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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생각의 집, 나를 어디서 찾을까? - 2. 자신의 과거시험지를 자신이 채점하다 본문

책/한문(漢文)

생각의 집, 나를 어디서 찾을까? - 2. 자신의 과거시험지를 자신이 채점하다

건방진방랑자 2020. 4. 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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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신의 과거시험지를 자신이 채점하다

 

 

드디어 동곽東郭의 소경에게 가서 점을 쳤다. 소경은 점을 치며 말하였다.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갓끈이 끊어져 구슬이 흩어졌구나. 저 올빼미를 불러다가 헤아려보게 하자꾸나.” 둥근 동전이 잘 구르다가 문지방에 부딪쳐 멈추자, 동전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축하하며 말하였다. “주인은 놀러 나갔고, 객은 깃들어 쉴 곳이 없구나. 아홉을 잃고 하나만 남았으니, 이레 뒤에는 돌아오겠구나. 이 점괘가 크게 길하니 마땅히 과거에 높이 붙겠구려.”

遂占之東郭之瞽者, 瞽者占之曰: “西山大師, 斷纓散珠, 招彼訓狐, 爰計算之.” 圓者善走, 遇閾則止. 囊錢而賀曰: “主人出遊, 客無旅依. 遺九存一, 七日乃歸. 此辭大吉, 當占上科.”

점장이는 주인은 놀러가고 없고, 객만 남아 깃들어 쉴 데도 못 찾고 헤매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구슬 아홉을 잃었지만 하나는 남았으니 7일 후엔 돌아오리라고 한다. 돌아올 뿐 아니라, 과거에 좋은 등수로 급제할 괘라고 축하까지 한다. 아홉 개 구슬에서 하나만 남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점장이의 점괘이니 우리는 가늠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송욱의 발광은 과거에 붙지 못해 생긴 병인가? 과거에 급제만하면 깨끗이 나을 병인가?

 

 

송욱이 크게 기뻐하여, 매번 과거를 베풀어 선비를 시험할 때마다 반드시 유건儒巾을 쓰고 나아가서는, 문득 제 시험 답안에다 스스로 비점批點을 치고 높은 등수를 큰 글씨로 써 놓곤 하였다. 그래서 한양 속담에 반드시 이루지 못할 일을 두고 송욱宋旭이가 과거에 응시하기라고 말하곤 한다. 군자가 이말을 듣고 말하였다. “미치긴 미쳤지만 선비로구나! 이는 과거에 나가긴 해도 과거에 뜻을 두지는 않은 것이다.”

旭大喜, 每設科試士, 旭必儒巾而赴之, 輒自批其券, 大書高等. 故漢陽諺, 事之必無成者, 稱宋旭應試. 君子聞之曰: “狂則狂矣, 士乎哉. 是赴擧而不志乎擧者也.”

그래서 마침내 송욱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잃는 일도 없이 과거 시험 때마다 자신있게 유건儒巾을 눌러쓰고 어깨를 쫙 펴고 시험장에 들어가, 제 답안지에 잘 썼다고 비점批點을 찍고는 제가 제 붓으로 등수까지 써놓고 나왔다. 과연 점괘는 효험이 있었구나.

사람들은 송욱더러 미쳤다 하고, 군자는 미치긴 했어도 선비라고 한다. 또 이건 무슨 소리일까? 과거에 나가면서 과거를 염두에 두지 않으니 미친 것이요, 과거 같지 않은 과거에 응시하면서 급제할 마음을 까맣게 잊었으니 선비인 것이다. 어차피 과거 급제란 요행수가 아닌가? 설사 급제한들 그것은 재앙의 시작일 뿐이다. 그러니 과거 시험장에 들어앉아 희희낙락 제가 제 답안지 채점까지 해버리니 통쾌하지 아니한가?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송욱이 송욱을 찾아다니다

2. 자신의 과거시험지를 자신이 채점하다

3. 송욱처럼 완전히 미치길

4. 전후의 안쓰러운 내면풍경

5. 아홉은 죽어나가는 과거시험

6. 연암이 과거시험을 절망스럽게 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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