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항인(委巷人)이란 ‘거리에 버려진 사람’이라는 것이 본래의 뜻이다. 사회로부터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래서 위항시인이란 대체로 중간계층의 신분에 속하는 시인을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실제로는 이른바 ‘하대부일등지인(下大夫一等之人)’으로 자처(自處)하는 의역중인(醫譯中人), 서리(胥吏) 등이 핵을 이루고 있으며 여기에 서류(庶流)와 하천인(下賤人)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곧 사대부의 반열에는 참여하지 못하지만, 사실상 평민보다는 우위에 있는 이른바 여항의 시인들이다. 이들의 시작(詩作)이 궁극적으로 사대부들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점에서 보면 그 독자적 영역을 인정하기 어렵지만, 한편 사대부와 구별되는 계층에 속하는 지식인이 집단으로 문학활동을 전개한 사실에서 보면 조선후기 한문학사에 중요한 한 획을 긋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들 위항시인(委巷詩人)의 詩作 활동은 『육가잡영(六家雜詠)』ㆍ『해동유주(海東遺珠)』ㆍ『소대풍요(昭代風謠)』ㆍ『풍요속선(風謠續選)』ㆍ『풍요삼선(風謠三選)』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특수계층 시집으로 응결 되었으며, 또 이 시작활동은 일종의 동인적 성격을 띤 각종 시사(詩社) 활동, 즉 풍월향도(風月香徒)ㆍ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ㆍ낙사(洛社)ㆍ칠송정시사(七松亭詩社)ㆍ직하사(稷下社)ㆍ비연시사(斐然詩社) 등을 통해 더욱 활성화되었다. 한편 이러한 위항시인들은 그들 詩作의 논리로 천기론(天機論) 내지 진시론(眞詩論) 등을 주창하면서, 위항시의 존재 의의를 자체적으로 마련하기도 하였다.
『육가잡영(六歌雜詠)」에 시편(詩篇)을 싣고 있는 최기남(崔奇男)ㆍ남응침(南應琛)ㆍ정례남(鄭禮男)ㆍ김효일(金孝一)ㆍ최대립(崔大立)ㆍ정남수(鄭柟壽) 등은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위항시의 선성이 되고 있는 것은 물론, 이들이 집단적으로 그리고 가시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온축을 스스로 표출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위항문학이 이에 이르러 그 기반이 구축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육가잡영(六家雜詠)』은 제목 그대로 여섯 사람의 각종 시체를 한데 묶은 동우인적(同友人的) 성격의 시선집으로, 이후의 본격적인 위항시집의 선구가 되고 있으며, 또 이 시집에 수록된 시인들이 다음 시대의 위항문학을 이끌어갈 많은 시인들을 직접 배출하고 있어 조선후기 위항문학의 전통이 이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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