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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교육입국론, 회고와 전망 - 2. 주입식이냐, 토론식이냐의 공허한 논의 본문

책/교육(敎育)

교육입국론, 회고와 전망 - 2. 주입식이냐, 토론식이냐의 공허한 논의

건방진방랑자 2022. 2. 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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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입식이냐, 토론식이냐의 공허한 논의

 

 

공자의 세미나

 

공자는 학생들과 종종 세미나를 했다. 그가 유랑생활을 할 때 논두렁에 쪼그리고 앉아서도 틈틈이 세미나를 했다. 그의 유랑길을 시종일관 지킨 것은 자로와 안회였다. 쫓겨 다니면서 논두렁에서 밥을 지어 먹어야 하는 고달픈 인생!

 

공자는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 “야들아! 각자 인생 포부를 한 번 말해보기로 하자!” 그러니까 나서기 좋아하는 자로가 먼저 이렇게 말한다: “난 말이유, 천리마가 달린 고급수레 하나 타고 다니는 것이 소원이유.” 요즈음 말로 하면 최고급 벤츠 승용차 하나 굴리고 싶다는 소박한 포부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또 가벼운 고급 털옷을 유감없이 입어보았으면 좋갔수.” 베르사체 모피외투라도 하나 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안연이 이번에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성적이 좋아도 자랑치 아니하고, 공을 세워도 그 공을 드러내지 않는 그런 조용한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역시 모범생다운 대답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자로가 불쑥 이렇게 말한다: “이제 형님 차례유. 형님이 한번 말씀해보슈(공자와 자로는 나이 차이가 많지 않았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단짝 친구와도 같았다).”

이에 사양치 않고 공자는 이와 같이 대답한다. 이 마지막 한 마디야말로 유교의 전체적 성격을 규정지운 천하의 명언이 되었다: “난 말이다! 늙은이로부터는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친구로부터는 믿음직스럽게 여겨지며, 젊은이로부터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단다[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論語』 「公冶長]”

 

이 세 마디는 동양문명의 전체적 성격을 규정한 위대한 발언이다. 나는 공자가 그토록 소박하지만 더 이상 없는 지고의 이상을 말하고 있는, 그 거대한 인품에 반하고 말았다. 내가 논어에서 가장 사랑하는 로기온이 바로 이 세 마디이다. 공자는 세미나, 즉 토론수업을 통하여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였던 것이다.

 

 

[논어]엔 여러 이야기들이 많지만, 한번씩 일깨워주는 내용들이 많다.  

 

 

 

공자의 친절한 교수방법

 

공자의 교수방법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명언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나보고 박식하다고들 말하는데, 과연 내가 뭘 좀 아는가? 나는 말이야,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단지 비천한 아이라도 나에게 질문을 하면, 비록 그것이 골 빈 듯한 멍청한 질문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 양단兩端의 논리를 다 꺼내어 그가 납득할 수 있도록, 있는 성의를 다해 자세히 말해준다. 이래서 내가 좀 아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論語』 「子罕

 

 

 

유교무류: 가르침만 있고 인간차등은 없다

 

공자의 위대함은 주입식 교육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학생이 아무리 멍청한 질문을 해도 그 질문의 긍정적ㆍ부정적 양극단의 가능성의 모든 스펙트럼을 드러내어 질문자 스스로 그것을 깨닫도록 만드는 계발(啓發)’이 그의 교육방법이었다. 21세기 혁신교육의 모든 가능성은 이미 공자에 구현되어 있었다. 공자는 개방적이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계급적 차별의식이 없었다: “난 말이야, 누구든 육포 한 다발이라도 가지고 와서 예를 갖추면,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었거든[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論語』 「述而]” 공자는 말한다: “가르치는데 류()적 차별은 있을 수 없다[有敎無類 [論語』 「衛靈公]” 유교무류라는 유명한 명제는 오직 가르침만 있고, 류적 차별은 있을 수 없다라고 번역될 수도 있다. 공자는 교육에 인간 차등을 두지 않았다. 보편교육의 실천자였다.

 

 

10월 8일 청계천에서 열렸던 대안교육 한마당은 다양한 아이들의 색채가 어우러져 축제의 장이 되었다. '세상은 즐거운 학교다' 

 

 

 

공허한 토론교육에 대한 공자의 반론

 

그러나 나의 이러한 논의가 주입식 교육을 저주하고 토론식 교육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주입은 교육의 주요 방법이다. 주입하고자 하는 내용이 식민지교육ㆍ군사독재교육에 의하여 터무니없이 왜곡되었다고 하는 커리큘럼 비리에 대한 비판과, 주입이라고 하는 교육방법론의 가치를 혼효하는 오류는 허용될 수 없다. 주입의 효율적 방법으로 학생들의 자발적 흥미를 유발시키는 선생님은 초특급의 교사요, 위대한 교육자라고 말할 수 있다. 토론도 위대한 교사의 인도가 없으면 공허해진다. 교사의 능력 부족을 토론으로 위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공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일찍이 종일토록 밥을 먹지도 않고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생각에만 골몰하여도 보았으나 별 유익함이 없었다. 역시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論語』 「衛靈公]” 공허한 토론, 공허한 사색은 말짱 황이라는 얘기다. 서구의 유수 대학의 대부분의 위대한 강의는 주입식이다. 학생들이 쓸데없는 질문만 남발하는 혼란스러운 강의는 저급한 강의로 폄하된다.

 

 

 

주입식 교육이 나쁜 게 아니라,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는 교육이 문제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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