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8년 스터디를 통해 한문공부의 방향을 잡다
어느 곳에 가든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을 때, 우린 그걸 인연이라고 부른다. 이미 ‘인연론’이란 글에서 “人緣으로 한정지어 생각하던 인식의 관념을 넘어서 因緣으로 회귀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점점 죽음으로 다가가는 ‘운명론적인 인간’에서 벗어나 뭇 인연들과 마주치고 공명하여 나날이 새롭게 변해가는(日新又日新) ‘인연론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라고 썼듯이,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인식의 전복으로, 삶의 전환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지금부턴 스터디를 통해 만나게 됐던 한문공부란 공통분모를 지닌 우리들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한다.
▲ 인연과 어떻게 마주치느냐에 따라 삶의 행로가 바뀐다.
7년 만에 하는 한문공부, 그리고 헤맴
1월 2일에 임용고사 1차 합격자 발표가 났고 낙방이란 고배를 마셨다. 대안학교에 교사로 취직하게 되면서 7년 동안이나 손을 놨던 한문공부를 다시 하겠다고 전주로 무작정 내려왔을 땐 앞이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7년이란 공백은 한문을 완전히 외계어처럼 느끼게 했으며, 임용처럼 정답이 있는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 또한 새까맣게 잊어버려 뭘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임용시험에 접근해야하는지 막막하게 느끼게 했다.
이렇게 한 달 동안을 헤매며 의자에만 그냥 앉아 있을 뿐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 하던 방식이 있으니 옥편을 뒤져가며 모르는 한자들을 찾고 원문을 해석하던 방식대로 공부를 하긴 했지만, 뒤돌아서면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과연 이렇게 공부를 해서 정말 임용시험을 볼 수나 있는 것일까?’하는 걱정에 한 달을 한숨 속에서 보냈던 것이다.
▲ 3월에 어떻게든 적응하려 애쓰며 사진도 붙여보고 글도 써봤지만 쉽지 않다. 공부가 가장어려워요.
블로그를 한문공부장으로 활용하다
그러다 만난 교수님이 진행하는 스터디는 나에겐 한문공부에 대한 변곡점을 안겨줬다. 처음 참여할 때만 해도 ‘난 아무 것도 모르는 초심자이니,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쪽쪽 스터디의 정수를 빨아들이자’라는 마음으로 참여했었다. 하지만 교수님은 내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조금이라도 한문에 대해 잘 알 거라 생각했는지, 바로 다음 주에 하게 될 내용을 발표하도록 배정해줬다. 이건 어찌 보면 무리수일 수도 있는데, 대안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생각지도 못한 계기들이 만들어졌을 땐 피하지 말고 용기 내어 도전해보자’라는 마인드가 생겼기 때문에 나도 단번에 “OK!”를 외쳤던 것이다. 실제로 이 발표를 준비하며, 그리고 스터디 시간에 교수님이 원문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며 한문 공부에 대한 방향을 잡게 됐으니 나에겐 아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부여된 과제였다고 지금은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이 과정을 통해 한문공부에 대해 두 가지 방향을 잡게 됐다. 첫째 블로그를 공부장으로 활용하게 됐다는 점이다. 단재학교에 있으면서도 블로그를 활동기록장이나 사진 자료실로 사용했던 전력이 있었다. 단재학교는 ‘교사가 활동을 한 후 남기는 기록이야말로 좋은 수업의 표본이다’라는 특성이 있었고 나도 오래전부터 일기를 써오던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의 특성과 나의 습관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블로그를 전면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익힐 수 있었다. 바로 그렇게 익히게 된 내용을 한문공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인데,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발표를 준비하면서 발표자료를 만드는 과정 과정을 면밀히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四書는 물론이고 한문 산문, 한시, 한문 소설 등 공부했던 내용들을 블로그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이런 공부방식의 효과는 뭐니 뭐니 해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공부하게 됐다는 것이고, 뒤돌아서면 까맣게 잊혀지는 내용들을 언제든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1. 인물지도
| 삼국 | 최치원 | 최승우 | 박인량 | 최유청 |
| 고려 | 정지상 | 김부식 | 이인로 | 임춘 |
| 김극기 | 진화 | 이규보 | 일연 | |
| 최해 | 이제현 | 이곡 | 정포 | |
| 이색 | 정몽주 | 정도전 | 이숭인 | |
| 이첨 | 권근 | 길재 | 변계량 | |
| 조선 | 신숙주 | 성삼문 | 서거정 | 강희안 |
| 강희맹 | 성간 | 김종직 | 김시습 | |
| 성현 | 유호인 | 남효온 | 박상 | |
| 김안국 | 이행 | 박은 | 김정 | |
| 서경덕 | 정사룡 | 임억령 | 이황 | |
| 조식 | 정유길 | 노수신 | 황정욱 | |
| 고경명 | 송익필 | 성혼 | 이이 | |
| 정철 | 백광훈 | 최경창 | 이달 | |
| 최립 | 이산해 | 임제 | 허봉 | |
| 이항복 | 차천로 | 유몽인 | 이수광 | |
| 이정구 | 신흠 | 허균 | 권필 | |
| 이안눌 | 이식 | 장유 | 이명한 | |
| 정두경 | 김득신 | 송시열 | 남용익 | |
| 박세당 | 김석주 | 김만중 | 홍만종 | |
| 김창협 | 김창흡 | 홍세태 | 이의현 | |
| 이병연 | 이익 | 이용휴 | 신광수 | |
| 홍양호 | 이규상 | 박지원 | 이덕무 | |
| 유득공 | 박제가 | 정조 | 이서구 | |
| 이옥 | 정약용 | 김려 | 이양연 | |
| 홍석주 | 김매순 | 김정희 | 이건창 | |
| 김택영 | 황현 | |||
| 인물이야기 | 한국한시 | 한국산문 | ||
| 중국 | 맹호연 | 한유 | 이백 | 유종원 |
| 진사도 | 두보 | 소식 | 이지 | |
| 백거이 | 구양수 | |||
| 고문진보&산문 | 중국한시 |
2. 임용지도
| 2015 개정 교육과정 |
내용체계 | 한문 범위표 | 2008 공청회 | |
| 품사(실사/허사) | 한자&단어짜임 | 문장 구조&유형 | 한시 시상전개 | |
| 한문문체 | 수사법 | |||
| 공부 | 한문기초 | 논문 | 한문소설 | 소설약사 |
| 한시약사 | 한시담론 | 시화 | 서사한시 | |
| 인물 | 교과서 | 고사성어 | ||
| 임용 | 수업실연 | 기출문제 | 자체문제 | 지도안 |
| 면접 | 교육학 | 경쟁률 | 공고문 | |
3. 목차지도
| 고전 | 대학 | 중용 | 논어 | 맹자 | ||||
| 공자가어 | 노자 | 묵자 | 사기 | |||||
| 소학 | 순자 | 시경 | 열자 | |||||
| 장자 | 전국책 | 주역 | 학기 / 존사 | |||||
| 문집 | 고금소총 | 농암잡지 | 도곡집 | 동인시화 | ||||
| 소화시평(上/ 下) | 시화총림 | 어우야담 | 여한십가문초 | |||||
| 열하일기 | 용재총화 | 지봉유설 | 파한집 | |||||
| 책 | 우리한시를읽다 | 한시미학산책 | 비슷한것은가짜 | 중국역사 | ||||
| 좋은 글 | ||||||||
| 그림책 | ||||||||
| 건빵 | 강의 후기 | 여행 후기 | 월간기록 | 회고록 | ||||
| 작품을 감상하다 | 만남 이야기 | 서문 & 발문 | 임용Life | |||||
| 한문이랑 놀자 | 게임 정보장 | |||||||
| 글 | 18년 | 19년 | ||||||
| 사진 | 19년 | |||||||
| 업무 | 대학입시 | |||||||
▲ 블로그를 활용하게 되면서 검색을 쉽게 하기 위해 블로그 네비게이션을 만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공부를 하니 한문이 재밌어지던 걸
둘째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부를 하게 됐다는 점이다. 예전에 임용시험을 준비했을 땐 봐야 하는 것과 보지 않아야 할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려 했었다. 그도 그럴 듯이 봐야 할 문장은 많고 시험을 준비해야 할 시간은 제한되어 있으니 그 시간 내에 최대한 효과를 내기 위해선 임용에 주로 나올 만한 문장, 범위표에 명시된 문장들 위주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교수님과 스터디를 하면서 보니 두 가지 부분이 눈에 띠었다. 하나는 본문에 명시된 다른 작품이 나오면 최대한 보려 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소화시평 상권 42번에서 ‘말이 매우 전아하고 고와 당나라 사람들의 「일찍 조회한다早朝大明宮呈兩省僚友 / 奉和賈至舍人早朝大明宮」라는 작품들과 버금갈 만하다. 詞極典麗, 可爲唐人「早朝」之亞.’라는 문장이 나오면 당연히 ‘홍만종은 그렇게 생각했구나’라고 받아들이고 그냥 넘어갈 텐데, 교수님은 당나라 사람들이 지은 「일찍 조회하며早朝」에 관련된 두 시를 가져오시며 보게 하고 과연 어떤 부분이 버금간다고 평할 만한지 생각해보게 하니 말이다. 즉, 한문공부란 무작정 양으로 치댈 게 아니라 하나를 공부하더라도 제대로 공부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걸 이런 과정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소화시평 상권 47에서처럼 「嗚呼島」 시에 대한 이숭인과 정도전의 일화가 나오고 이숭인 시만 인용된 경우엔, 정도전이 지은 「嗚呼島吊田橫」를 제시하여 함께 보게 하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건 이처럼 한 작품을 보는 중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그 이야기로 점핑하여 그걸 공부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나도 ‘빨래터 아낙을 느꺼워하며 지은 시 → 『十八史略』을 통해 한신의 이야기 알아보기 → 유방과 한신이 어떻게 맞붙었으며, 그의 책사들은 어떻게 활동했는지 알아보기 → 이 시에 나온 ‘爪牙之臣’을 알기 위해 『范增論』 보기’와 같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부를 하게 됐다. 바로 이런 공부 방식의 효과는 한 번 볼 내용을 종횡으로 누비며 보다 보니 스키마가 단단하게 만들어져 공부의 기초가 제대로 쌓여간다는 점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공부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고 작년 임용시험은 오랜만에 도전하는 것임에도 신나게 풀 수 있었고 그만큼 좋은 결과도 얻을 수 있었다.
▲ 꼬리에 꼬리를 물며 하이퍼링크를 다는 횟수들가 늘어났다.
2. 우리의 2019년 스터디는 뜨겁고도 벅찼다
올해는 1월 2일의 낙방소식을 들으며 시작됐다. 하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그 소식 이후의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은 1월부터 맹렬하게 한문공부를 했다
떨어지긴 했지만 울적하진 않았다. 충분히 가능성을 엿보았기 때문이고, 오랜만의 첫 시험치곤 정말 재밌게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건 다름 아닌 김형술 교수님의 전화였다. ‘결과를 물어보려 전화를 주셨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고 결과를 알려드렸더니, 김형술 교수님은 잠깐의 위로 후에 전혀 다른 얘기를 꺼내시더라. 그건 다름 아닌 바로 다음 주 화요일부터 스터디가 재개된다는 얘기였다. 그것도 방학 기간임에도 지금처럼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게 아닌 화요일과 목요일 두 번씩 진행한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내 눈엔 열정이 불타올랐다. 사실 임용을 보는 사람들은 일차 결과발표가 나고 떨어진 경우엔 대부분 칩거에 들어간다. 작년 일 년 내내 열심히 달렸으니 올해도 제대로 뛰기 위해선 1월부터 진땀을 빼지 않고 1월엔 푹 쉬어 에너지를 비축하고 2월이나 3월부터 본격적인 레이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당연히 교수님의 이런 제안이 없었다면 나도 1월 정도는 쉬엄쉬엄하면서 장기간 뛸 것을 대비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수님의 제안은 식어가던 내 열정에 땔감이 되어 확 피어오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1월 한 달 동안 매주 두 번씩 진행되는 스터디를 조금씩 맛들이면서 하다 보면 다시 공부의 방향을 잡고 올해 공부할 수 있는 기본기도 닦여지리라 생각했다.
▲ 1월부터 방학인데도 군소리 없이 나와 매주 두 번씩 공부를 했다.
하지만 이미 ‘한문이란 늪에 빠지다’라는 기록으로 남겼다시피 작년에 했던 스터디에 비해 1월에 하는 스터디는 여러모로 힘겨웠다. 우선 한 번에 보는 양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보통 소화시평에 나오는 글 3~4편 정도를 보는 정도로 스터디가 진행됐지만 이때는 5~8편까지 보게 됐으며 그에 따라 시간도 거의 3시간 정도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더 문제가 되는 점은 이게 일주일에 한 번만 있는 스터디가 아니라 일주일에 두 번씩 있는 스터디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작년에 비하면 3~4배의 힘이 들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부랴부랴 쫓아가는 형국이 이어졌다.
여기에 나의 경우는 스터디를 한 후에 한 편 한 편 후기를 쓰던 습관이 있었던지라 그 많던 내용을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부담이었고 지루한 작업이기도 해서 더욱 힘겨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힘겹던 시간들을 보내고 1월에 스터디가 끝났을 땐 말로는 미처 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게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스터디도 준비했고 끝나고 나선 정리를 하며 최선을 다하려 했었고 그 순간 교수님은 가정의 우환이 있었음에도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스터디를 이끌어주셨으며, 올해부터 참여한 4학년 학생들도 방학임에도 전혀 군소리를 하지 않고 빠짐없이 나와 한껏 어우러졌다. 그러니 스터디가 끝난 순간에 왜 희열이 느껴지지 않았겠으며, 우리가 함께 힘겨운 시간들을 버티어내고 시너지를 만들었다는 동질감이 없었겠는가.
▲ 눈 내린 전주대학교. 운치는 정말 좋다.
올해 스터디의 마지막 장면
그 후로 학기에도 쉼 없이 스터디를 하며 공부를 했고 7월에 스터디를 진행하여 여름방학이 다가왔음에도 더위를 잊은 우리들은 1월에 그랬던 것처럼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리고 바로 11월 14일에 2학기 마지막 스터디를 하며 1월부터 진행되었던 올해의 스터디는 마침표를 찍었다. 임용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으니 스터디는 마침표를 찍을 수밖에 없음에도 그 순간은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올해 고군분투하며 한문의 세계를 맘껏 유영할 수 있도록 안내해줬던 스터디이며, 그 스터디의 과정 속에 도반들이 함께 해주며 외롭지 않도록 해줬던 스터디이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스터디가 끝났을 때 시험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하며 북돋워주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올핸 임용시험장에 가진 않겠다는 얘기도 얼핏 하셨다. 작년은 전주에서 시험을 보며 오랜만에 교문 앞에서 펼쳐지는 후배들의 응원전을 볼 수 있었고 그게 겸연쩍은 나머지 나는 도망치듯 그곳을 피해갔던 경험이 있다. 그렇게 잘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은 교문 앞에만 서 있는 일반적인 응원방식에서 벗어나 아예 음료수를 챙겨서 고사장까지 들어오셨다. 그래서 반가운 듯, 어색한 듯 고사장에서 인사를 하며 음료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교수님에겐 마음 짠한 기억으로 남았나 보더라. 몇 번 스터디를 할 때 그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며 “막상 고사장에 들어가 수험생들을 보니 맘이 무거워지더라. ‘그래 얘네들은 지금 이 곳에 인생을 걸고 온 거지’라는 생각 때문에 말이야.”라고 말했었다. 바로 그 안타까움과 안쓰러운 마음이 올핸 시험장엔 가지 않고 멀찍이서 응원하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한 거겠지.
▲ 올해 마지막 스터디 날. 시원섭섭했다. 휘영청 둥근달이 떴다.
함께 스터디를 했던 그대들이여
정말 치열했던 스터디가 끝나고 보니, 마치 화려하고 열정 넘치던 무대에서 노래를 하던 가수가 텅 빈 공연장에 홀로 남아 스산함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처럼 헛헛함이 몰려오더라. 그 안에 시원함도 있을 것이고, 섭섭함도 함께 있을 것이다.
정의할 수 없이 복잡해진 마음결을 따라 스터디를 함께 했던 인연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이젠 끝내보려 한다. 이제 임용까진 고작 D-6일 밖에 남지 않았다. 아래에 인용했던 글처럼 이제 우린 지금까지 성실하게 쌓아왔던 실력을 인정하고 번잡한 걱정, 막연한 불안, 현실의 답답함, 결과에 대한 불신은 떨쳐버린 상태에서 간절히 발원하고 입류하면 된다. 우리들이 열심히 살아왔던 올해를 추억하며~
부처님은 인간의 모든 번뇌의 뿌리에는 ‘貪瞋癡’가 있다고 했다.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 물론 셋은 나란히 함께 간다. 그런데 사랑만큼 이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건도 없다. 대상을 맹렬하게 욕망하고(貪), 그것이 뜻대로 안 되면 분노의 화염에 휩싸이고(瞋), 그 다음엔 앞이 깜깜해지는 무명의 늪(癡)에 빠진다. 간신히 그 늪에서 벗어난 다음엔 다시 똑같은 틀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이 貪瞋癡의 사슬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아주 간단하다. 간절히 발원하면 된다! 발원은 욕심과 다르다. 아니, 그 반대다. 욕심이 내가 상대를 소유하기 위해 안달하는 것이라면, 발원은 자기로부터 벗어나 더 큰 인연의 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즉, 그것은 ‘현재의 나’와 ‘대상’을 고정시켜 놓고 대상만 나에게 굴러 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이라는 “사건 속으로 入流하는 것”(농담)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선 마음을 어지럽히는 각종 번잡한 것들을 다 놓아버려야 한다.
-고미숙, 「호모 에로스」, 그린비, 2008년, 184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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