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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문(大學問) - 3. 내면에 구비된 명덕을 통해 지극한 선에 이르라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대학문(大學問) - 3. 내면에 구비된 명덕을 통해 지극한 선에 이르라

건방진방랑자 2020. 3. 1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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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면에 구비된 명덕을 통해 지극한 선에 이르라

 

전덕홍(錢德洪)

 

 

: “然則又烏在其爲止至善?”

: “至善者, 明德親民之極則也. 天命之性, 粹然至善, 其靈昭不昧者. 此其至善之發見, 是乃明德之本體, 而卽所謂良知也. 至善之發見, 是而爲是, 非而爲非, 輕重厚薄, 隨感隨應, 變動不居, 而亦莫不自有天然之中, 是乃民彝物則之極, 而不容少有議擬增損於其閒也. 少有擬議增損於其閒, 則是私意小智, 而非至善之謂矣. 自非愼獨之至, 惟精惟一, 其孰能與於此乎?

後之人惟其不知至善之在吾心, 而用其私智以揣摸測度於其外, 以爲事事物物各有定理也, 是以昧其是非之則, 支離決裂, 人欲肆而天理亡, 明德親民之學遂大亂於天下.

蓋昔之人固有欲明其明德者矣. 然惟不知止於至善, 而騖其私心於過高, 是以失之虛罔空寂, 而無有乎家國天下之施, 則二氏之流是矣; 固有欲親其民者矣. 而惟不知止於至善, 而溺其私心於卑瑣, 生意失之權謀智術, 而無有乎仁愛惻坦之誠, 五伯功利之徒是矣. 是皆不知止於至善之過也.

故止至善之於明德親民也, 猶之規矩之於方圓也, 尺度之於長短也, 權衡之於輕重也. 故方圓而不止於規矩, 爽其則矣; 長短而不止於尺度, 乖其劑矣; 輕重而不止於權衡, 失其準矣; 明明德親民而不止於至善, 亡其本矣.

故止於至善以親民, 而明其明德, 是之謂大人之學.”

 

 

 

 

해석

: “然則又烏在其爲止至善?”

제자가 그렇다면 또한 어째서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을 하는 것에 있다고 했습니까?”라고 여쭈었다.

 

: “至善者, 明德親民之極則也.

말씀하셨다. “지극한 선이란 명덕(明德)’친민(親民)’의 극진한 법칙이다.

 

天命之性, 粹然至善, 其靈昭不昧者.

천명의 본성은 맑고도 지극히 선해 영험하고 밝고 어둡지 않은 것이다.

 

此其至善之發見, 是乃明德之本體,

이것은 지선(至善)’이 발현된 것이고 이것이 곧 명덕(明德)’의 본체이니

 

而卽所謂良知也.

곧 말했던 양지(良知)’라는 것이다.

 

至善之發見, 是而爲是, 非而爲非,

지선(至善)의 발현이란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며

 

輕重厚薄, 隨感隨應, 變動不居,

가볍고 무겁고 두껍고 얇은 것이 느낌을 따라 응하는 것에 따라 변하여 움직이며 한 모습을 자처하지 않는다.

 

而亦莫不自有天然之中,

그래서 또한 절로 천연한 가운데에 있지 않음이 없으니

 

是乃民彝物則之極,

이것이 곧 백성이 지켜야 할 도리이자 사물법칙의 지극한 것이고

 

而不容少有議擬增損於其閒也.

조금도 그 사이에 의론이나 의심이나 덧붙이는 걸 용납지 않는다.

 

少有擬議增損於其閒, 則是私意小智,

조금이라도 그 사이에 의심이나 의론이나 덧붙이는 걸 용납한다면 사적인 뜻과 하찮은 지혜가

 

而非至善之謂矣.

지선(至善)’이라 말할 수 없다.

 

自非愼獨之至, 惟精惟一, 其孰能與於此乎?

스스로 신독함의 지극함과 유정유일(惟精惟一)’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이것에 함께 할 수 있으리오.

 

後之人惟其不知至善之在吾心,

후대 사람인 주희그칠 곳을 알 수 있다면 협소한 곳의 사사건건이 모두 정한 이치가 있게 된다能知所止, 則方寸之間, 事事物物, 皆有定理矣.-大學或問』】는 지극한 선이 나의 마음에 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

 

而用其私智以揣摸測度於其外,

사사로운 지혜를 써서 바깥의 사물을 헤아리고 측량해서

 

以爲事事物物各有定理也,

일마다 물건마다 각각 정해진 이치가 있다고 생각했으니,

 

是以昧其是非之則, 支離決裂,

이런 까닭으로 시비의 법칙이 어두워졌고 지리멸렬해져서

 

人欲肆而天理亡, 明德親民之學遂大亂於天下.

인욕은 방자해졌고 천리는 사라져 명덕(明德)’친민(親民)’의 학문이 마침내 크게 천하에서 어지러워졌다.

 

蓋昔之人固有欲明其明德者矣.

대체로 옛날 사람 중엔 진실로 밝은 덕을 밝히려 했던 사람이 있었다.

 

然惟不知止於至善, 而騖其私心於過高,

그러나 오직 지극한 선에 이른다는 걸 알지 못하고 사심을 과도하게 높은 곳에 달려

 

是以失之虛罔空寂, 而無有乎家國天下之施,

이런 까닭으로 허망공적(虛罔空寂)에 잃어 집과 나라와 천하의 가르침이 없어졌으니,

 

則二氏之流是矣;

이것이 정명도와 정이천 두 사람의 유폐(流弊)가 바로 이것이다.

 

固有欲親其民者矣.

진실로 그 백성을 친하게 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而惟不知止於至善, 而溺其私心於卑瑣,

그러나 오직 지극한 선에 이른다는 걸 알지 못하고 사심을 비천하고 번쇄한 것에 빠뜨려

 

生意失之權謀智術, 而無有乎仁愛惻坦之誠,

생생한 뜻이 권모술수에 잃어 인애측탄(仁愛惻坦)의 진심이 사라졌으니

 

五伯功利之徒是矣.

이것이 오패(五覇)와 같은 공리의 무리들이 이들이다.

 

是皆不知止於至善之過也.

이것이 모두 지어지선(止於至善)’을 알지 못하는 잘못이다.

 

故止至善之於明德親民也, 猶之規矩之於方圓也,

그러므로 지어지선(止於至善)’명덕(明德)’친민(親民)’에 있어서의 관계는 콤파스와 직각자가 네모와 원에 있어서의 관계와 같고

 

尺度之於長短也, 權衡之於輕重也.

자가 길이에 있어서의 관계와 같고 저울이 무게에 있어서의 관계와 같다.

 

故方圓而不止於規矩, 爽其則矣;

네모와 원은 콤파스와 직각자에 의지하지 않으면 법칙을 어긋나게 되고

 

長短而不止於尺度, 乖其劑矣;

길이가 자를 의지하지 않으면 정확함이 무너지며

 

輕重而不止於權衡, 失其準矣;

무게가 저울을 의지하지 않으면 기준을 잃는다.

 

明明德親民而不止於至善, 亡其本矣.

명명덕(明明德)’친민(親民)’이 지선(至善)을 의지하지 않으면 근본을 상실한다.

 

故止於至善以親民, 而明其明德,

그렇기 때문에 지극한 선에 이르는 것으로 백성을 친히 하고 밝은 덕을 밝히는 것,

 

是之謂大人之學.”

이것을 대인의 배움이라 말하는 것이다.”

 

 

인용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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