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일, 기회가 왔다
▲ 임고반 내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하루 하루의 순간들.
작년 이맘때가 생각난다. 임고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그때 불연듯 ‘지금 내가 합격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5년 동안이나 임용공부를 했다손 치더라도 7년이나 한문공부를 하지 않았고 작년에서야 겨우 다시 임용을 볼 생각을 하며 공부를 시작했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정립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가 4월에서야 방향을 잡고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작 7개월 정도를 공부한 것을 통해 합격 운운하는 건 도가 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경수 누나를 만났을 때 “이번엔 합격은 바라지 않아요. 만약 내가 합격하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여러 한문임용생들에게 낭패감을 안겨주는 게 될 테고, 저 또한 그렇게 얼렁뚱땅 되는 건 원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누군들 임용합격을 하지 않고 싶겠으며 누군들 불확실한 미래에 몸을 투신하고 싶겠는가. 그 말마따나, 또는 나의 원래 실력답게 임용에선 낙방을 했지만, 오랜만에 정말 재밌게 임용고사를 봤었고 뭣 모르고 달려들어 7개월 한 것치곤 정말 좋은 결과도 얻었다.
▲ 2010년에 마지막 임용시험을 온고을중학교에서 복귀 임용고사를 봤다. 운명의 기구함이자 아주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운명아 너도 계획이 다 있구나^^;;'
원 없이 공부했고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다
그렇게 맞이한 2019년 일 년은 나에겐 둘도 없는 한해였다. 작년에 터득한 공부방법을 실질적으로 갈무리하며 내실을 다지는 한 해였으니 말이다.
블로그를 공부장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작년에 여러 방법으로 연구하고 해보며 터득했었던 것이다. 그러니 올해 다시 임용공부를 하게 됐을 땐 ‘이 방법을 어떻게 더욱 의미 있게 활용할 것인가?’하는 부분이 나에겐 화두였다. 임용을 하루 앞에 둔 지금, 11개월이나 이 화두를 가지고 지금 할 수 있는 얘기는 다른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하고 싶은 방식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한문공부가 예전엔 부담이었고 직면하기 힘든 것이었다. 당연히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결과가 안 좋게 나오는 순간 그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강했으니, 결과에 따른 공부만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결과가 안 좋을지라도 내가 나의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온 이 길, 그리고 내가 해온 공부는 결코 나에겐 헛된 시간이거나 무의미한 순간으로 남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남길 족적, 그게 무엇이 됐든 최선을 다해볼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격려하게 됐던 것이다.
그런 생각의 변화를 통해 올해는 열심히 순간들을 쌓아갔고 내가 하고 싶다고 느낀 것들은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며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그와 같은 공부방법은 이미 올해 스터디를 마치며 남긴 글에 낱낱이 담았으니 그걸 보면 된다. 그럼에도 여기서 한 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여느 임용공부를 할 때 보다 올 한해는 더욱 충실하게 더욱 재밌게 더욱 신나게 한문공부만을 생각하고 한문공부만을 즐기며 하루하루 살아와 지금에 이르렀다고 자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경제적인 부분이었다. 살기 위해선 일정량의 돈이 필요하지만 그게 충족되질 않으니 좌충우돌해야 했고 뭐든지 지금 공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도 다겸이가 일정량의 돈을 지원해줬고 여러 사람들이 십시일반을 해줘서 올 한 해를 버틸 수 있었고 한문공부만을 생각하고 실천하며 1년 한 해를 살아낼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매우 감사한 일이다.
▲ 임고반에 오면 컴퓨터부터 켜고 시작한다. 그런 다음 오늘 하루를 잘 보내보자란 의미로 사진을 찍는다. 내가 남기는 공부의 족적이다.
D-1, 이제 결실을 따러 가자
드디어 내일이면 임용시험이 있다. 기다렸던 순간이면서 기피하고 싶던 순간이기도 하다. 모든 시험을 코앞에 둔 사람의 심리가 이럴 것이다. 한 편으론 보란 듯이 자신의 기량을 맘껏 뽐내고 싶기에 그 순간이 오길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막상 이렇게 다가온 순간엔 ‘이러다 보기 좋게 떨어지면 어쩌나?’하는 심정으로 꽁무니 빼고 싶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올핸 두 가지 부분에서 충분히 해볼 만하고 승산도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이미 말했다시피 작년엔 실력적인 부분이든, 심정적인 부분이든 내 스스로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반면에 올해 충분히 공부했고 즐기며 하나하나 족적을 만들어갔으니 이쯤이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게 자칫 잘못하면 과욕이나 거만함으로 비칠 염려도 없지 않지만, 그렇대도 괜찮다. 그만큼 여느 때에 비해 의기양양하게 시험에 임하고 작년처럼 포근히 시험문제가 나에게 안겨오는 기분으로 풀 수 있는 마음상태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겸손하냐 거만하냐의 두 가지 심리상태만 있는 게 아니라, 시험에 임하며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마음상태라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 시험에도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하며 한껏 어우러져 볼 테다.
여기에 덧붙여 올핸 한문교사 선발 인원이 2.5배 정도 늘어 68명이나 뽑는다. 26명을 뽑았던 걸 생각한다면 격세지감도 이런 격세지감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건 내가 두 번째로 임용시험을 봤던 2007년 임용시험에서나 선발했던 수치이다. 그 후로 선발인원이 한 해 한 해 줄고 줄어 언젠가는 전국에서 한문교사를 19명 정도만 뽑을 때도 있었으니 지금이야말로 호기라 생각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호기가 왔다는 현실과 나의 실력도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올랐다는 자부로 이번 시험을 볼 것이다. 그래 기회는 언제나 다가오지만 과연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자신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이번엔 보란 듯이 그 기회를 낚아챌 수 있을 것인가, 늘 그래왔듯 씁쓸한 미소만을 지으며 돌아서고 말 것인가. 이제 하루만 지나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 가을이 한껏 내린 전주대의 풍경. 임고반에서 보면 이런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저 멀리 있는 모악산의 정기도 받을 수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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