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의 2019년 스터디는 뜨겁고도 벅찼다
올해는 1월 2일의 낙방소식을 들으며 시작됐다. 하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그 소식 이후의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은 1월부터 맹렬하게 한문공부를 했다
떨어지긴 했지만 울적하진 않았다. 충분히 가능성을 엿보았기 때문이고, 오랜만의 첫 시험치곤 정말 재밌게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건 다름 아닌 김형술 교수님의 전화였다. ‘결과를 물어보려 전화를 주셨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고 결과를 알려드렸더니, 김형술 교수님은 잠깐의 위로 후에 전혀 다른 얘기를 꺼내시더라. 그건 다름 아닌 바로 다음 주 화요일부터 스터디가 재개된다는 얘기였다. 그것도 방학 기간임에도 지금처럼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게 아닌 화요일과 목요일 두 번씩 진행한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내 눈엔 열정이 불타올랐다. 사실 임용을 보는 사람들은 일차 결과발표가 나고 떨어진 경우엔 대부분 칩거에 들어간다. 작년 일 년 내내 열심히 달렸으니 올해도 제대로 뛰기 위해선 1월부터 진땀을 빼지 않고 1월엔 푹 쉬어 에너지를 비축하고 2월이나 3월부터 본격적인 레이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당연히 교수님의 이런 제안이 없었다면 나도 1월 정도는 쉬엄쉬엄하면서 장기간 뛸 것을 대비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수님의 제안은 식어가던 내 열정에 땔감이 되어 확 피어오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1월 한 달 동안 매주 두 번씩 진행되는 스터디를 조금씩 맛들이면서 하다 보면 다시 공부의 방향을 잡고 올해 공부할 수 있는 기본기도 닦여지리라 생각했다.
▲ 1월부터 방학인데도 군소리 없이 나와 매주 두 번씩 공부를 했다.
하지만 이미 ‘한문이란 늪에 빠지다’라는 기록으로 남겼다시피 작년에 했던 스터디에 비해 1월에 하는 스터디는 여러모로 힘겨웠다. 우선 한 번에 보는 양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보통 소화시평에 나오는 글 3~4편 정도를 보는 정도로 스터디가 진행됐지만 이때는 5~8편까지 보게 됐으며 그에 따라 시간도 거의 3시간 정도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더 문제가 되는 점은 이게 일주일에 한 번만 있는 스터디가 아니라 일주일에 두 번씩 있는 스터디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작년에 비하면 3~4배의 힘이 들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부랴부랴 쫓아가는 형국이 이어졌다.
여기에 나의 경우는 스터디를 한 후에 한 편 한 편 후기를 쓰던 습관이 있었던지라 그 많던 내용을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부담이었고 지루한 작업이기도 해서 더욱 힘겨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힘겹던 시간들을 보내고 1월에 스터디가 끝났을 땐 말로는 미처 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게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스터디도 준비했고 끝나고 나선 정리를 하며 최선을 다하려 했었고 그 순간 교수님은 가정의 우환이 있었음에도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스터디를 이끌어주셨으며, 올해부터 참여한 4학년 학생들도 방학임에도 전혀 군소리를 하지 않고 빠짐없이 나와 한껏 어우러졌다. 그러니 스터디가 끝난 순간에 왜 희열이 느껴지지 않았겠으며, 우리가 함께 힘겨운 시간들을 버티어내고 시너지를 만들었다는 동질감이 없었겠는가.
▲ 눈 내린 전주대학교. 운치는 정말 좋다.
올해 스터디의 마지막 장면
그 후로 학기에도 쉼 없이 스터디를 하며 공부를 했고 7월에 스터디를 진행하여 여름방학이 다가왔음에도 더위를 잊은 우리들은 1월에 그랬던 것처럼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리고 바로 11월 14일에 2학기 마지막 스터디를 하며 1월부터 진행되었던 올해의 스터디는 마침표를 찍었다. 임용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으니 스터디는 마침표를 찍을 수밖에 없음에도 그 순간은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올해 고군분투하며 한문의 세계를 맘껏 유영할 수 있도록 안내해줬던 스터디이며, 그 스터디의 과정 속에 도반들이 함께 해주며 외롭지 않도록 해줬던 스터디이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스터디가 끝났을 때 시험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하며 북돋워주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올핸 임용시험장에 가진 않겠다는 얘기도 얼핏 하셨다. 작년은 전주에서 시험을 보며 오랜만에 교문 앞에서 펼쳐지는 후배들의 응원전을 볼 수 있었고 그게 겸연쩍은 나머지 나는 도망치듯 그곳을 피해갔던 경험이 있다. 그렇게 잘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은 교문 앞에만 서 있는 일반적인 응원방식에서 벗어나 아예 음료수를 챙겨서 고사장까지 들어오셨다. 그래서 반가운 듯, 어색한 듯 고사장에서 인사를 하며 음료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교수님에겐 마음 짠한 기억으로 남았나 보더라. 몇 번 스터디를 할 때 그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며 “막상 고사장에 들어가 수험생들을 보니 맘이 무거워지더라. ‘그래 얘네들은 지금 이 곳에 인생을 걸고 온 거지’라는 생각 때문에 말이야.”라고 말했었다. 바로 그 안타까움과 안쓰러운 마음이 올핸 시험장엔 가지 않고 멀찍이서 응원하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한 거겠지.
▲ 올해 마지막 스터디 날. 시원섭섭했다. 휘영청 둥근달이 떴다.
함께 스터디를 했던 그대들이여
정말 치열했던 스터디가 끝나고 보니, 마치 화려하고 열정 넘치던 무대에서 노래를 하던 가수가 텅 빈 공연장에 홀로 남아 스산함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처럼 헛헛함이 몰려오더라. 그 안에 시원함도 있을 것이고, 섭섭함도 함께 있을 것이다.
정의할 수 없이 복잡해진 마음결을 따라 스터디를 함께 했던 인연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이젠 끝내보려 한다. 이제 임용까진 고작 D-6일 밖에 남지 않았다. 아래에 인용했던 글처럼 이제 우린 지금까지 성실하게 쌓아왔던 실력을 인정하고 번잡한 걱정, 막연한 불안, 현실의 답답함, 결과에 대한 불신은 떨쳐버린 상태에서 간절히 발원하고 입류하면 된다. 우리들이 열심히 살아왔던 올해를 추억하며~
부처님은 인간의 모든 번뇌의 뿌리에는 ‘貪瞋癡’가 있다고 했다.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 물론 셋은 나란히 함께 간다. 그런데 사랑만큼 이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건도 없다. 대상을 맹렬하게 욕망하고(貪), 그것이 뜻대로 안 되면 분노의 화염에 휩싸이고(瞋), 그 다음엔 앞이 깜깜해지는 무명의 늪(癡)에 빠진다. 간신히 그 늪에서 벗어난 다음엔 다시 똑같은 틀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이 貪瞋癡의 사슬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아주 간단하다. 간절히 발원하면 된다! 발원은 욕심과 다르다. 아니, 그 반대다. 욕심이 내가 상대를 소유하기 위해 안달하는 것이라면, 발원은 자기로부터 벗어나 더 큰 인연의 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즉, 그것은 ‘현재의 나’와 ‘대상’을 고정시켜 놓고 대상만 나에게 굴러 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이라는 “사건 속으로 入流하는 것”(농담)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선 마음을 어지럽히는 각종 번잡한 것들을 다 놓아버려야 한다.
-고미숙, 「호모 에로스」, 그린비, 2008년, 184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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