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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생각의 집, 나를 어디서 찾을까? - 3. 송욱처럼 완전히 미치길 본문

책/한문(漢文)

생각의 집, 나를 어디서 찾을까? - 3. 송욱처럼 완전히 미치길

건방진방랑자 2020. 4. 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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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송욱처럼 완전히 미치길

 

 

계우季雨는 성품이 소탕하여 술마시기를 좋아하고 호방하게 노래하면서 주성酒聖이라고 자호自號하였다. 세상에서 겉은 번드르하면서 속이 유약한 사람을 보면[각주:1] 마치 더러워 토할 듯이 하였다. 내가 장난삼아 말하였다. “술 취해 성인聖人이라 자칭하는 것은 미친 것을 감추려는 것일세. 자네가 취하지 않고서도 생각이 없게 되면 거의 큰 미치광이의 경지에 가깝게 되지 않겠나?” 계우季雨가 정색을 하고 한동안 있더니, “그대의 말이 옳다하고는 드디어 그 집을 염재念齋라 이름 짓고 내게 기를 부탁하였다. 마침내 송욱의 일을 써서 그를 권면한다. 대저 송욱은 미친 사람이다. 또한 이로써 나 스스로를 권면해 본다.

季雨性踈宕, 嗜飮豪歌, 自號酒聖. 視世之色莊而內荏者, 若浼而哇之. 余戱之曰: “醉而稱聖, 諱狂也. 若乃不醉而罔念, 則不幾近於大狂乎?” 季雨愀然爲間曰: “子之言是也.” 遂名其堂曰念齋, 屬余記之. 遂書宋旭之事以勉之. 夫旭狂者也. 亦以自勉焉.

그리고 나서 글은 갑자기 계우季雨의 이야기로 건너뛴다. 이번에는 술미치갱이 이야기다. 술을 오죽 좋아 했으면 제 호를 주성酒聖이라 했을까. 이란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니 그도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아닌 게다.

그런 그를 보고 이번엔 연암이 정문에 일침을 놓는다. “술에 취해 잊으려 말고, 맨 정신으로 잊어보게. 이왕지사 미치광이가 되려거든 큰 미치광이가 되어 보게.” 무엇을 생각지 말라는 것인가? 무슨 생각을 걷어내라 함인가? 기껏 겉만 번드르한 자들을 향해 혐오감을 비치는 것은 미치광이가 아니다. 그것은 미치광이가 아니라 오히려 아직 그가 제 정신을 지녔다는 징표다. 큰 미치광이는 그 안에 들어가 그들과 한 통속이 되어 노닌다. 송욱이 과거 시험장에 들어가 제 답안지에 제가 점수를 매기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면 술 먹고 세상을 삐딱하게만 바라보는 자네는 아직 미치광이가 아닐세. 정말 미치광이가 되어 보게. 어줍잖게 미치지 말고 말일세. 정말이지 나도 미치고만 싶네 그려.

그리하여 계우는 제 집의 이름을 염재念齋라 하였다. 그렇다면 염재는 생각하는 집인가? 아니면 생각을 잊는 집인가? 이 집의 화두는 바로 생각이다. 그놈의 생각만 없어도 한 세상 편히 지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바깥 세상의 소리도, 방안의 물건도 모두 제 자리에 놓여 있듯, 송욱은 여태도 술 덜깬 표정으로 그 이불 속에 팔자 좋게 누워 있었을 터인데, 그놈의 생각 때문에 그는 극심한 자아분열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염재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집이겠구나.

연암은 이렇게 말하며 글을 끝맺는다. “대저 송욱은 미친 사람이다. 또한 이로써 나 스스로를 권면해 본다.” 송욱의 미친 짓으로 스스로를 권면하겠다니, 자신도 송욱과 같은 미치광이가 되었으면 싶다는 뜻이다. 그도 아직은 계우처럼 맨 정신으로는 미칠 수가 없었던 게다. 이 세상을 버텨내려면 아예 송욱처럼 신나게 미쳐 보든지, 아니면 마음속에서 그 미치겠다는 생각마저 걷어내 버리든지 할 일이다. 어정쩡하게 술에 취해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미치자! 그것도 완전히 미치자! 그렇지 않으면 아무 생각 없는 멍청이가 되자! 그것만이 이 흐린 세상을 건너가는 방법이 될 테니까. 나는 연암의 이 글에서 그 배면에 묻어나는 안타까운 한숨을 읽는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송욱이 송욱을 찾아다니다

2. 자신의 과거시험지를 자신이 채점하다

3. 송욱처럼 완전히 미치길

4. 전후의 안쓰러운 내면풍경

5. 아홉은 죽어나가는 과거시험

6. 연암이 과거시험을 절망스럽게 본 이유

  1. 『논어論語』 「양화陽貨」 12에 “子曰: 色厲而內荏, 譬諸小人, 其猶穿窬之盜也與.”라 한데서 따온 말이다. 얼굴빛은 위엄이 있으면서 마음이 유약함을 이른다. 집주集注는 실상은 없이 이름만 훔쳐 항상 남들이 알까봐 전전긍긍하는 자를 말한다고 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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