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송욱처럼 완전히 미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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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우季雨는 성품이 소탕하여 술마시기를 좋아하고 호방하게 노래하면서 주성酒聖이라고 자호自號하였다. 세상에서 겉은 번드르하면서 속이 유약한 사람을 보면1 마치 더러워 토할 듯이 하였다. 내가 장난삼아 말하였다. “술 취해 성인聖人이라 자칭하는 것은 미친 것을 감추려는 것일세. 자네가 취하지 않고서도 생각이 없게 되면 거의 큰 미치광이의 경지에 가깝게 되지 않겠나?” 계우季雨가 정색을 하고 한동안 있더니, “그대의 말이 옳다” 하고는 드디어 그 집을 염재念齋라 이름 짓고 내게 기記를 부탁하였다. 마침내 송욱의 일을 써서 그를 권면한다. 대저 송욱은 미친 사람이다. 또한 이로써 나 스스로를 권면해 본다. 季雨性踈宕, 嗜飮豪歌, 自號酒聖. 視世之色莊而內荏者, 若浼而哇之. 余戱之曰: “醉而稱聖, 諱狂也. 若乃不醉而罔念, 則不幾近於大狂乎?” 季雨愀然爲間曰: “子之言是也.” 遂名其堂曰念齋, 屬余記之. 遂書宋旭之事以勉之. 夫旭狂者也. 亦以自勉焉. |
그리고 나서 글은 갑자기 계우季雨의 이야기로 건너뛴다. 이번에는 술미치갱이 이야기다. 술을 오죽 좋아 했으면 제 호를 주성酒聖이라 했을까. 성聖이란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니 그도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아닌 게다.
그런 그를 보고 이번엔 연암이 정문에 일침을 놓는다. “술에 취해 잊으려 말고, 맨 정신으로 잊어보게. 이왕지사 미치광이가 되려거든 큰 미치광이가 되어 보게.” 무엇을 생각지 말라는 것인가? 무슨 생각을 걷어내라 함인가? 기껏 겉만 번드르한 자들을 향해 혐오감을 비치는 것은 미치광이가 아니다. 그것은 미치광이가 아니라 오히려 아직 그가 제 정신을 지녔다는 징표다. 큰 미치광이는 그 안에 들어가 그들과 한 통속이 되어 노닌다. 송욱이 과거 시험장에 들어가 제 답안지에 제가 점수를 매기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면 술 먹고 세상을 삐딱하게만 바라보는 자네는 아직 미치광이가 아닐세. 정말 미치광이가 되어 보게. 어줍잖게 미치지 말고 말일세. 정말이지 나도 미치고만 싶네 그려.
그리하여 계우는 제 집의 이름을 ‘염재念齋’라 하였다. 그렇다면 염재는 ‘생각하는 집’인가? 아니면 ‘생각을 잊는 집’인가? 이 집의 화두는 바로 ‘생각’이다. 그놈의 생각만 없어도 한 세상 편히 지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바깥 세상의 소리도, 방안의 물건도 모두 제 자리에 놓여 있듯, 송욱은 여태도 술 덜깬 표정으로 그 이불 속에 팔자 좋게 누워 있었을 터인데, 그놈의 생각 때문에 그는 극심한 자아분열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염재’란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집’이겠구나.
연암은 이렇게 말하며 글을 끝맺는다. “대저 송욱은 미친 사람이다. 또한 이로써 나 스스로를 권면해 본다.” 송욱의 미친 짓으로 스스로를 권면하겠다니, 자신도 송욱과 같은 미치광이가 되었으면 싶다는 뜻이다. 그도 아직은 계우처럼 맨 정신으로는 미칠 수가 없었던 게다. 이 세상을 버텨내려면 아예 송욱처럼 신나게 미쳐 보든지, 아니면 마음속에서 그 미치겠다는 ‘생각’마저 걷어내 버리든지 할 일이다. 어정쩡하게 술에 취해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미치자! 그것도 완전히 미치자! 그렇지 않으면 아무 생각 없는 멍청이가 되자! 그것만이 이 흐린 세상을 건너가는 방법이 될 테니까. 나는 연암의 이 글에서 그 배면에 묻어나는 안타까운 한숨을 읽는다.
▲ 전문
인용
3. 송욱처럼 완전히 미치길
- 『논어論語』 「양화陽貨」 12에 “子曰: 色厲而內荏, 譬諸小人, 其猶穿窬之盜也與.”라 한데서 따온 말이다. 얼굴빛은 위엄이 있으면서 마음이 유약함을 이른다. 집주集注는 실상은 없이 이름만 훔쳐 항상 남들이 알까봐 전전긍긍하는 자를 말한다고 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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