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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말랑말한 정신으로 한껏 떠나라 본문

연재/작품을 감상하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말랑말한 정신으로 한껏 떠나라

건방진방랑자 2019. 12. 2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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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정신으로 한껏 떠나라

 

연암, 그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그는 태양인이란다. 그의 초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풍채도 좋을 뿐더러 왠지 모르게 어떤 것에도 구애 받지 않을 것만 같은 넉넉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장난끼를 가득 머금은 연암

 

하지만 그의 초상화는 처음 볼 때와 그의 글을 읽고 나서 볼 때와 느낌은 전혀 다르다. 처음엔 그저 통 큰 사람이어서 재미도 없고 고리타분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지만,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유머가 가득한 글들을 보고 나서 이 초상화를 보게 되면 한번 크게 웃고 싶어진다. 개그맨들은 억지 상황을 만들어 웃음을 유발하기에 한참 웃고 나서도 뒷맛이 깔끔하지 않다. 하지만 연암의 유머는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유머이기에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도 이내 웃음이 터지고 한참 웃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지기까지 하다.

 

 

그가 웃음을 만들어내는 원리는 지극히 간단하다. 보다시피 웃음이란 단조로운 리듬을 상큼하게 비트는 불협화음이요, 고정된 박자의 흐름에 끼여드는 엇박이다. 판소리로 치면, 적재적소에 끼여드는 '추임새'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연암은 말의 리듬, 삶의 호흡을 기막히게 터득한, 일종의 '藝人'이다. 252

 

 

웃음, 그건 사람을 무장해체 시키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삶이 유쾌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걸 테지. 바로 연암이 웃음을 구사하는 방법은 바로 적재적소의 상황 사이에서 엇박자를 구사하는 것이다. 전혀 예측치 못한 곳에서 전혀 엉뚱한 말이 나올 경우 누구나 크게 웃을 수밖에 없으니까. 바로 이런 유쾌한 유머의 향연이 펼쳐지는 책이 바로 열하일기이다.

그의 여행기가 유목의 여정이 될 수 있는 첫째 이유는 바로 그의 유머에 달려 있다. 여행을 떠난 이가 그 여행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온갖 불평을 쏟아놓는다. 화장실이 더럽다는 둥, 음식이 이상하다는 둥, 사람들이 불친절하다는 둥. 그런 이야기를 하며 떠나오기 전 환경을 그리워하는 거다. 그것이야 말로 떠났으되 정착한 것이리라. 그럴 거였으면 차라리 자기가 있던 자리에 있지 여행을 무엇하러 가는가? 여행을 떠났으면 그 모든 것들을 아무 편견 없이 받아들여야하며 그 모든 것을 긍정하며 여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유머를 구사할 수 있으니까.

 

 

 

 

 

청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다

 

여행을 싫어하는 자의 편력이란? 여행이 주로 지리적 이동을 통해 낯선 세계를 체험하는 것이라면, 편력은 삶의 여정 속에서 예기치 않은 일들에 부딪히는 것을 말한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식으로 말하면, 직선 운동 속에서 일어나는 편위, 이른바 '클리나멘'이 그것인셈. 돌연 발생하는 방향 선회, 그것이 일으키는 수많은 분자적 마주침들, 편위란 이런 식으로 정의될 수 있을터. -20

 

유목이 가능한 여행이 되려면 우선 유머를 구사할 수 있는 여유를 찾아야함은 지금까지 이야기 했다. 그 다음은 수많은 편위 속 회피하려 하기보다 나를 맡기는 것이다. 우린 흔히 다른 환경, 다른 조건에 놓이면 기존의 방식을 고집하며 변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타국에 가면 도리어 애국자로 변한다고 하니, 그것이야말로 떠났으되 정착하는 것에 다름 아니리라.

떠난 곳에서 수많은 편위들이 작용한다. 새로운 만남도 있을 것이고, 예기치 않은 상황도 닥쳐오리라. 그럴 때 맘을 열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하자. 바로 열하일기가 대단한 이유도 그런 편위들에 능동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연암은 그저 동행자 수준으로 여행에 참가했기에 일에 치이는 것 없이 수많은 청나라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밤에 몰래 빠져나가 역관에 가서 말을 나누기도 했다. 기존의 연행록들이 단지 사건의 과정들만을 담고 있다면, 연암의 연행록인 열하일기는 사건의 과정 속에 인간들의 삶을 포착해내고 자연의 흐름을 절단ㆍ채취하여 담아내고 있다. 그런 수용능력을 통해 우린 청나라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목이란 결코 몸이 떠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이 자유를 확보하지 않는 이상, 능동적인 반응을 하지 않는 이상 유목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며 그 안에서 맘껏 정신의 자유를 느껴보자. 수많은 편위들이 나의 삶과 정신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마음을 편안히 하고 맘껏 유쾌하게 웃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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