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호백이 같은 친구들아
무관懋官이 술에 취해 ‘호백豪伯’이라고 이름 붙여 주었다. 잠시 후 있는 곳을 잃게 되자, 무관은 구슬프게 동쪽을 향해 서서 마치 친구라도 되는 듯이 ‘호백아!’하고 이름을 부른 것이 세 차례였다.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고 떠들자, 거리의 뭇개들이 어지러이 내달리며 더욱 짖어댔다. 마침내 현현玄玄의 집에 들러 문을 두드려 더욱 마셔 크게 취하고는 운종교를 밟고서 다리 난간에 기대어 이야기 하였다. 懋官醉而字之曰豪伯. 須臾失其所在, 懋官悵然, 東向立, 字呼豪伯如知舊者三. 衆皆大笑鬨, 街群狗亂走益吠. 遂歷叩玄玄, 益飮大醉, 踏雲從橋, 倚闌干語. |
술 취한 이덕무가 ‘호백胡白이’를 ‘호백豪伯이’라 부르며 어둠 속 왔던 곳으로 사라진 호백이를 반복해서 부르는 장면은 그래서 듣기에 더 슬프게 들린다. 찾는 것은 호백이인데 짖어대는 것은 거리의 개 떼들이다. 호백이는 어디로 갔는가? 저를 알아주는 일행의 손길에 잠시 행복해하던 북방에서 온 개 호백이는 어디로 갔는가? 주려 죽을망정 불의와는 타협치 않고, 뜻을 꺾는 굴종은 거부하던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총명한 지혜와 고고한 정신이 득의를 낳는 대신 비참한 아사餓死거나 비굴한 굴종을 강요하던 시대에 그들과 호백이는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날 대보름 밤에 연옥 유련은 이 다리 위에서 춤을 추고, 백석白石 이홍유李弘儒의 집에서 차를 마셨었다. 혜풍 유득공은 장난으로 거위 모가지를 끌고 몇 바퀴 돌면서 마치 하인에게 분부라도 내리는 시늉을 지어서 웃고 즐거워들 하였다. 이제 하마 여섯 해가 지났다. 혜풍은 남쪽으로 금강錦江에 놀러갔고, 연옥은 서쪽으로 관서關西 땅에 나가 있으니, 모두들 별고나 없는지? 囊時上元夜, 蓮玉舞此橋上, 飮茗白石家. 惠風戱曳鵝頸數匝, 分付如僕隸狀, 以爲笑樂. 今已六年. 惠風南遊錦江, 蓮玉西出關西, 俱能無恙否? |
여섯 해 전 대보름 밤에도 연암은 벗들과 함께 운종교 위에서 달빛을 밟으며 노닌 적이 있었다. 술 취한 연옥은 다리 위에서 달빛 춤을 덩실덩실 추었고, 그래도 취기가 가시지 않자 백석의 집으로 몰려가 차를 마셨었다. 혜풍은 그집 마당에서 거위의 모가지를 비틀어 쥐고서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어서 이실직고以實直告 하지 못할까?” 하는 시덥잖은 장난으로 웃고 떠들며 밤을 지샌 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 벗들 이제는 모두 뿔뿔히 흩어져 안부조차 알 길이 없구나. 그리운 날이 그렇게 가버리듯, 오늘의 이 즐거운 자리도 얼마 후엔 추억 속의 그림이 되고 말겠구나.
▲ 전문
인용
2-1. 총평
5. 호백이 같은 친구들아
6-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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