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우리나라에 오랜 시간 읊어진 수작들
1. 최치원(崔致遠)의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狂噴(奔)疊石吼重巒 | 첩첩한 바위에 무겁게 달려 겹겹한 산이 울려 |
人語難分咫尺間 | 지척에서도 사람들의 말 분간하기 어려워. |
常恐是非聲到耳 | 항상 시비의 소리 귀에 닿을까 두려워 |
故敎流水盡籠山 | 일부러 흐르는 물로 다 산을 둘렀네. |
1)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된 작품. 조선 시대에 롱수(籠水)라는 이름이 많았던 것은 바로 이 시구의 영향임.
2) 이 기발한 발상을 두고 나쁜 평가를 한 비평가도 있었지만, 굽이 굽이 도는 홍류동 계곡의 물소리로 세상의 시비소리를 차단했다는 아이디어는 분명 한국 한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임.
山僧貪月色 幷汲一甁中 | 산 속 스님이 달빛 탐내어 한 병 속에 함께 길어왔네. |
到寺方應覺 甁傾月亦空 | 절에 도착하면 곧바로 깨달을 걸. 병을 기울이면 달 또한 사라진다는 걸. |
1) 당풍의 보편적인 익숙함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지만, 개성적인 송시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겐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됨. 그는 신의(新意)를 최고의 조건으로 꼽음.
2) 이 작품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기발한 아이디어 때문임.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이치를 이렇게 참신하게 노래함.
3. 박순(朴淳)의 「송퇴계선생남환(送退溪先生南還)」
鄕心不斷若連環 | 고향생각 끊이질 않길 연이은 가락지 같고, |
一騎今朝出漢關 | 한 번 말 타고 오늘 아침에 한양의 관문을 나서네. |
寒勒嶺梅春未放 | 추위는 고개의 매화를 억눌러 봄에도 피질 않았으니, |
留花應待老仙還 | 꽃을 멈추게 한 것은 응당 늙은 신선이 돌아오길 기다려서겠지. |
1) 문경새재에 봄인데도 매화가 꽃을 피우지 않은 것은 매화를 사랑한 이황을 기다린 거이라 했다. 이황(李滉)의 고결한 인품을 매화와 동일시한 것이다.
2) 기발한 아이디어로 자연 현상을 이렇게 비틀어 해석했기 때문에 이 시는 명편이 된 것임.
4. 이광려(李匡呂)의 「영매(咏梅)」
滿戶影交修竹枝 | 문에 가득 찬 그림자가 대나무 가지에 아롱지고, |
夜分南閣月生時 | 한밤 중 남쪽 누각에 달이 솟을 때에, |
此身定與香全化 | 이 몸은 정히 향기와 혼연일체 되어 |
與逼梅花寂不知 | 매화에 다가가도 아무런 냄새를 맡지 못하네. |
1) 역대 매화를 두고 쓴 시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시로, 전형적인 정신의 시다.
2) 매화와 한 몸이 되었기에 매화에 아무리 코를 대어도 향기를 맡을 수 없다. 매화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기발하게 표현함.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