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윤영의 내소사 시가 특별한 이유와 우리의 뒷풀이
사찰을 읊은 시라면 으레 있는 과장법에 대해선 저번 후기에서 살펴봤다. 하긴 여러 한시를 공부하다 보니 굳이 사찰시가 아니더라도 과장을 하는 경우가 숫하게 보이긴 한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동인시화』에선 이런 과장법에 대해 다루며 “이것은 말로 뜻을 해쳐선 안 되는 것으로 다만 뜻에 마땅히 할 뿐이다.是不可以辭害意, 但當意會爾.”라고 결론지으며 내용 전달에 더 탁월했다면 그건 ‘시적 허용’으로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 내소사 좋다. 내소사를 둘러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이윤영의 「내소사」란 시가 특별한 이유
이처럼 교수님은 사찰시에선 이런 과장법이 허용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그런 구라를 씨게 칠수록 사찰의 탈속적인 이미지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그건 달리 말하면 굳이 그 절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누구나 사찰시를 지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저 세상과 완벽히 떨어진 사찰의 풍경을 묘사하면 되니 말이다. 그래서 사찰시엔 ‘주지의 인품, 청정공간으로써의 사찰 묘사, 그에 대비되는 속세인으로서의 욕망덩어리인 자신 묘사’가 꼭 들어간다고 알려주셨다.
하지만 『어우야담』에선 금강산에 대해 지은 정사룡의 시를 보면서 “그러나 다만 이 시는 비록 향림사나 정도사에서 지었어도 또한 아름다웠을 것입니다.但此詩, 雖於香林․淨土賦之亦佳.”라고 비꼬며 권근의 시가 제대로 금강산을 묘사한 시라 평가하며 직접 가보고 지은 시의 우수성을 높이 샀다.
名區隨處我行催 |
명승지 가는 곳마다 나의 발길을 재촉하고 |
不害人間老草萊 |
인간세상에서 초래로 늙음을 나무라지 않네. |
翠嶽將頹龍瀑瀉 |
비취색 언덕이 약간 무너져 내려 용처럼 폭포가 쏟아지고 |
春雲欲變蜃樓開 |
봄 구름이 변하여 신기루가 열리려 하는 듯. |
壯觀滄海眸雙拭 |
푸른 바다의 장관에 두 눈을 부비고 |
悵望靑齊首獨擡 |
청제(山東), 머리 홀로 들려함을 맥없이 바라보네. |
十載塵愁輕似羽 |
10년의 티끌과 근심이 깃털처럼 가벼우니 |
可憐前夜月明㙜 |
애달프다, 어젯밤 명월대에서의 풍취가 『丹陵遺稿』 |
바로 이런 관점으로 이 시를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어디에도 사찰이나 주지스님에 대한 묘사가 없을 뿐 아니라, 3구의 직소폭포에 대한 묘사는 정말 폭포를 본 사람만이 쓸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사찰시이지만 사찰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우리가 등산하며 봤던 모습들을 아주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5구에선 서서히 오르며 봤던 서해의 장엄한 모습이, 6구의 청제靑齊란 산동의 다른 표현으로 중국의 주인이 明에서 淸으로 바뀐 것에 대해 지식인으로서 느꼈을 법한 무상함, 절망감이 짙게 배어 있다. 그리고 8구에선 아예 어젯밤 변산을 돌아보며 느꼈던 감상을 ‘애달프다’라는 감상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이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내소사 부근의 풍경이 그대로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러니 이 시야말로 상상 속의 사찰을 묘사한 여타 시와는 달리 진짜 이곳에 와서 이곳을 온전히 느낀 자만이 쓸 수 있는 시이고, 그렇기 때문에 단릉과 우리는 400년의 세월이 떨어져 있음에도 바로 옆에서 얘기를 나누듯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시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교수님은 계곡에서 시회를 열자고 제안하셨나 보다. 바로 이게 한문공부를 하는 즐거움이고, 옛 사람을 친구 삼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일 거다.
▲ 단릉도 이 광경을 보며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뀐 시대를 한탄했던 것이다.
내려가기 위해 산에 오른다
1시간 30분 정도 시회를 갖고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거기서 조금만 더 내려가니 바로 직소폭포가 보이더라. 여기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강천산의 폭포 정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여긴 아예 스케일이 다르더라. 정말 깎아지른 언덕에 가운데 부분이 약간 파여 그쪽으로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단릉의 시에선 “비취색 언덕이 약간 무너져 내려 용처럼 폭포가 쏟아지고(翠嶽將頹龍瀑瀉)”라고 표현했는데, 직소폭포를 직접 보니 그 시가 더 와 닿더라.
거기서 더 내려가니 둑을 막아놔서 산 한 가운데 호수처럼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있다. 직소천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산 중턱에서 호수를 만나니 감회가 남달랐다.
▲ 직소폭포를 보니 단릉의 시가 더 와 닿는다. 그리고 산 중턱에 물이 고여 있으니 이색적인 느낌이다.
내려오는 길은 무척 수월했고 어느덧 시간은 4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여유롭게 내려가 내변산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는데 그때 시간은 4시 33분이었다. 부안으로 나가는 시내버스가 있는데 바로 3분 전에 떠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버스는 6시 25분에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만 했다. 거금이 들어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택시를 타고 부안으로 28.000원이란 거금을 내고 나왔다.
▲ 우리가 걸었던 경로. 그리고 버스 시간을 알아야 거금을 쓰는 불상사가 안 생긴다.
한문에 대한 열정을 한가득 품게 한 뒷풀이
마지막 직행버스는 7시 38분에 있다고 한다. 아직 2시간 정도의 여유가 충분히 있기에 여기서 뒷풀이를 하기로 했다.
시장상인에게 중국집 중 맛있는 집을 물어보니, 위치를 알려줬다. 그래서 다음 지도를 켜고 그곳을 찾아갔다. 교수님은 공통 메뉴로 팔보채와 잡채를 시켜주셨고 각자 하나씩 자신이 먹을 것을 시켜준 다음에 고량주와 소주까지 원 없이 시켜주셨다. 등산 후에 함께 하는 회식은 뭘 먹어도, 심지어 그냥 맥주 한 잔을 마신다 해도 충분한데, 우린 최고의 음식들로 화려한 뒷풀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뒷풀이 자리에서 나눈 주제들도 깊게 생각하고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간단히 나열해 보자면, ‘실학 VS 성리학’이란 이분법으로 조선시대 학문을 논하는 풍토, ‘예전 방식으로 공부하는 풍토 VS 여러 자료를 참고하며 공부하는 풍토’, 그리고 주희와 성리학을 배격하는 풍토에 대한 반기 등이었다. 맘 같아선 이때 나눈 이야기들도 하나하나 풀어보며 어떤 점들이 문제가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문공부를 하고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지 기술하고 싶지만, 이미 7편이나 쓴 후기에 덧붙이는 것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에 키워드 정도로만 써놓고 나중에 기회가 될 때 그에 대해 써보기로 하겠다.
▲ 군침 돈다. 음식도 맛있고 이야기는 더욱 맛있다.
재미란, 그저 화려하고 색다르며 값비싼 것에만 있지 않다. 이처럼 소소하고 치열하며 일상적인 평범한 하루 속에도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이때처럼 그저 평범한 일상 속에 의미를 찾고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흥분 속에 색다름을 모색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산에 올라 시를 배웠고, 술을 마시며 인생을 알아간다.
▲ 해질녘의 벌판. 오늘 하루 잘 익었구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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