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수자리에 편지를 부치며
기원(寄遠)
고조기(高兆基)
錦字裁成寄玉關 勸君珍重好加飱
封侯自是男兒事 不斬樓蘭未擬還 『東文選』 卷之十九
해석
錦字裁成寄玉關 금자재성기옥관 | 당신을 그리워하는 편지【금자(錦字): 전진(前秦) 두도(竇滔)의 아내 소씨(蘇氏)가 직금회문시(織錦回文詩)를 남편에게 보낸 고사로, 아내의 편지, 또는 아름다운 시구를 뜻한다. 】를 써서 국경 관문【옥관(玉關) : 중국 감숙성(甘肅省) 돈황(敦煌)에 있는 옥문관(玉門關)의 준말로, 여기서는 관북(關北) 즉 함경도 지방의 요새(要塞)를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에 붙였습니다. |
勸君珍重好加飱 권군진중호가손 | 그대에게 권합니다. ‘몸 아끼며 잘 챙겨 드셔요. |
封侯自是男兒事 봉후자시남아사 | 요직에 앉게 됨은 이로부터 남자의 일이오니 |
不斬樓蘭未擬還 불참누란미의환 | 누란【누란(樓蘭): 한(漢) 나라 서역(西域)의 나라 가운데 하나인데, 오랑캐 나라의 왕을 뜻한다. 한 소제(漢昭帝) 때 부개자(傅介子)가 누란을 정벌하여 왕 안귀(安歸)를 죽인 뒤 울도기(尉屠耆)를 왕으로 세우고 나라 이름을 선선(鄯善)이라 고쳤다. 『한서(漢書)』 卷七十 「부개자전(傅介子傳)」】을 베지 못한다면 돌아올 생각일랑 마셔요.’ 『東文選』 卷之十九 |
해설
아내가 멀리 국경에 수자리 간 남편에게 보내는 시의 형식으로 지은 것이다.
국경에 계신 님에게 정성 어린 자수(刺繡)를 지어 보내니, 이 편지 보시고 자중자애(自重自愛)하시며 음식 많이 먹고 건강하세요. 공을 세워 후(侯)에 봉해지는 것이 바로 남자가 해야 할 일이니, 오랑캐를 평정하는 것과 같은 큰 공을 세우기 전에는 고향에 돌아올 생각하지 마세요.
이 시를 자신에게 쓰는 편지로 이해하기도 한다. 고조기는 청백리(淸白吏)로 이름난 사람으로, 이자겸(李資謙)의 난행(亂行)을 상소하였다 좌천되기도 하였고, 이자겸(李資謙)의 난에 지조를 바꾼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한 강직한 성품을 지닌 문인(文人)이었다. 이 시 역시 자기 소신을 이루기 전에는 굽힐 수 없다는 강렬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서거정(徐居正)의 『동인시화(東人詩話)』 권상 62에 “당(唐)나라 왕창령(王昌齡)의 「규원시(閨怨詩)」에 ‘규방의 어린 색시 시름을 모르고, 봄날 단장하고 작은 누각에 올랐네. 문득 길가에 휘어진 버들 빛 보고는 남편을 벼슬 찾으러 보낸 것 후회하네.’라고 했는데, 고금에 이 시를 절창이라고 하였다. 일찍이 평장사 고조기의 「기원」 시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시에 ……라고 하였다. 당시(唐詩)는 비록 좋지만 지아비를 심히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사로운 마음을 형용한 것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고조기의 시의 구법(句法)은 당시에 크게 미치지 못하나, 지아비를 심히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시의 서두를 뗀 뒤, 이어서 수자리 일을 신중히 하고 마시고 먹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 것을 바라고, 마지막으로 공명과 사업을 성대히 이룰 것을 권면하였다. 한마디로 사사로운 정을 나타내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 은연중에 『시경(詩經)』 「국풍(國風)」의 남긴 뜻을 지니고 있다. 시를 어찌 표현기교의 공교로움과 서툶만으로 논할 수 있겠는가[唐詩. ‘幽閨少婦不知愁, 春日凝粧上小樓. 忽見陌頭楊柳色, 悔敎夫壻覓封侯.’ 古今以爲絶唱. 曾見高平章兆基「寄遠」詩, ……唐詩雖好, 不過形容念夫之深, 愛夫之篤, 情意狎昵之私耳. 高詩句法不及唐詩遠甚, 然先之以思念之深信書之勤, 繼之以征戌之愼飮食之謹, 卒勉之以功名事業之盛. 無一語及乎燕昵之私, 隱然有國風之遺意, 詩可以工拙論乎哉]?”라고 평하고 있다.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년, 46~47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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