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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 - 수정한림유별운(酬鄭翰林留別韻)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박상 - 수정한림유별운(酬鄭翰林留別韻)

건방진방랑자 2019. 2. 2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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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림이 이별하면서 준 시에 화답하다

수정한림류별운(酬鄭翰林留別韻)

 

박상(朴祥)

 

 

江城積雨捲層霄 秋氣冷冷老火消

黃膩野秔迷眼發 綠疎溪柳對樽高

風隨舞袖如相約 山入歌筵不待招

慚恨至今持斗米 故園蕪絶負逍遙 訥齋先生集卷第四

 

 

 

 

 

 

해석

江城積雨捲層霄

강성적우권층소

강가의 성에 내리던 장맛비 구름 속에서 개니

秋氣冷冷老火消

추기랭랭로화소

가을 기운 서늘하여 늦더위 사라졌네.

黃膩野秔迷眼發

황니야갱미안발

누렇고 기름진 들의 메벼 눈을 어지러이 피어나고,

綠疎溪柳對樽高

록소계류대준고

푸르고 성근 시내의 버드나무 잔을 대하며 높구나.

風隨舞袖如相約

풍수무수여상약

바람은 서로 약속한 듯 춤추는 소매를 따르고,

山入歌筵不待招

산입가연부대초

산 그림자 초대하지 않았지만 잔치자리에 들어오네.

慚恨至今持斗米

참한지금지두미

지금에 이르도록 오두미를 지니고 있음이 부끄럽고 한스러우니,

故園蕪絶負逍遙

고원무절부소요

옛 동산 황폐해졌지만 소요하질 못하고 있구나. 訥齋先生集卷第四

 

 

해설

이 시는 정한림이 이별하면서 준 시에 화답한 시로, 인근 고을의 수령이던 정한림이 중앙 관직으로 영전(榮轉)되어 가는 것을 전송하면서 지은 것이다.

 

장맛비가 강마을에 내리다 걷히니, 하늘이 높아 성큼 가을이 다가온 듯하다. 서늘한 가을비 덕분에 늦더위도 사라졌다. 누렇게 익은 들판의 곡식은 눈이 어지러울 정도이고, 봄에 무성하던 버들도 가을이 되니 잎이 듬성듬성해져서 높은 곳에서 가지가 휑하다. 영전(榮轉)하는 정한림을 축하하느라 술을 마시고 춤을 추니,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바람은 춤추는 옷자락을 따라 날리고, 부르지도 않은 산 그림자는 잔치 자리에까지 내려와 잔치 자리가 파할 때임을 알려주고 있다. 고향의 언덕을 찾지 못해 묵어 가도 도잠(陶潛)처럼 과감하게 오두미(五斗米)를 버리고 떠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부끄럽고도 한스럽다.

 

박상은 바쁜 벼슬살이 가운데에도 밤이면 반드시 이소경(離騷經)을 한 번 외우고, 율시(律詩) 1수를 지은 후에라야 잠자리에 들 정도로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다.

 

허균(許筠)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 박상(朴祥)을 포함한 조선의 시사(詩史)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조선의 시()는 중종조(中宗朝)에 이르러 크게 성취되었다. 이행(李荇)이 시작을 열어 눌재(訥齋) 박상(朴祥)ㆍ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ㆍ충암(冲庵) 김정(金淨)ㆍ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이 일세(一世)에 나란히 나와 휘황하게 빛을 내고 금옥(金玉)을 울리니 천고(千古)에 칭할 만하게 되었다.

조선의 시는 선조조(宣祖朝)에 이르러서 크게 갖추어지게 되었다. 노수신(盧守愼)두보(杜甫)의 법을 깨쳤는데 황정욱(黃廷彧)이 뒤를 이어 일어났고, 최경창(崔慶昌)백광훈(白光勳)은 당()을 본받았는데 이달(李達)이 그 흐름을 밝혔다.

우리 망형(亡兄)의 가행(歌行)이태백(李太白)과 같고 누님의 시는 성당(盛唐)의 경지에 접근하였다. 그 후에 권필(權韠)이 뒤늦게 나와 힘껏 전현(前賢)을 좇아 이행(李荇)과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니, ! 장하다[我朝詩, 至中廟朝大成, 以容齋相倡始. 而朴訥齋祥申企齋光漢金冲庵淨鄭湖陰士龍, 竝生一世. 炳烺鏗鏘, 足稱千古也. 我朝詩, 至宣廟朝大備. 盧蘇齋得杜法, 而黃芝川代興, 白法唐而李益之闡其流. 吾亡兄歌行似太白, 姊氏詩恰入盛唐. 其後權汝章晩出, 力追前賢, 可與容齋相肩隨之, 猗歟盛哉].”

 

홍만종(洪萬宗)소화시평(小華詩評)권상 73에서 박상의 시에 대해, “허균(許筠)이 말하기를, ‘젊은 시절에 지천 황정욱을 뵈었다. 그분은 매우 오만한 지론을 가져 고금의 문예를 말씀하실 때 인정하는 작가가 드물었다. 그는 용재 이행은 너무 기름지고, 이달은 모의를 했고, 호음 정사룡과 소재 노수신이 겨우 작가의 법도에 합치된다고 했는데, 오직 눌재만을 최고로 여겨 자기가 마칠 수 없다고 했다.’라 하였다[許筠嘗云: “少見芝川, 其持論甚倨, 談古今文藝少所許與, 如容齋而目爲太腴, 李達而指爲模擬, 湖陰·蘇齋稍合作家, 惟取訥齋以爲不可及].”라고 말하고 있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174~176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우리 한시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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