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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 여름 밤 이야기 - 4. 취기에 밤거릴 헤매다 만난 호백이 본문

책/한문(漢文)

한 여름 밤 이야기 - 4. 취기에 밤거릴 헤매다 만난 호백이

건방진방랑자 2020. 4. 6.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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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취기에 밤거릴 헤매다 만난 호백이

 

 

조금 술이 취하자 인하여 운종가雲從街로 나와 달빛을 밟으며 종각鍾閣 아래를 거닐었다. 이때 밤은 이미 삼경하고도 사점을 지났으되 달빛은 더욱 환하였다. 사람 그림자의 길이가 모두 열 길이나 되고 보니, 자기가 돌아보아도 흠칫하여 무서워 할 만하였다. 거리 위에선 뭇개들이 어지러이 짖어대고 있었다. 오견獒犬이 동쪽으로부터 왔는데 흰빛에다 비쩍 말라있었다. 여럿이 둘러싸 쓰다듬자, 좋아서 꼬리를 흔들며 고개를 숙이고서 한참을 서 있었다.

少醉, 因出雲從衢, 步月鍾閣下. 時夜鼓已下三更四點, 月益明. 人影長皆十丈, 自顧凜然可怖. 街上群狗亂嘷. 有獒東來, 白色而瘦. 衆環而撫之, 喜搖其尾, 俛首久立.

목마르던 끝에 급하게 마셔댄 술에 취기가 조금 오르자, 그들은 달빛을 밟으며 종각 아래로 진출하였다. 밤은 어느새 깊어 12시를 넘겼으되, 달빛은 한잔 술에 푸근해진 그네들의 마음처럼 더욱 환하기만 하였다. 달빛 아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채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들은 걷고 있다. 개들도 달빛에 취해 이리저리 몰켜다니며 어지러이 짖어대고 있다.

바로 그때 덩치 큰 오견獒犬 한 마리가 동편에서 어슬렁거리며 걸어왔다. 털빛은 희고, 몸은 비쩍 마른 녀석이었다. 일행이 녀석을 에워싸 쓰다듬어주자 녀석은 경계하거나 으르렁거리는 기색도 없이 꼬리를 흔들며 고개를 숙인채 그 손길을 말없이 받았다. 저를 알아주는 드문 손길이 고마웠던 것이다.

 

 

일찍이 들으니 오견獒犬은 몽고에서 나는데, 큰 놈은 말만한데다 사나워서 길들이기가 어렵다고 한다. 중국에 들어온 것은 다만 작은 놈이어서 길들이기가 쉽고, 우리나라로 나온 것은 더욱 작은 놈인데, 우리나라 개와 비교해보면 훨씬 크다. 낯선 것을 보고도 짖지 않는데, 한 번 성이 났다 하면 으르렁거리면서 위세를 피우곤 한다. 시속時俗에선 호백胡白이라고 부른다. 특히 작은 놈은 발바리라고 부르니, 운남雲南에서 나는 종자다. 모두 고기를 좋아하는데, 비록 아무리 배고파도 불결한 음식은 먹지 않는다. 능히 사람 뜻을 잘 알아, 목에다 붉은 띠로 편지를 매달아 주면 비록 멀어도 반드시 전한다. 혹 주인을 만나지 못하게 되더라도 반드시 주인 집 물건을 물고서 돌아와 신표로 삼는다고 한다. 해마다 늘상 사신을 따라서 우리나라에 오지만, 대부분은 굶어 죽는 수가 많다. 늘상 혼자 다니며 활개치지 못한다.

嘗聞, 獒出蒙古, 大如馬, 桀悍難制. 入中國者, 特其小者易馴, 出東方者, 尤其小者, 而比國犬絶大. 見怪不吠, 然一怒則狺狺示威, 俗號胡白. 其絶小者, 俗號犮犮, 種出雲南. 皆嗜胾, 雖甚飢, 不食不潔嗾. 能曉人意, 項繫赫蹄書, 雖遠必傳. 或不逢主人, 必啣主家物而還, 以爲信云. 歲常隨使者至國, 然率多餓死. 常獨行不得意.

오견獒犬은 몽고산으로 큰 놈은 말만하고 사나워 길들일 수가 없는 짐승이라고 했다. 중국에는 그중에 작은 놈들이 들어왔고, 우리나라에는 그중에서도 다시 작은 놈들이 들어왔는데도 우리나라 토종의 개보다는 덩치가 훨씬 크니, 원래 몽고의 오견獒犬은 크고 사납기가 어떠할지 보지 않고서도 짐작이 간다. 이놈은 처음보는 괴상한 것을 보고도 전혀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업신여김을 당해 성이 나면 으르렁거리며 제 성질을 보인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배고파 죽게 되더라도 더러운 음식은 입에 대지 않는다. 총명하여 편지 심부름도 잘한다. 늘상 혼자 다니며, 무리 짓지 않는다. 그래서 늘 구석을 떠돌다 배가 곯아 죽는 수가 많다. 오랑캐 땅에서 온 흰 개라 해서 세상 사람들은 이 개를 호백胡白라고 부른다. 발바리는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놈만 따로 부르는 명칭이다.

굶어 죽을지언정 굴종과 타협의 더러운 음식은 먹지 않는다. 떼거리 짓지 않고 혼자 지낸다. 총명한 지혜를 지녔으되, 그 뜻을 펼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 대부분 굶어죽는다. 이것은 북방에서 온 개 호백이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시대의 아웃사이더로 떠돌던 연암을 비롯한 일행들의 이야기인가?

 

 

 

 

호백이는 티벳 마스티프로 불린다. 이날 만났던 호백이도 이와 비슷하게 생겼을 거다. 매우 야윈 하얀색의 외로운 방랑자.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무더운 여름밤 연주하고 춤추던 친구들

2. 거미줄 이야기에서 거문고 이야기로

2-1. 총평

3. 연암을 애타게 기다리던 친구들

4. 취기에 밤거릴 헤매다 만난 호백이

5. 호백이 같은 친구들아

6. 밤거릴 헤매야만 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6-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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