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날의 농촌에서
한식촌가(寒食村家)
김종직(金宗直)
禁火之辰春事多 芳菲點檢在農家
鳩鳴穀穀棣棠葉 蝶飛款款蕪菁花
帶樵櫳上烏犍返 挑菜籬邊叉髻歌
有田不歸戀五斗 元亮笑人將奈何 『佔畢齋集』 卷之十九
해석
禁火之辰春事多 금화지진춘사다 |
한식날【금화지진(禁火之辰): 한식날로 불을 禁하는 때이기에 이렇게 부름.】 봄 일 많아 |
芳菲點檢在農家 방비점검재농가 |
농가에선 꽃풀 점검하지. |
鳩鳴穀穀棣棠葉 구명곡곡체당엽 |
비둘기 구우구우【구명곡곡(鳩鳴穀穀): 비둘기가 구우구우 욺. 구(鳩)를 시구(鳲鳩)로, 즉 뻐꾸기로 본다면 그 우는 소리는 ‘곡식씨를 뿌리도록 재촉한다’는 ‘포곡(布穀)’으로도 풀이됨.】 당체나무잎에서 울고 |
蝶飛款款蕪菁花 접비관관무청화 |
나비 훨훨 장다리꽃에서 나풀나풀 난다. |
帶樵櫳上烏犍返 대초롱상오건반 |
언덕 위에서 땔감 진 검은 소가 돌아오고 |
挑菜籬邊叉髻歌 도채리변차계가 |
울타리 가에서 채소 캐던 낭자들 노래 부르네. |
有田不歸戀五斗 유전불귀련오두 |
밭일 있어도 오두미 생각나서 돌아가질 못하니, |
元亮笑人將奈何 원량소인장내하 |
도연명【원량(元亮): 진(晉)의 도잠(陶潛)의 자(字). 호는 연명(淵明). 팽택령(彭澤令)으로 지방 순시관인 독우(督郵)가 오니 영접하라는 명을 받았으나, ‘그깟 다섯 말 쌀[五斗米]를 위해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며 팽택령을 그만두고 귀향함. 】이 웃으면 어이할까? 『佔畢齋集』 卷之十九 |
해설
임지(任地)에서 맞은 한식절의 정경이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대지는, 이제 봄의 영위(營爲)로 활기에 차 있다. 화창한 날씨, 따뜻한 바람, 촉촉한 몇 차례의 봄비를 겪고 나면, 온갖 꽃다운 생명들의 봄 잔치가 벌어진다. 산도 들도 마을도 한결로 뒤덮어 물들이는 천자만홍(千紫萬紅)의 봄의 잔치! 농가에서는 날로 바빠져 가는 한편, 꽃다운 일들도 나날이 무르익어 간다.
울타리께에 서 있는 체당나무에 이따금 와서 우는 산비둘기 소리가 평화롭고, 노란 웃음 자지러진 장다리 꽃밭에는, 삶의 기쁨에 도취된 나비들이, 미친 듯 신들린 듯 어지럽게 춤을 춘다.
나뭇단을 싣고 뚜벅뚜벅 초동과 함께 석양 언덕길로 돌아오고 있는 검정소의 걸음걸이는, 착하고 수더분한 그 마음씨만큼이나 듬직하고, 여느 곳보다 빨리 봄이 깃든 양지 울타리 밑의 살오른 냉이며 꽃다지를 캐는 계집애들의 수줍은 노랫소리는, 눈 녹은 개울물 소리처럼 명랑하게 들려온다.
내 고향에도 바야흐로 저러하려니…… 두고 온 고향이 불현듯 간절해진다. 도연명은 오두미(五斗米)를 위하여 향리소인(鄕里小人)에게 절요(折腰)할 일이 아니꼬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는 그 즉시로 사직하고, 새벽길을 재촉하여 옛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내 또한 진작부터 ‘귀거래’를 입버릇처럼 뇌면서도 우유부단하여, 고원의 논밭은 묵혀 둔 채, 박록(薄錄)에 미련 못 끊고 매인 몸이 되어 있으니, 스스로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도연명이 비웃는 무엇이라 변명할 길이나 있겠는가?
1ㆍ2구는 한식절의 개관(槪觀)이요, 3~6구의 두 대련은 점검한 ‘방비(芳菲)’의 목록격이며, 7ㆍ8구는 객자(客子)의 술회(述懷)이다.
작자는 「입경(入京)」 시에서 이렇게 탄식하기도 했다.
強爲妻孥計 虛抛故國春 | 어쩌랴. 처자식 먹이려다가 헛되이 고향 봄을 버려 두었네. |
끝으로 그의 시 가운데 널리 알려져 있는 ‘보천탄 바라보며[寶泉灘卽事]’ 중의 한 수를 옮겨 본다.
桃花浪高幾尺許 | 복사꽃 뜬 물결이 몇 자나 불었는고. |
狠石沒頂不知處 | 은바위 머리 잠겨 옛터 잃은 가마우지, |
兩兩鸕鶿失舊磯 | 쌍쌍이 물고기 물고 |
啣魚却入菰蒲去 | 풀숲으로 들어라! |
-손종섭, 『옛 시정을 더듬어』, 정신세계사, 1992년, 186~187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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