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하며 곧바로 짓다
산행즉사(山行卽事)
김시습(金時習)
兒打蜻蜓翁掇籬 小溪春水浴鸕鶿
靑山斷處歸程遠 橫擔烏藤一个枝 『梅月堂詩集』 卷之一
해석
兒打蜻蜓翁掇籬 아타청정옹철리 | 아이 잠자리 잡고, 노인 울타리 보수하고 |
小溪春水浴鸕鶿 소계춘수욕로자 | 작은 시내 봄물엔 가마우지 멱 감네. |
靑山斷處歸程遠 청산단처귀정원 | 봄산 끊어진 곳에 돌아가는 길 멀기만 해서 |
橫擔烏藤一个枝 횡담오등일개지 | 등나무 한 가지 어깨에 비껴 메었구나. 『梅月堂詩集』 卷之一 |
해설
이 시는 산길을 가다 지은 것으로, 김시습(金時習)의 산수벽(山水癖)과 은자(隱者)로서 한가로운 정서를 잘 보여 주는 시이다.
산길을 가다 보니 아이는 잠자리 잡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늙은이는 오래되어 허물어진 울타리를 고치는데, 앞개울의 작은 시내에 봄물이 녹은 곳에는 가마우지가 고기를 잡기 위해 자맥질을 하고 있다. 저 멀리 푸른 산이 끝난 곳에 갈 길이 멀리 뻗어 있지만, 방랑벽이 있는 그에겐 그 먼 길이 멀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어서 지팡이 삼고자 등나무 한 가지 꺾어 등에 비스듬히 메고 간다.
김시습(金時習)은 「어떤 일에 느낌이 있어서 시를 지어 사또께 바친다[有感觸事 書呈明府]」라는 시에서 “산수에 벽이 있어 시로 늙었다[癖於山水老於詩].”라고 한 것처럼, 평생을 산수에서 노닐면서 시를 지었다. 조선에서 산수벽(山水癖)이 가장 깊었던 시인은 전기에는 김시습(金時習), 후기에는 김창흡(金昌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권별(權鼈)의 『해동잡록』에 김시습에 대한 간략한 生平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본관은 강릉(江陵)이요, 자는 열경(悅卿)이다. 조금 자라자 말을 더듬어 말은 잘할 수 없었으나, 붓과 먹을 주면 그 생각을 모두 글로 썼다. 세조 때에 세상을 달갑지 않게 여겨 벼슬하지 않고, 거짓으로 미친 체하여 중이 되어 승명(僧名)을 설잠(雪岑)이라 불렀다. 스스로 그의 호(號)를 동봉(東峯)이라 하고 또는 청한자(淸寒子) 혹은 벽산청은(碧山淸隱)이라고 하였다. 만년에 환속(還俗)하여 죽었는데, 「매월당역대년기(每月堂歷代年紀)」와 『금오신화(金鰲新話)』가 있어 세상에 전한다[江陵人, 字悅卿. 稍長, 口吃猶不能言, 以筆墨與之, 則皆書其意. 我光廟朝, 玩世不仕, 佯狂出家, 號雪岑. 自號東峯, 一曰淸寒子, 一曰碧山淸隱. 晩年還俗而卒, 有梅月堂歷代年紀, 金鰲新話行于世.].”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99~100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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