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거미줄 이야기에서 거문고 이야기로
매탕梅宕 이덕무李德懋가 한번은 처마 사이에서 늙은 거미가 거미줄 치는 것을 보다가 기뻐하며 내게 말하였다. “묘하구나! 때로 머뭇머뭇 할 때는 생각에 잠긴 것만 같고, 잽싸게 빨리 움직일 때는 득의함이 있는 듯하다. 발뒤꿈치로 질끈 밟아 보리 모종하는 것도 같고, 거문고 줄을 고르는 손가락 같기도 하구나.” 이제 담헌과 풍무가 서로 화답함을 보며 나도 거미가 거미줄 치던 느낌을 얻게 되었다. 梅宕嘗見簷間, 老蛛布網, 喜而謂余曰: “妙哉! 有時遲疑, 若其思也; 有時揮霍, 若有得也; 如蒔麥之踵, 如按琴之指.” 今湛軒與風舞相和也, 吾得老蛛之解矣. |
그리고는 둘째 단락에 가서 이야기가 돌연 이덕무의 늙은 거미 이야기로 건너뛴다. 어떤 때 거미는 꼼짝도 않고서 마치 무슨 망설임이라도 있는 듯 갈 듯 말 듯 머뭇거린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그 놈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거미줄 위를 잽싸게 내달릴 때는 그 의기양양한 기운이 내게도 느껴진다. 틀어눌러 꾹 주저앉아 있을 때에는 보리 모종을 파종한 뒤 발 뒤꿈치로 질끈 밟는 농부의 발놀림이 떠오르고, 여러 개 발을 겅중거리며 줄 위를 미끄러지듯 지날 때는 마치 거문고를 연주하는 연주자의 손놀림도 같구나. 이제 나는 이덕무가 전날 내게 들려준 이야기처럼, 홍대용과 김억의 연주하는 손가락을 보며 거미줄 위를 제멋대로 왔다 갔다하는 거미의 능수능란한 움직임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해 여름, 내가 담헌에게 갔더니 담헌은 마침 악사 연익성延益成과 더불어 거문고를 논하고 있었다. 그때 하늘은 비를 잔뜩 머금어, 동녘 하늘가엔 구름장이 먹빛이었다. 우레가 한번 치기만 하면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잠시 후 긴 우레가 하늘로 지나갔다. 담헌이 연에게 말하였다. “이 우레 소리는 무슨 소리에 속할까?” 그리고는 마침내 거문고를 당겨 소리를 맞춰보는 것이었다. 나도 마침내 「천뢰조天雷操」를 지었다. 去年夏, 余嘗至湛軒, 湛軒方與師延論琴. 時天欲雨, 東方天際, 雲色如墨. 一雷則可以龍矣. 旣而長雷去天, 湛軒謂延曰: “此屬何聲?” 遂援琴而諧之. 余遂作天雷操. |
다시 늙은 거미의 연상은 지난 해 여름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한낮의 여름 하늘은 먹장구름에 뒤덮혀 툭 건드리면 비가 쏟아질 형국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 위로 마른번개가 번쩍하는가 싶더니 우르릉 꽈광 하고 우레 소리가 허공을 핥고 지나간다. 악사 연익성과 거문고 토론이 한창이던 홍대용은 기껏 한다는 생각이, “여보게, 자네! 저 우레 소리를 악보로 옮기면 무슨 음에 속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던 토론을 밀어 두고, 둘이 머리를 맞대고는 연신 거문고 소리로 조금 전 우레 소리와 맞춰보는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어진 나는 그 옆에 앉아서 그 우레 소리를 한편 시로 옮겨 본 기억이 있다.
▲ 전문
▲ '백탑시파'는 백탑 서쪽이 이들의 주무대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석치 등이 이 모임을 주도하며 '북학사상'을 폈다.
인용
2-1. 총평
5. 호백이 같은 친구들아
6-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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