無所不知, 詳說則無所不通, 無不知無不通, 然後能辨是非而去就之. 今不博學詳說, 欲先反約, 未知所存者幾何, 所約者何事.

 

하나의 문체에 치우쳐 있는 현 문단의 병폐

今之學詩者必曰: “謫仙太蕩, 少陵太審, 雪堂太雄, 劍南太豪, 所可法者涪翁后山.” 刋落肌肉, 獨存骸骨, 未至兩人之域而氣象薾然. 聱牙奇僻, 則頑庸駑劣, 有不足觀者, 學文者亦如是.

爲詭, 以兩漢爲奧, 爲放, 文爲騖, 樂取柔軟之辭, 以爲剞劂, 無感乎文學之卑也.

大抵詩文華麗則取華麗, 淸淡則取淸淡, 簡古則取簡古, 雄放則取雄放, 各成一體而自底於法. 豈有愛梅竹而欲盡廢群卉, 好竽瑟而欲盡停衆樂乎.

此嵩善子膠柱固執之見也, 嵩善雖死而譊譊者猶未已. 故作文變, 以曉世之學爲文者. 虛白堂集卷之十三

 

 

해설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문장의 변화를 논평하고, 문장은 각각 그 종류에 따라 알맞은 문체가 있으므로 그 다양한 풍격을 존중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 글은 김종직(金宗直)을 위시한 신진 사류들이 추구한 도학파의 문학관에 맞서 문학의 다양성과 예술성을 옹호하는 관학파의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인 의의가 높다. 저자는 먼저, 문장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으로 그 변화는 사람에게 달린 것임을 전제로 하여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문학이 변화해 온 큰 흐름을 진단하고 명멸해 간 주요 문장가를 품평하였다. 그리고 세종을 이어 성종이 비속한 누습을 타파하고 문체를 바로잡았다고 하였다. 저자는 문장은 소부(騷賦)ㆍ논책(論策)ㆍ기사(記事)에 따라 각각 알맞은 문체가 있고, 시문은 화려(華麗)ㆍ청담(淸談)ㆍ간고(簡古)ㆍ웅방(雄放)한 저마다의 장점을 각각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마지막으로 나무의 가지와 잎이 무성해야 근본이 튼튼해지며 대나무와 매화가 좋다고 하여 다른 나무와 꽃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비유를 들어 문학의 다양성과 예술성을 옹호하며 김종직의 논리를 비판하고 있다.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09128

21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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