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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려 - 매(梅)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이광려 - 매(梅)

건방진방랑자 2019. 2. 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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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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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려(李匡呂)

 

 

滿戶影交修竹枝 夜分南閣月生時

此身定與香全化 與逼梅花寂不知

 

煖閣重屛勤護惜 寸根培植占天寒

靑枝蓓蕾無南北 春著藏梅摠一團 李參奉集卷一

 

 

 

 

해석

滿戶影交修竹枝
만호영교수죽지
문에 가득 찬 그림자가 대나무 가지에 아롱지고,
夜分南閣月生時
야분남각월생시
한밤 중 남쪽 누각에 달이 솟을 때에,
此身定與香全化
차신정여향전화
이 몸은 정히 향기와 혼연일체 되어
與逼梅花寂不知
여핍매화적부지
매화에 다가가도 아무런 냄새를 맡지 못하네.

 

煖閣重屛勤護惜
난각중병근호석
따뜻한 난간과 겹겹이 병풍으로 근면히 아쉬움을 보호하고,
寸根培植占天寒
촌근배식점천한
마디 뿌리를 북돋워 심어 한기를 점령한다네.
靑枝蓓蕾無南北
청지배뢰무남북
푸른 가지 꽃망울은 남북이 따로 없으니,
春著藏梅摠一團
춘저장매총일단
봄이 감춘 한 덩이의 감춘 매화를 드러냈구나. 李參奉集卷一

 

 

해설

매ㆍ죽ㆍ월(梅竹月)의 청아한 영상미(映像美), 매향(梅香)에 동화된 흐뭇한 자긍(自矜)이다.

 

매화하면 으레 눈과 달이 짝되게 마련이지마는, 같은 사군자(四君子)의 하나인 와의 어울림도 고래로 일컬어 왔으니, 둘 다 정심불개(貞心不改)의 군자(君子節)이라, 서로의 만남은 지취(志趣)의 당연함이라 할 만하다.

 

세상이 다 잠들어 있는 아닌 밤중에, 창 한 틀을 가득 은막(銀幕) 삼아, 바야흐로 돋아오르는 밝은 달빛으로 어른어른 영사(映寫)하고 있는, 매죽의 생동하는 수묵화의 영상은, 참으로 깨기를 잘했다고 재탄(再嘆) 삼탄(三嘆) 희한해 할 만큼의 기절묘절(奇絶妙絶)한 청경(淸景)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진작부터 온 집안에 가득하던 매화 향기는 웬일인지 정작 소식이 없다. 일어나 창을 열고 활짝 피어 있는 매화에 코를 가까이 가져다 대고 맡아 본다. 그러나 적적 감감할 뿐이다. 문득 공자가어』 「육본의 한 대문이 떠오른다. ‘착한 이와 함께 있으면, 마치 지초ㆍ난초의 방에 든 것과 같아, 이윽고 그 향기를 맡지 못하게 되나니, 곧 그와 함께 동화되었기 때문이다[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 그렇다. 매화 향기도 같은 이치로, 이미 온몸 속속들이 포화 상태로 배어 있기에, 새삼스러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그 청아고결(淸雅高潔)한 매화 정신에 자신도 이미 동화되어 있음을 의식하며, 그지없이 흡족해 하는 작자의 그 아치청흥(雅致淸興)에 우리도 부지중(不知中) 동참(同參)한 듯한 느낌이 든다.

 

자다 말고 일어난 야반의 심미(審美) 소동의 한 장면이다.

 

기ㆍ승구의 생동하는 수묵화 삼자 합동으로 연출하는 영상미의 극치이다. 매화하면 누구나 그 은은히 부동(浮動)하는 암향청취(暗香淸臭)에 도연(陶然)히 매료(魅了)되는 말초적 상미(爽味)를 일컫거니와, ‘적부지(寂不知)’와 같은, 통째로 잡아떼는 강한 부정으로, 도리어 일대 반전(一大反轉)의 절대 긍정을 이끌어낸 결구의 반의적 수사 솜씨 또한 기발하다 할 만하지 않은가?

-손종섭, 옛 시정을 더듬어, 정신세계사, 1992, 496~497

 

 

인용

목차

한시사

우리 한시의 특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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