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생각지 못한 생맥파티로의 초대, 그리고 어우러진 사람들
스터디는 9시 50분쯤 끝이 났다. 짐을 챙기려 부스럭거리던 그때 교수님이 오시더니 “어디서 공부하세요?”라고 물으신다. 그래서 임고반에서 하고 있다고 했더니, 지금 시간 되냐고 다시 물으신다.
▲ 형태형이 줬다고 한다. 소현성 교수의 추천으로 둘이 만났고 형태형은 대학원에 올 생각이 있다고 한다.
생각지도 못한 생맥 파티로의 초대
순간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러시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혼불의 메아리 심사 위원이셨던데 거기서 나를 봤다는 걸 인지하신 건가? 그게 아니면 무언가 부탁이 있으신 건가?’하는 오만잡생각이 들었지만, 교수님에게 어렵게 대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 ‘교수방에서 차 한 잔 하자’는 정도의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생맥주 한 잔 하자는 얘기더라.
완전히 쾌재를 불렀다. 재학생 시절에도 교수님과 함께 술을 마신 경우는 많지 않았다. 고작 생각나는 거라곤 축제 때나 서당에 들어갔을 때가 전부였고, 이렇게 만나서 마셔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더욱이 마지막으로 마셨던 시기는 아무리 시간을 늦춘다 해도 08년도가 마지막인 듯하다. 그렇다면 정말 10년 만에 스터디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교수님과 술을 한 잔 하는 셈이니, 완전히 기대가 될 수밖에는 없었다. 역시 임용공부를 생각하며 전주로 내려와야겠다고 맘을 먹었고 결국 이렇게 내려와 자리를 서서히 잡게 된 건 여러모로 옳은 선택이었다. 서울에서 전주에게 내려오기 전에 선배에게 간다고 들뜬 마음에 말을 했을 때 선배는 잘 됐다고 하기보다 싫은 티를 팍팍 냈었다. 그게 몹시 서운했고 맘의 갈피도 쉽사리 잡지 못했는데,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나에게 옳은 방향이었고 한문 공부라는 걸 생각할 때도 매우 정확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교수님과 단 둘이 마시나 했는데, 점차 판이 키워지더니 올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오라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급 전개 되었다. 그건 곧 나에게만 특별히 할 얘기가 있어서 이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고 아직 교수님은 나에 대해 여러 가질 알고 있지 못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연락을 쫙 돌려봤지만 대부분은 빠졌고 2학년 남학생 세 명과, 그리고 40대를 목전에 둔 아저씨인 나와 교수님 이렇게 5명이서 하게 되었다. 산뜻한 조합이다. 재학생 중에 가장 파워풀하고 의욕에 가득 찬 녀석들과 무르익은 듯하지만 실력은 개뿔 없는 나와, 한 길만을 파오며 이제 막 교수가 되어 정열을 불사르고 있는 교수의 조합이었으니 말이다.
처음에 들어가려 했던 중국집은 가격이 싸다는 게 장점이긴 했는데 문을 닫을 시간이었기에 나와야 했다. 그래서 간 곳이 구정문 출입구 쪽의 사진관 옆에 있는 서부상회라는 간판이 달린 술집이었다. 들어가니 야시장 같은 분위기로 세팅된 것이 눈에 띄더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직은 모두가 낯설고 나도 이 자리에 있다는 게 꿈 같기도, 그리고 내가 왜 있어야 하는지 어리둥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색하다고 뺄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나의 자리를 만들어가야 하니 말이다.
▲ 와웅 굿. 이건 모임이 다 끝나고 새벽 3시에 찍은 사진이다.
한문만이 있는 게 아니라 삶 속에 한문이 있다
교수님은 첫 이야기의 포문을 총장 직선제로 여셨고 교수와 직원들은 찬성했지만 학생들은 반대했다는 사실에 분개하셨다. 가장 진취적이어야 할 시기에,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할 시기에 그러지 못하다는 질책이 숨어 있었다.
그러면서 되게 의외적인 부분들이 많이 눈에 보였다.
한문공부를 한다고 너무 한문 문장의 강독에만 매달리지 말고 미술관, 콘서트에도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한문교육과에 있었고 교수님들을 만나봤지만 이런 식의 얘기를 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 나야 대안교육판에 있었기에 이런 것들을 강조하는 게 어색하지 않지만, 한문은 다양한 것들의 만남이라기보다 외골수적인 기질이 분명히 작용하기에 완전히 어색한 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한문은 하나의 문자이자 그 당시 사람들의 삶으로, 지금의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수 같은 게 담겨져 있기에 그 말은 충분히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만큼 하고 강제하진 말라
강제적으로 하려 해선 안 되고 할 만큼 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1학년 신입생들이 잘 적응하지 못해 붕 뜬 상황이기에 2학년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챙겨주려 해야 한다는 말에서 나왔다. 문제의식은 여학생들이 서당 들어가는 것을 꺼린다는 거였다. 이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찔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지만, 이들은 나를 모르니 학과 생활을 잘 했던 사람인 양 분개했고 아이들이 우리 때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열변을 토해냈다. 근데 솔직히 달라지긴 뭐가 달라졌는가. 나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방외인이었고 학과 활동엔 거의 무관심하다시피 했으니 이들이 오늘 걱정하는 대상엔 나도 들어갔던 것인데 말이다.
근데 교수님의 말이 괜찮았다고 느낀 지점이 바로 거기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란 게 정해져 있고 우린 거기까지만 하면 된다는 뉘앙스였다. 책임의식에 쪄들 필요도 내가 개변해야겠다는 목적의식도 너무 심하게 가질 필욘 없다. 어차피 사람은 각자가 각자의 구세주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식은 하나밖에 없는 자식 문제에서도 그대로 표출되었다. 지금 아이는 양평에 있는 발도르프 학교에 다니고 있고 아내도 그곳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주말에만 올라가서 보고 내려오는 생활을 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전주에서 함께 살 예정이란다. 지금이라도 당장 전주에 오라고 해서 함께 살고 싶지만, 아들이 학교를 재밌게 다니고 있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노라고 했다. 아들도 그곳에서 자신만의 생활과 인간관계를 구축했으니 지역을 바꿔가며 이사하는 건 쉽지 않으니 말이다.
▲ 이녀석들이 2학년 3인방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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