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진시 창작의 핵심 이론: 천기론(天機論)
의고파의 가짜 복고를 벗어나 고인의 정신을 자득하고, 관습화되고 형해화된 정과 경을 진실하게 표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시인은 부단한 학문과 수양을 거쳐야 하며 이를 통해 민멸(泯滅)된 시도(詩道)를 진작해야 한다.
1)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편의 “기욕(嗜慾)이 깊은 사람은 천기가 얕다[其嗜慾深者, 天機淺也].”라는 말이 있다.
2) 『주자어류(朱子語類)』 권62 「중용(中庸) 1」에서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솔개는 솔개의 성(性)이 있고 물고기는 물고기의 성(性)이 있어 그 날고 뜀에 천기(天機)가 절로 완전하니 곧 천리(天理)의 유행이 발현되는 오묘한 곳입니다. 그래서 자사께서 우선 이 한두 가지로 도(道)가 없는 곳이 없음을 밝히신 것 아닙니까?”라고 여쭈니, “그렇다.”라고 대답하셨다.
“問: ‘鳶有鳶之性, 魚有魚之性, 其飛其躍, 天機自完, 便是天理流行發見之妙處, 故子思姑擧此一二以明道之無所不在否?’ 日: ‘是.’”
3) 『주자어류(朱子語類)』 권97 「정자지서(程子之書)」 3에서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장자의 용어인 천기를 성리학의 용어로 가져다 쓰는 것에 대해 주자 당대에 이미 불만이 제기된 바 있다. 『주자어류』에는 『장자(莊子)』의 “기욕심자(嗜慾深者), 천기천야(天機淺也).” 등을 예로 들면서 도체(道體)를 잘 형용했다는 정자의 평가를 두고 이단의 말이니 익힐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문인의 질문이 실려 있다. 그에 대해 주자는 말에 취할 것이 있다면 마땅히 취해야 한다며 노장의 학술이 허무하다는 이유로 좋은 말까지 함부로 흠잡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고, 나아가 『노자(老子)』ㆍ『장자(莊子)』 독서도 스스로 주관만 확실하다면 무해하다고 답변하였다.
程先生謂: “莊生形容道體之語, 儘有好處. 老氏『谷神不死』一章最佳, 莊子云『嗜慾深者, 天機淺』, 此言最善.” 又曰: “謹禮不透者, 深看莊子.” “然則莊老之學, 未可以爲異端而不講之耶?” 曰: “君子不以人廢言, 言有可取, 安得而不取之? 如所謂舊慾深者, 天機淺, 此語基的當, 不可盡以爲虛無之論而妄訾之也.” 謨日: ‘平時慮爲異敎所汨, 未嘗讀莊老等書, 今欲讀之, 如何?’ 曰: “自有所主, 則讀之何害? 要在識其意所以異於聖人者如何爾.”
4) 김창협(金昌協)은 『농암집(農巖集)』 권24 「제월당기(霽月堂記)」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낮과 밤이 갈마듦에 해와 달이 교대로 빛나고 사계절이 운행함에 풍운(風雲)이 변화하고 초목(草木)이 번성하는 것, 이것은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현자와 일사들이 간혹 이것을 독점하여 자기들만의 즐거움으로 삼고 남들은 함께 할 수 없을 것으로 여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권세와 이익이 외면에서 유혹하면 뜻이 분산되고 기호와 욕망이 마음에서 불타오르면 보고 듣는 것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이 같은 자는 눈이 어지럽고 행동이 어수선하여 제 몸이 어디에 놓여있는지도 모르는데 또 어느 겨를에 외물을 완미하여 그 즐거움을 맛보겠는가! 오직 몸은 영욕(榮辱)의 경계를 넘고 마음은 작위(作爲)의 밖에 노닐어 허명정일(虛明靜一)해지고 이목에 가려진 바가 없어야만 외물에 대해 그 깊은 이치를 관조할 수 있어 내 마음이 진실로 혼연하게 천기(天機)와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즐거움을 어찌 보통 사람들이 함께 얻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은 도연명(陶淵明) 정도가 되어야 북창(北窗)의 바람을 시원하게 느낄 수 있고 「격양가(擊壤歌)」를 읊조린 소옹 정도가 되어야 낙양의 꽃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晝夜之相代, 而日月互爲光明; 四時之運行, 而風雲變化, 草木彙榮, 此有目者之所共覩也. 而世之高賢逸士, 乃或專之以爲己樂, 若人不得與焉者, 何哉? 勢利誘乎外, 則志意分; 嗜欲炎於中, 則視聽昏. 若是者, 眩瞀勃亂, 尙不知其身之所在, 又何暇於玩物而得其樂哉? 夫惟身超乎榮辱之境, 心游乎事爲之表, 虛明靜一, 耳目無所蔽, 則其於物也, 有以觀其深, 而吾之心, 固泯然與天機會矣. 此其樂, 豈夫人之所得與哉? 是以, 必其爲「歸去來賦」者, 然後可以涼北窻之風矣; 必其爲「擊壤吟」者, 然後可以看洛陽之花矣.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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