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無題)
이달(李達)
黃鳥百囀千囀 綠楊長枝短枝
彫窓繡戶深掩 怨臉愁眉獨知
處處多逢馬跡 行行且避車塵
長安陌上花柳 半是高官貴人 『蓀谷詩集』 卷之五
해석
黃鳥百囀千囀 황조백전천전 |
꾀꼬리 백 번 천 번 지저귀다 |
綠楊長枝短枝 록양장지단지 |
푸른 버들개지 긴 가지 짧은 가지로 날아다니네. |
彫窓繡戶深掩 조창수호심엄 |
조각된 창과 수놓은 문은 꽉 닫고서 |
怨臉愁眉獨知 원검수미독지 |
원망스런 뺨에 근심스런 눈썹을 혼자만 안다네. |
處處多逢馬跡 처처다봉마적 |
곳마다 말자취 많이 만나니 |
行行且避車塵 행행차피거진 |
걷고 걷다가 수레 먼지 피하지. |
長安陌上花柳 장안맥상화류 |
서울 길가의 버들꽃에 |
半是高官貴人 반시고관귀인 |
반절은 고관대작이고 반절은 귀인들이네. 『蓀谷詩集』 卷之五 |
해설
이 시는 6언시로, 어느 봄날 서울 거리에서 겪은 일상적인 경험을 노래함을 통해서 은근한 풍자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곳곳에서 말을 탄 고관과 귀인들을 많이 만나는데, 가다가 고관과 귀인이 탄 마차를 피하고 가다가 또 피한다. 그렇게 절반의 고관과 귀인들을 피했다. 그런데 서울의 거리에 봄이 와서 꽃과 버들이 한창 늘어졌는데, 꽃과 버들 속에 놀고 있는 사람은 또 나머지 절반인 고관과 귀인들이다. 결국 서울의 거리엔 온통 고관과 귀인들뿐이다.
이달(李達)은 허봉(許篈)과 아주 친했는데, 홍만종(洪萬宗)의 『소화시평(小華詩評)』 권상 109번에 이에 관한 일화(逸話)가 실려 있다.
“손곡 이달이 젊은 시절에 하곡 허봉과 친했는데, 손곡이 하루는 하곡의 집을 방문하였다. 때마침 허균(許筠)도 하곡을 찾아왔는데, 손곡을 깔보고서 예우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은 채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시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하곡이 ‘시인이 자리에 계시는데 아우는 일찍이 소문도 듣지 못했는가? 내 아우를 위해 시 한 수를 부탁드리겠소.’라 하고, 곧 그가 운자를 부르자, 이달은 운이 떨어지자마자 절구 한 수를 지었는데, 낙구는 ‘담 모퉁이 작은 매화 피고 지기 다 끝나자, 봄의 정신은 살구꽃 가지로 옮겨 갔구나.’ 였다. 이것을 보고 허균은 깜짝 놀라 얼굴빛을 바꾸며 사죄하고 마침내 맺어 시벗이 되었다[蓀谷李達少與荷谷相善, 一日往訪焉. 許筠適又來到, 睥睨蓀谷, 略無禮容, 談詩自若. 荷谷曰: “詩人在坐, 卯君曾不聞知耶? 請爲君試之.” 卽呼韻, 達應口而賦一絶, 其落句云: ‘墻角小梅開落盡, 春心移上杏花枝.’ 筠改容驚謝, 遂結爲詩伴].”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50~51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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