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않으려 했으나 웃긴 걸 어떡해
<쌔빠지게 웃다보니> 서문
여러 해 동안 매료된 학자가 있다. 특히 나의 전공인 한문에 있어서 단순히 해석을 하는 정도가 아닌 그 문헌의 정밀도를 텍스트 크리틱(text critique)으로 분석하여 좀 더 오리지날한 판본을 규정한 후에 중국과 한국과 일본의 제 학자들의 견해를 통섭하여 해설을 하는 연구자세가 일품이다. 지금까지 『사서』는 모두 역주했지만 그 중 단연 백미는 주희가 도통을 중시하며 맘대로 변형하고 왜곡한 『대학』의 본모습을 찾아 주희의 시선으로 난도질당한 『대학』이 아닌 『禮記』 속에 고이 잠들어 있던 『고본대학』을 역주한 『대학학기역주』다. 바로 그와 같은 정밀성과 깊이, 진득함을 지닌 학자가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시다.
▲ 대학의 성립시기를 [여씨춘추]와 같은 시기로 보며, 통일제국이 임박해 오는 문제 상황이 담겨 있다고 본다.
언어공부의 핵심
언젠가 그는 언어를 어떻게 익혔느냐에 대해 대답을 해준 적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미국과 대만과 일본에서 공부를 하며 학위를 땄고 연변에서 한 학기 동안 중국어로 강의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세 개의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는 난잡하고 복잡한 얘기를 떠나 “단어를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자세한 말은 떠오르지 않지만 본의는 이것이다)”라고 짧게 한 마디를 했다. 즉, 단어의 힘(word power)이 외국어 공부의 시작이며 그걸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고, 그만큼 기본에 충실한 상태에서 나가야 끈기가 있다는 뜻이다. 그건 속성을 바라는 요행스런 마음도, 남이 이룩한 성과를 탐하는 도적다운 마음도 아닌 나의 속도에 맞춰 기본부터 차근차근 쌓아가겠다는 진의였다. 그리고 그 마음은 나에게 울림을 선사했고 삶의 자세를 바꿀 수 있도록 북돋워줬다.
▲ 2016년에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다룬 [나의 살던 고향이] 개봉했을 때 인디스페이스에 가서 보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대인은 유머가 있어야 한다
학문을 향한 열정, 그러면서도 다양한 학설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진지함만을 외치시진 않는다. 그렇게 될 경우 지금의 뭇 전문가들처럼 핏기 전혀 없는 거적때기를 지닌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맹렬히 공부하되,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고 되뇌는 거다. 『맹자』 「이루」하 12의 “대인이란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라는 구절을 “‘대인은 반드시 유머가 있다’라고 말한다. 유머가 없는 인간은 결코 대인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사람에게 웃음을 자아내는 사람은 적자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골계는 적자지심에서 나온다. 웃음이 없는 인간은 반드시 권위주의로 빠진다.(465쪽)”라고 해설한다.
학문의 정밀성과 권위주의는 정말 한 끗 차이이고, 그 한 끗 차이의 근원이 바로 적자지심이며 유머인 것이다.
그래서 이 노트의 이름은 “쌔빠지게 웃다보니”가 된 것이고, 여기엔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하여 기본에 충실한 공부를 하도록 해볼 것이다. 신나게 웃어재끼며 시작해보자.
2018년 4월 11일(목) 8시 34분
임고반에서 건빵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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