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장의 밤비
산장우야(山莊雨夜)
고조기(高兆基)
昨夜松堂雨 溪聲一枕西
작야송당우 계성일침서
平明看庭樹 宿鳥未離栖
평명간정수 숙조미리서 『東文選』 卷之十九
해석
昨夜松堂雨 溪聲一枕西 | 어젯밤 송당(松堂)엔 비 내려 계곡 소리 베개 서쪽에서 들렸지. |
平明看庭樹 宿鳥未離栖 | 새벽에 뜰의 나무를 보니, 자던 새가 둥지 떠나지 않았네. 『東文選』 卷之十九 |
해설
산 있는 곳에 골이 있고, 골 있는 곳에 물이 있으니, 그러므로 승경(勝景)은 언제나 ‘산수(山水)’의 승(勝)으로써 일컬어지는 것이다. 산은 있되 물이 없으면 산은 적막하고, 물만 있고 산이 없으면 물은 심심하다.
이 세상 소리 가운데 산곡간을 흐르는 물소리만큼 맑고 밝고 영롱한 소리가 어디 또 있다 하리? 더구나 겨울 동안 목이 잠겼다가 봄비에 노랫목이 트인 그 흐름의 기쁨! 그러자니 그 노래 또한 그렇게도 찬란할 수밖에……
지난 밤 산장에 내린 비로 서쪽 시내가 오랜만에 목이 트였다. 적막하던 산중에 갑자기 활기와 유열이 넘치는 듯, 지그시 누워 듣는 베개맡의 아름다운 선율은 들을수록 유관하고도 희한하다. 어느 인간의 목소리나 인간의 악기가 저 소리를 당할 수 있다 하리? 해가 돋도록 자연의 명곡을 만끽하다가, 느직이 일어나 내다보는 뜰 나무에는, 깃들어 자던 멧새도 아직 둥지를 떠나지 않고 있지 않은가? 평소 같으면 동트기가 바쁘게 깃을 떠나, 저들끼리의 노래자랑에 여념이 없었을 저 수다쟁이들이, 오늘따라 저 신기로운 물소리에 매료되어, 오히려 제 노래를 잊고 있음이리라.
미물도 자연의 정을 이해하고, 사람 또한 미물의 정을 헤아리니, 이 정히 자연의 하나하나를 다 유정자(有情者)로 교정(交情)하는 은자의 합자연(合自然)의 경지라 할 만하다.
‘일침서(一枕西)’는 다음 시의 ‘일애천(一涯天)’과 아울러 그 수사가 멋스럽고, ‘미리서(未離棲)’의 이유를 밝히지 않은 곳에, 은근한 여유와 새침한 맛이 있다. 그것은 물소리의 아름다운 멜로디에 도취되어서라고만 한정되지 않고, 비에 재촉된 ‘정수(庭樹)’의 꽃 봉오리들이 밤사이에 활짝 벙글어, 새들의 눈을 황홀하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란 함축마저도 가능케 해주고 있음에서다.
다음에 ‘가을밤 나그네의 회포’를 부친 오율(五律)한 수를 덧붙인다.
鳥語霜林曉 風驚客榻眠 | 새는 서리 내린 숲의 새벽을 지저귀고, 바람은 나그네의 잠을 놀라깨우네. |
簷殘半規月 夢斷一涯天 | 처마엔 지새는 반달 해사히 남아있는데, 이 몸은 한 외딴 하늘 가에 와 있구나. |
落葉埋歸路 寒枝掛宿烟 | 낙엽은 돌아갈 길을 메우고 찬 나뭇가지엔 밤 안개가 걸려 있다. |
江東行未盡 秋盡水村邊 | 강동은 가도 가도 다 못 가는데 가을은 이 물갓마을에서 끝나려 하네. |
-손종섭, 『옛 시정을 더듬어』, 정신세계사, 1992년, 62~63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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