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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4.07 - ‘비슷한 것은 가짜다’를 끝내다 본문

건빵/일상의 삶

20.04.07 - ‘비슷한 것은 가짜다’를 끝내다

건방진방랑자 2020. 4. 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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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것은 가짜다를 끝내다

 

 

한문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독서는 한다. 물론 책을 엄청 좋아해서 여러 방면의 책을 늘 읽던 사람이야 임용시험 준비를 한다고 해서 독서의 범위를 좁힐 리는 없겠지만 평소에 잘 독서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때 평소보다 많은 독서를 저절로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독서는 전공에 관련된 책으로 좁혀지긴 하지만 말이다.

 

 

2018년의 책장. 연암의 책이 두 권이 꽂혀 있다.   

 

 

 

정민 선생님의 한문관련 책은 재밌다

 

그래서 예전에 한문공부를 할 땐 한문학과 관련된 책들을 여러 권 보면서 공부의 방향을 잡고 임용시험 대비를 했었다. 그 중 단연 정민 선생은 너무도 전문적이지 않게, 그러면서도 너무 교양적이지도 않게 마치 외줄타기 하듯 어려움과 쉬움 사이, 대중서와 전문서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며 책을 썼다. 조선시대의 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미쳐야 미친다나 한시의 갖가지 내용을 재밌게 버무린 한시미학산책이나 연암 산문의 풍취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같은 책들은 한문에 막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겐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줬고 한문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게 해줬다.

한문은 더 이상 대중적인 학문은 아니라고 말한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만큼 우린 100여년 사이에 한문이란 언어에서 급속도로 탈피하여 영어라는 언어로 사회가 재편되었고 그에 따라 학교 과목들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문을 공부한다는 건 마치 외계어를 공부하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한문학에서만 사용되는 宋風이 낫니 唐風이 낫니하는 논쟁에서부터 변려문이니 고문이니하는 논쟁까지 그 당시엔 매우 치열했던 논쟁들이 지금은 한낱 배부른 자의 사색처럼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못한 채 자질구레한 말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문으로 문장을 쓰던 사람들과 우리와의 거리는 단지 시간적으로 100년만 나는 게 아니라 그들은 화성인이고 우리는 금성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정민 선생의 책들은 바로 그만큼의 인식의 거리를 메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한문의 어렵고 고루하다는 인식을 깨기에 충분할뿐더러 일상에서 겪고 보는 얘기처럼 매우 친숙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민 선생의 책을 읽으면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바로 지금 옆집에 살아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도 자는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인식의 거리가 좁혀져 그들이 사람처럼 느껴지고 우리의 이웃처럼 느껴지니 그만큼 한문에 대한 관심도 더욱 짙어지며 한문을 공부하는 손은 절로 춤을 추고 발은 절로 리듬을 밟게 되는 것이다(手之舞之足之蹈之).

 

 

정민 선생에겐 한문기록의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정리할 생각을 하다

 

이만큼이나 영향을 줬던 책이지만 정리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그리고 그 내용을 생각 속에 담아뒀다는 것만으로 만족해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이 책의 내용은 너무도 방대하기 때문에 선뜻 손을 대기에 버겁게 느껴지는 것 또한 있었다. 오죽했으면 작년 초에 한 해의 공부 계획을 세울 때 한시미학산책비슷한 것은 가짜다를 한 번 정리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긴 했지만 결코 그게 쉽지 않다는 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계획 자체를 너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들만으로 한정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도 그렇게 계획을 세운 까닭에 한시미학산책은 방대한 내용을 모두 정리할 수 있었다. 2019년에 이룬 쾌거 중 이때만큼 행복한 순간도 없었을 정도로 정리하는 과정은 자기와의 싸움을 방불케 할 정도로 힘들었다.

바로 그와 같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늘 맘만 먹었지 도전해보지 못한 비슷한 것은 가짜다를 정리해볼 생각을 올해도 마찬가지로 하게 된 것이다. 이 책에는 연암의 글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박종채가 쓴 과정록의 기록, 연암의 친구들인 백탑시파 일원들의 글까지 총 망라되어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암이 살았던 17세기의 조선사회로 초대받게 되고 그 당시 지식인들의 고뇌를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쉽게 접근할 수도 없고 의욕만 넘친다고 순식간에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래도 작년에 몇 개의 챕터는 해놨기 때문에 그걸 기반 삼아 조금씩 심기일전하다보면 언젠가는 끝나겠지라는 생각으로 323일부터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47일인 오늘에서야 끝난 것이니 기간은 총 16일이 걸린 셈이다. 욕심 내지 말고 하루 당 많게는 3챕터, 적게는 2챕터씩 하자고 생각하면서 진행했다. 이 책은 모두 25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렇게 진행한다면 많이 걸려도 18일엔 마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있었고 실제로 그게 달성된 것이다.

 

 

늘 하고 싶었던 책을 드디어 정리했다. 정말 재밌는 여행이었다.  

 

 

 

막연하기에 시나브로 한 걸음씩 가는 거다

 

이 책을 정리하면서 연암의 글을 좀 더 심도 깊게 읽어볼 수 있었다. 그만큼 정민 선생이 아주 친절하게 연암의 생각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막상 마치고 난 지금은 연암이 그 누구보다도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작업에 이어서 하고 싶은 작업은 박희병 선생이 쓴 연암을 읽는다를 진행하고 싶다. 이 책은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겹치는 글들이 많기 때문에 모두 다 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겹치지 않는 글들을 중심으로 공부하면서 정리를 해볼 생각이다. 이렇게 연암의 글을 심도 깊게 읽고 나면 다른 한문문장도 보고 싶어질 것이다.

올해의 공부도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올렸다. 한문교사가 되기 위해 한문을 공부하며 한문 공부의 매력에 푹 빠져 사는 요즘이다. 공부도 재밌고 한문도 재밌으며 이렇게 하나하나 정리되어 가는 것들을 보는 기분도 유쾌하다. 고미숙씨가 했던 말마따나 지식의 본래면목은 즐거움인 것이다. 알게 되어 기쁘고 모르는 게 있어 신난다. 앎과 모름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그걸 나의 생각에 맞게 조율해나가고 수용하며 또 다른 모름에 투신하는 즐거움이 바로 배움의 열정일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모른다는 사실이 전혀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기만 하다. 난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고 싶고 알고 싶은 거다. 난 한문에 대해 아는 게 없기 때문에 더욱 당당히 배우러 다니고 정리하는 거다.

 

 

이 흐름은 바로 이 책으로 이어져 연암과의 데이트는 계속 될 거다.  

 

 

인용

지도

20년 글

임용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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