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더운 여름밤 연주하고 춤추던 친구들
이번에 읽을 두 편 글은 연암과 그 벗들이 격의 없이 만나 예술을 논하고 인생을 논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들이다. 암울한 시대를 건너기가 답답해 가슴 터지기야 그들이 우리보다 덜하지 않았겠지만, 이런 풍류와 여유가 있었기에 그들은 발광發狂에는 이르지 않을 수 있었다. 윗글의 제목은 「하야연기夏夜讌記」이다.
22일, 국옹麯翁과 함께 걸어서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에게 갔다. 풍무風舞 김억金檍은 밤에야 도착하였다. 담헌이 슬瑟을 타자, 풍무는 금琴으로 화답하고, 국옹麯翁은 갓을 벗고 노래한다. 밤 깊어 구름이 사방에서 몰려들자 더운 기운이 잠시 가시고, 현絃의 소리는 더욱 맑아진다. 좌우에 있는 사람은 모두 고요히 묵묵하다. 마치 내단內丹 수련 하는 이가 내관장신內觀臟神 하는 것 같고, 입정에 든 스님이 돈오전생頓悟前生 하는 듯하다. 대저 스스로 돌아보아 곧으매 삼군이 막아선다 해도 반드시 나아갈 기세다. 국옹麯翁이 노래할 때를 보면 해의방박解衣磅礴, 옷을 죄 벗어 부치고 곁에 사람이 없는 듯 방약무인하다. 二十二日, 與麯翁步至湛軒. 風舞夜至. 湛軒爲瑟, 風舞琴而和之, 麯翁不冠而歌. 夜深, 流雲四綴, 暑氣乍退, 絃聲益淸. 左右靜黙, 如丹家之內觀臟神, 定僧之頓悟前生. 夫自反而直, 三軍必往. 麯翁當其歌時, 解衣磅礴, 旁若無人者. |
풍무風舞는 당대에 서양 칠현금의 명연주자로 이름났던 김억金檍이다. 담헌은 비파를 타고, 풍무가 칠현금으로 여기에 가세하자, 곁에 있던 국옹麯翁은 아예 갓을 벗어부치고 맨 상투로 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밤은 깊어만 가는가 싶더니, 구름조차 그 소리에 무슨 느낌이 있었던가 사방에서 집 지붕 위로 몰려든다. 방안에 가득하던 후덥지근한 기운이 조금 가시어진다. 갑자기 연주하는 비파와 칠현금의 소리가 더욱 청아하게 들린다.
곁에 앉아 구경하는 사람들은 침도 못 삼킨 채 비파와 칠현금의 연주에 곁들어진 국옹의 노래에 숨을 죽이고 있다. 소리만 없다면 그들은 마치 수련 삼매에 빠진 내단가內丹家인가 싶고, 입정入定에 든 스님이 전미개오轉迷開悟의 한 소식을 깨친 것만 같은 표정들이다. 관객들의 눈빛은 마치 연주자의 손끝 하나, 숨 소리 하나까지도 집어 삼킬 것만 같다. 국옹의 노래는 이제 제 흥에 겨워, 갓을 벗는 차원을 넘어 웃통을 죄 걷어 부치고 곁에 있는 사람은 자못 안중에도 없다는 기세다.
▲ 전문
인용
2-1. 총평
5. 호백이 같은 친구들아
6-1. 총평
'책 > 한문(漢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여름 밤 이야기 - 3. 연암을 애타게 기다리던 친구들 (0) | 2020.04.06 |
---|---|
한 여름 밤 이야기 - 2. 거미줄 이야기에서 거문고 이야기로 (0) | 2020.04.06 |
갈림길의 뒷 표정 - 5. 친구의 궁핍함을 알면서도 마음엔 갈등이 생기네 (0) | 2020.04.05 |
갈림길의 뒷 표정 - 4. 나의 모든 걸 다 털어놓게 만드는 친구 (0) | 2020.04.05 |
갈림길의 뒷 표정 - 3. 백동수는 참된 야뇌인이구나 (0) | 2020.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