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인(1614)년 봄에 월사 이정구의 시에 차운하며
갑인춘 차월사(甲寅春 次月沙)
신흠(申欽)
楚客愁捐佩 孤村寄峽中
초객수연패 고촌기협중
病來雙鬢短 身外萬緣空
병래쌍빈단 신외만연공
花鳥春長在 雲山路不窮
화조춘장재 운산로불궁
餘生何所事 擬作鹿皮翁
여생하소사 의작록피옹
世故經千變 猶餘萬死身
세고경천변 유여만사신
江湖空滿地 梅柳更愁人
강호공만지 매류갱수인
旅夢魂長往 離懷歲又新
려몽혼장왕 리회세우신
多情沙老信 辛苦到漳濱
다정사로신 신고도장빈 『象村稿』 卷之十
해석
楚客愁捐佩 孤村寄峽中 | 초나라 나그네 근심스레 패옥 던지고 외론 마을에 골짜기 속에 기숙한다네【초객은 소인들의 참소를 받아 조정에서 쫓겨난 초 나라의 굴원(屈原)을 말하는데, 굴원의 초사(楚辭)에 “내 결옥을 강물속에 던져버리고 내 패옥을 예수가에 놓아 두었네[捐余玦於江中 遺余珮於澧浦].”라고 하여 벼슬을 그만둔 것을 노래하였다. 여기서는 상촌이 자신을 굴원에게 견주어서 말한 것인데, 이 당시 상촌은 선조(宣祖)의 유교칠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조정에서 쫓겨나 고향 김포(金浦)에서 지내고 있었다.】. |
病來雙鬢短 身外萬緣空 | 병 들어 양쪽 귀밑머리 짧아졌고 몸 밖 뭇 인연 부질없지. |
花鳥春長在 雲山路不窮 | 꽃과 새로 봄은 길고 구름과 산으로 길은 끝없네. |
餘生何所事 擬作鹿皮翁 | 남은 생에 무얼 할까? 녹피옹【한(漢) 나라 때 치천(淄川) 사람으로 녹피공(鹿皮公)이라고도 함. 젊었을 때 지방 관청의 말단 관리로 있다가 신천(神泉)이 있는 잠산(岑山)으로 들어가 사슴갖옷을 입고서 지초(芝楚)를 캐먹고 신천을 마시며 70여 년을 살았다 한다. 『列仙傳』 卷下】 되어보련다. |
世故經千變 猶餘萬死身 | 세상물정[世故] 천번 변함을 겪었지만 아직도 만번 죽을 뻔한 나머지의 신세라네. |
江湖空滿地 梅柳更愁人 | 강과 호수는 부질없이 땅에 가득하고 매화와 버들은 더욱 사람을 근심스레 하네. |
旅夢魂長往 離懷歲又新 | 나그네의 꿈에 넋은 길이 가며 이별의 회한에 해마다 또한 새로워. |
多情沙老信 辛苦到漳濱 | 다정한 월사 노인의 편지가 힘겹게 요양하는 곳【장빈(漳濱): 은거하여 요양하는 곳을 가리킨다. 장수(漳水)는 물 이름으로, 후한(後漢)의 시인 유정(劉楨)이 고질병에 걸려 이곳에 가서 요양하였다고 한다.】에 이르렀네. 『象村稿』 卷之十 |
해설
이 시는 갑인(甲寅)년(1614) 초봄 월사 이정구(李廷龜)의 편지를 받고 그 시에 화답하여 지은 것으로, 현실에서 벗어나 초연히 살고 싶은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초나라 객인 굴원(屈原)처럼 시름 속에 패옥 버리고 외로운 마을 산속에 의지해 있다【신흠은 당시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김포 하루암(何陋菴)에 머물고 있었다】. 몸은 병들어 양쪽 귀밑머리가 짧아져 가고 나와 관계된 온갖 인연이 부질없다. 세상을 피해 이곳에 거처하니, 꽃이 피고 새 우는 봄이 나날이 이어지고, 구름이 드리운 산길이 끝없이 뻗어 있다. 남은 인생 할 일이 무엇인가? 녹피옹처럼 살고 싶다.
이정구(李廷龜)는 신흠(申欽)의 시에 대해 남들은 문장이 시보다 더 낫다고 하지만 충담하여 아취가 있는 시를 보면 시가 문장보다 낫다고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人謂文勝詩 詩尤沖澹有趣 絶摹擬洗蹊徑 亦云詩勝文 「領議政贈諡文貞申公神道碑銘」).
상촌(象村)이 지은 「현옹자찬(玄翁自讚)」에, “내 자신이 현옹이라고 생각하면 이는 빠지고 머리는 벗겨지고 얼굴은 메마르고 몸은 야위어 지난날의 현옹이 아니고, 내 자신이 현옹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흙탕물을 뿌려도 더러워지지 않고 곤경을 겪어도 더욱 형통하니 곧 지난날의 현옹이다. 현옹이 아니라고 한 것이 옳은가? 맞는다고 한 것이 그른가? 내가 내 자신을 잊어버리면서도 지난날의 나를 잃지 않았으니, 내가 이른바 지난날의 현옹이 아니라고 한 것은 어찌 과연 지난날의 현옹이 아니겠는가? 천지는 하나의 손가락이고 만물은 한 마리의 말이다【『莊子』 「齊物論」에서 인용한 말임. 사물에 구애되지 않는 도추(道樞)의 입장에서 본다면 호호망망한 천지라도 단순하기 짝이 없는 사람 손가락과 같고 끝없이 변화 운행하는 만물도 한 마리의 달리는 말과 같다는 것임】. 사대(四大)가 비록 화합하였다 하더라도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란 말인가【사대(四大)는 도가(道家)에서는 도(道)ㆍ천(天)ㆍ지(地)ㆍ왕(王)을 말하나 여기서는 불가(佛家)의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을 가리킴. 모든 사물과 도리는 다 이 네 가지로 인해 생성되는데, 인간 또한 머리털ㆍ손톱ㆍ이ㆍ피부ㆍ근육ㆍ골수ㆍ빛깔은 다 지(地)에 속하고, 침ㆍ콧물ㆍ피ㆍ진액ㆍ가래ㆍ대소변은 다 수(水)에 속하고, 따뜻한 온기는 화(火)에 속하고, 움직이는 동작은 풍(風)에 속하며, 이 네 가지가 화합하여 인간이 되었다고 함. 불가의 논리에 입각하여 인생의 허무함을 말한 것임. 『圓覺經』】? 아! 그대 현옹은 하늘에 대해서는 능하고 인간에 대해서는 능하지 못한 자인가? 하늘이건 인간이건 내 장차 큰 조화 속으로 돌리련다[以爲玄翁也 則齒缺髮禿面瘦體削 非昔之玄翁 以爲非玄翁也 則泥而不滓 困而愈亨 是昔之玄翁 其非者是耶 其是者非耶 吾且忘吾 而不失其故 吾所謂非昔之玄翁者 豈非是昔之玄翁 天地一指 萬物一焉 四大雖合 孰眞孰假 噫爾玄翁 能於天而不能於人者耶 天耶人耶 吾將歸之大化].”라 하면서, 서(序)에 “지금 내 나이는 52세로 사실 노쇠하긴 하였으나 그다지 많은 나이를 먹은 것은 아닌데, 법망에 걸린 지 이미 5년으로서 사판(仕版)에서 삭적되고 심리에 부쳐지고 전리(田里)에 방귀되고 멀리 귀양을 가는 등 한 가지 죄목에 네 가지 벌칙이 병과되었으며, 법망으로 얽어 죄는 것이 부족하면 또 참소와 무함을 가하였다. 아! 어찌 늙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거울을 가져다 스스로를 비춰 보면 딴사람 같다. 이로 인해 자찬(自贊)하였는데 사실은 스스로를 조소한 것이다[余年五十二 固衰矣 而然非甚老者也 而罹文罔已五載 削仕版矣 下理矣 放歸矣 竄謫矣 一辜而四律竝矣 文致不足則又貝錦焉 噫 如之何不老 攬鏡自見如他人也 因以自贊 實自嘲也].”라 하여, 당시의 심정을 밝히고 있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151~153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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