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배우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가르치다
子曰: “有敎無類.”
人性皆善, 而其類有善惡之殊者, 氣習之染也. 故君子有敎, 則人皆可以復於善, 而不當復論其類之惡矣.
해석
子曰: “有敎無類.”
공자께서 “가르침만 있지 부류에 따른 차별은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人性皆善, 而其類有善惡之殊者,
사람의 본성은 모두 선하지만 부류에 따라 선악이 다른 것은
氣習之染也.
기질과 습관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故君子有敎, 則人皆可以復於善,
그러므로 군자는 가르칠 때에 사람은 모두 선으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하여
而不當復論其類之惡矣.
마땅히 다시는 그 부류의 악을 논하지 않게 해야 한다.
○ 우리는 공자를 위대한 교육자라고 일컫는다. 공자의 교육 사상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말이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의 이 장(章)이다. 곧, ‘유교무류(有敎無類)’는 가르침에 차별을 두지 않으려는 평등교육의 이상을 담았다.
무류(無類)의 류(類)에 대해서 한나라의 마융(馬融)은 종족(種族)의 부류로 보았다. 주자는 기습(氣習)의 차이에 따른 선악(善惡)의 부류로 보고 “사람의 본성은 모두 선하지만 그 류(類)에는 선과 악의 다름이 있으므로 가르치면 누구나 본성이 회복되어 악(惡)의 부류를 다시 논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人性皆善, 而其類有善惡之殊者, 氣習之染也. 故君子有敎, 則人皆可以復於善, 而不當復論其類之惡矣].”라고 했다. 정약용은 인간을 선악으로 양분하는 것은 인성의 특성상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하고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이라는 종족(種族)의 부류나 백관(百官)과 만민(萬民)이라는 귀천(貴賤)의 구별로 보았다. 여러 설을 참조해서 무류(無類)는 신분(身分)이나 기습(氣習)의 고하(高下)를 따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하면 좋을 것이다.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의 이데올로그였던 조기빈(趙紀彬)은 유교무류(有敎無類)를 ‘강역(疆域) 내의 민(民)을 모두 동원하지, 족성(族姓)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유(有)는 ‘역(域)’으로 볼 수 있지만 유교(有敎)를 ‘역교(域敎)’로 볼 근거는 없다. 또 조기빈은 회(誨)란 글자만 ‘가르친다’의 뜻이라고 했지만 교(敎)는 교령(敎令)을 반포해서 교화(敎化)한다는 말로도 쓰였으므로 그것에서부터 ‘가르친다’의 뜻으로 전화(轉化)할 수 있었다.
‘술이(述而)’에서 공자는 ‘자행속수이상(自行束脩以上)은 오미상무회언(吾未嘗無誨焉)이로다’라고 했다. ‘포 한 속 이상을 가지고 와서 집지(執贄)의 예를 갖춘 자에게는 내가 일찍이 가르쳐 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뜻이니 배우러 오는 이들의 신분(身分)이나 기질(氣質)의 고하(高下)를 따지지 않고 균등하게 가르침을 베풀었음을 알 수 있다. 공자는 제자가 3000명에 고제(高弟)만 70명이었다. 처음 강단에 섰을 때와는 달리 그 숫자는 내게 무척 많은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주입식이냐, 토론식이냐 / 노인들은 어린이들을 품어주고 안아주는 존재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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