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욕망의 회로: 출구가 없다!
능력이 없는 이의 신에 대한 복수
이제 신애는 유괴범 대신 신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탄다. 하지만, 용서가 그렇듯이 복수 역시 능력의 문제다. 그 나약한 몸으로 할 수 있는 복수라는 게 그다지 많지 않다. 테이프 가게에 가서 시디를 슬쩍한다든지, 공원에서 하는 군중목회 때 찬송가 대신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틀어놓는 것. 약국 장로를 유혹해서 갈대밭으로 끌고 가는 것. 자신을 위한 구역예배 때 돌을 던지는 것 등. 한마디로 “신이 있다”고 하는 일상의 여러 장면 속에서 깽판을 치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그녀는 계속 태양을 쏘아본다. 자동차에서도 갈대밭에서도 집안에서도 그녀는 계속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린다. “봐, 보이냐구?” 그녀가 하는 유치한 신성모독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연인에 대한 몸짓과 비슷하다.
그나마 이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원작에선 주인공이 자살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영화 속의 신애에겐 죽을 용기도 없다. 과도로 손목을 그었지만, 길거리로 뛰쳐나와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이 장면은 <초록물고기>의 결말을 연상시킨다. 조폭 조직 속에서 새로운 패밀리를 구성하고 싶었지만 막동이는 결국 죽음으로 내몰린다. 가족의 이름으로 피를 나눈 형은 경찰이고, 현실에서의 형은 조폭두목이다. 전자는 막동이를 버렸고, 후자는 막동이를 죽였다. 죽기 직전 막동이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을 주절거리면서 흐느끼는 막동이. 막동이는 죽고, 신애는 살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막동이는 죽임을 당했고, 신애는 죽기조차 못했다. 막동이와 신애, 모두 출구 없는 폐쇄회로에 꼼짝없이 갇힌 형국이다.
처절한 결말과 황량한 결말
막동이의 죽음을 대가로 가족들은 큰나무집이라는 식당을 차린다. 그의 오랜 꿈대로 가족들이 한군데 모여 식당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집에 조직의 큰 형이자 막동이를 죽인 장본인인 배태곤과 미애가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 찾아와선 삼계탕을 먹는다. 두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막동이네 가족들은 힘을 합쳐 씨암탉을 잡고, 배태곤과 미애는 그걸 먹는다. 피를 뚝뚝 흘리는 씨암탉과 막동이의 이미지가 교차한다. 그렇게 두 가족은 막동이를 희생양 삼아 일상을 꾸려간다. ‘스위트홈’이란 망상을 위해선 이토록 처절한 희생이 요구되는 법이다.
<밀양>의 결말은 더 냉정하다. 손목을 긋고 입원했던 신애는 종찬의 손에 이끌려 병원을 나온다. 머리를 자르려고 미장원엘 갔다가 유괴범의 딸과 마주친다. 소년원에서 미용기술을 익혀 나왔다는 것이다. 잔인한 마주침! 신애는 머리를 반쯤 자르다 말고 뛰쳐나온다. 빈집으로 돌아와 마당에서 거울을 보며 나머지 머리를 자른다. 조용히 따라 들어와 거울을 들어주는 종찬. 그게 전부다! 그녀의 앞에는 또 다시 사막처럼 황량한 일상이 펼쳐지리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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