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의 자화사에 올라
등윤주자화사(登潤州慈和寺)
최치원(崔致遠)
登臨暫隔路岐塵 吟想興亡恨益新
畫角聲中朝暮浪 靑山影裏古今人
霜摧玉樹花無主 風暖金陵草自春
賴有謝家餘境在 長敎詩客爽精神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해석
登臨暫隔路岐塵 등림잠격로기진 |
높이 올라 잠시나마 속세 먼지 떠났지만 |
吟想興亡恨益新 음상흥망한익신 |
흥망을 생각하니 한이 더욱 더치네. |
畫角聲中朝暮浪 화각성중조모낭 |
뿔 나팔【화각(畫角): 채색 그림을 넣은 고대 악기로 軍中의 시각을 알리거나 사기 진작에 씀. 윤주에 전쟁이 많았음을 암시.】 소리 속에 아침저녁 물결 치고 |
靑山影裏古今人 청산영리고금인 |
청산【청산(靑山): 묘지를 가리킬 때가 많음. 자화사 인근의 공동묘지를 묘사하는 것으로 본다면 인생의 허무함이 강조됨.】 그림자 속에서 고금의 인간 무상해라. |
霜摧玉樹花無主 상최옥수화무주 |
서리에 시든 옥수의 꽃【옥수화(玉樹花): 진(秦) 후주(後主)가 매양 빈객을 불러 장귀비 등과 함께 잔치를 벌였는데 여러 귀인들에게 시를 짓도록 한 뒤 그 가운데 잘된 것을 뽑아 “뒤뜰에 아름다운 나무 꽃이 폈지만 꽃은 펴도 다시 오래가지 않아요[玉樹後庭花, 花開不復久]”라는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 악곡을 만들었다고 함.】은 주인이 없고 |
風暖金陵草自春 풍난금릉초자춘 |
바람 따순 금릉【금릉(金陵): 육조시대 남방의 대도회지.】에는 풀만 절로 봄이로다. |
賴有謝家餘境在 뢰유사가여경재 |
사씨 집안【사가(謝家): 사조(謝脁)로 선성태수(宣城太守)를 지냈기에, 사선성(謝宣城)이라고도 불림.】 남은 모습 있어서 |
長敎詩客爽精神 장교시객상정신 |
길이 시인으로 하여금 정신을 슬프게 만드누나.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
해설
이 시는 빈공과(賓貢科) 합격 후 율수현위(漂水縣尉)를 지내던 18~23세 사이에 지은 것으로, 자화사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며 복고(復古)하는 시이다.
1연에서는 높은 산의 절에 올라 온갖 갈림길 많고 먼지 가득한 속세를 잠시 떨어져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야 할 텐데, 인간 세상이 내려다보여 오히려 역사의 자취를 조감할 수 있어 옛 흥망성쇠의 역사를 읊으며 회고하자니, 한(恨)만 더욱 새롭다.
2연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울리는 풍경소리는 강 밑을 흐르는 물결과 어울려 시간적 흐름을 암시하고, 태고의 신비에 감싸인 푸른 산에서 옛사람의 숨결을 느낀다. 홍만종(洪萬宗)은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이 구절에 대해 “나는 일찍이 그의 감개함에 탄복하지 않은 적이 없다[余未嘗不歎其感慨].”고 하였고, 서거정(徐居正)의 『동인시화(東人詩話)』에 의하면 이 부분은 한때 대련(對聯)으로 장안(長安)의 지가(紙價)를 올렸다고도 한다.
3연에서는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의 노래를 부르며 한평생의 영화를 누렸던 진후주(陳後主)도 이제는 서리에 마른 나무처럼 옛 자취가 되었던 것이요, 그러나 옛날의 풀이나 오늘의 풀빛은 봄이면 저절로 푸르러진다. 금릉(金陵)의 호화로운 도시의 흥망에 따라 변화야 많겠지만 봄은 항시 변함없는 봄이다.
4연에서는 강남 땅에는 아름다운 곳이 많아 예부터 제왕(帝王)의 고을이었으니, 이는 사조(謝眺)가 「고취곡(鼓吹曲)」이라는 노래에서 지적했던 “강남은 아름답고 고운 땅이니 예로부터 제왕의 고을이었지[江南佳麗地 自古帝王州]”의 말 그대로다. 문명이 높았던 사씨 집안의 유적이 남아 있어 시인에게 무상감을 들게 하고 있다. 화각(畵角)의 동적(動的)인 울림과 청산(靑山)의 정적(靜的)인 안정감, 화무주(花無主)의 무상성(無常性)에 초자춘(草自春)의 항구여일(恒久如一)의 변함없는 자연의 섭리를 대칭적(對稱的)으로 조화시키고 있다.
이 시는 두보(杜甫)의 율시(律詩)에서 자주 사용된 이개칠합(二開七闔)의 시상구조(詩想構造)를 사용하고 있다. 즉 제2구에서 시상(詩想)을 펼쳐 연 다음 3~7구에서는 2구에서 제시한 시상(詩想)을 구체적으로 나열하여 설명이나 예증을 하고 제7구에서는 시상(詩想)을 마무리하는 수법이다.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년, 31~32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