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리석은 질문이라도 양단의 논리로 세밀히 설명해주다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叩, 音口.
○ 孔子謙言己無知識, 但其告人, 雖於至愚, 不敢不盡耳. 叩, 發動也. 兩端, 猶言兩頭. 言終始, 本末, 上下, 精粗, 無所不盡.
○ 程子曰: “聖人之敎人, 俯就之若此, 猶恐衆人以爲高遠而不親也. 聖人之道, 必降而自卑, 不如此則人不親; 賢人之言, 則引而自高, 不如此則道不尊. 觀於孔子ㆍ孟子, 則可見矣.”
尹氏曰: “聖人之言, 上下兼盡. 卽其近, 衆人皆可與知; 極其至, 則雖聖人亦無以加焉, 是之謂兩端. 如答樊遲之問仁知, 兩端竭盡, 無餘蘊矣. 若夫語上而遺下, 語理而遺物, 則豈聖人之言哉?”
해석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게 있는가? 아는 것이 없다. 다만 비천한 사람이 나에게 묻는데, 텅텅 비어 있는 것 같은 어리석은 질문을 하더라도 나는 그 양단의 논리를 모두 이해시키려 최선을 다한다.”라고 말씀하셨다.
叩, 音口.
○ 孔子謙言己無知識,
공자는 겸손하게 ‘자기는 지식이 없으나
但其告人, 雖於至愚,
다만 남이 물어오면 비록 지극히 어리석으나
不敢不盡耳.
감히 다해주지 않음이 없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叩, 發動也.
고(叩)는 발동함이다.
兩端, 猶言兩頭.
양단(兩端)은 두 갈래라는 말로,
言終始, 本末, 上下, 精粗,
말하자면, 끝과 시작, 본과 말, 위와 아래, 정밀함과 거침에
無所不盡.
다하지 않음이 없다는 말이다.
○ 程子曰: “聖人之敎人, 俯就之若此,
정이천이 말했다. “성인이 남을 가르침에 구부리고 나아감이 이와 같았으니,
猶恐衆人以爲高遠而不親也.
오히려 대중이 고원하다고 여겨 친근하게 여기지 않을까 두려워하셨다.
聖人之道, 必降而自卑,
성인의 도는 반드시 눈높이를 내리고 스스로를 낮춰야 하니
不如此則人不親;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친하게 여기지 않으며,
賢人之言, 則引而自高,
현인의 말은 끌어올려 스스로 높여야 하니
不如此則道不尊.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도가 높아지지 않는다.
觀於孔子ㆍ孟子, 則可見矣.”
이런 사실은 공자와 맹자를 보면 알 수 있다.”
尹氏曰: “聖人之言, 上下兼盡.
윤순(尹淳)이 말했다. “성인의 말은 상하를 겸하여 다하여
卽其近, 衆人皆可與知;
그 비근한 데로 나아가 대중이 다 함께 알 수 있으며,
極其至, 則雖聖人亦無以加焉,
그 지극함을 다함에는 비록 성인도 또한 더할 게 없으니,
是之謂兩端.
이것이 바로 양단이라는 것이다.
如答樊遲之問仁知,
예를 들면 번지의 인과 지를 물음에 답할 때에,
兩端竭盡, 無餘蘊矣.
양단을 다하여 여운이 없었던 것과 같다.
若夫語上而遺下, 語理而遺物,
만약 형이상학만을 말하여 형이하학을 버리고, 천리만을 말하며 사물을 버린다면,
則豈聖人之言哉?”
어찌 성인의 말이라 하겠는가?”
○ 공자는 스스로 지혜 있는 사람으로 자처하지 않고 오히려 무지하다고 겸손해 했다. 하지만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들을 결코 물리치지 않았다. 그 가르침의 방법을 공자는 ‘논어’ ‘자한(子罕)’편의 이 장(章)에서 들려준다.
비부(鄙夫)는 견식(見識)이 없어 고루(固陋)한 사람이다. 문어아(問於我)는 나에게 묻는다는 뜻이다. 공공(空空)은 물으러 온 사람이 지식이 전혀 없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단, 옛 텍스트에 悾悾(공공)으로 되어 있어서, 가르치는 사람이 성실하고 우직한 태도를 짓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정약용은 공자가 스스로 지식이 없다고 밝힌 말로 풀이했다. 여(如)는 동사나 형용사의 뒤에서 ∼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두드릴 고(叩)를 주자(주희)는 발동(發動)으로 풀었으나 정약용은 계고(稽考)로 풀었다. 양단(兩端)은 종시(終始), 본말(本末), 상하(上下), 정조(精粗)를 말한다. 갈(竭)은 다한다는 뜻이다. 고기양단이갈(叩其兩端而竭)이란 질문의 구석구석까지 따져 전부 드러낸다는 말이다.
정약용은 이 장(章)에 대해, 공자가 스스로의 공부에 대해 말했다고 보았다. 그 해석에 따르면, 어떤 사람의 질문이 있으면 나는 그것을 계기로 사물의 이치와 본말을 고찰해서 모두 알려주었기 때문에 차츰 지혜롭게 되었다고 공자가 말한 것이 된다. 하지만 주희는, 아무리 고루한 사람이 물어 와도 성실하게 대해서 남김없이 알려준다고 말한 내용이라고 풀이했다. 안연(顔淵)이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사람을 잘 인도하신다[夫子循循然善誘人]”고 술회한 것을 보면, 이 장(章)은 가르침의 방법에 대해 말한 것인 듯하다. 안정복도 그렇게 풀이했다. 어찌 하면 무익한 빈말로 남에게 뽐내지 않고 차근차근 가르칠 수 있을까? 교직에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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