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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입국론, 회고와 전망 - 5. 혁신은 창조적 전진이다. 해체가 아닌 형성이다 본문

책/교육(敎育)

교육입국론, 회고와 전망 - 5. 혁신은 창조적 전진이다. 해체가 아닌 형성이다

건방진방랑자 2022. 2. 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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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혁신은 창조적 전진이다. 해체가 아닌 형성이다

 

 

엄마가 남긴 교육자의 심상

 

나에게 있어서 교육자의 심상은 나의 엄마가 내 가슴에 그려놓은 것이다. 나의 모친은 무한한 호기심과 섬세한 미감의 소유자였다. 나의 엄마가 평생 어김없이 새벽기도를 다니신 이야기는 옛 천안 잿배기 가도에 칸트의 산보처럼 전해져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는 새벽기도를 가지 않았다. ? 엄마는 나팔꽃처럼 아침에 피어나는 꽃의 동태를 전부 관찰하고픈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꽃이 피어나는 그 모습을 두 눈으로 관찰하고 싶었던 것이다. 벼르고 벼르다가 엄마는 교회를 가지 않고 우리집 화단을 지킨 것이다. 어슴푸레 먼동이 트는 추이와 함께 3시간 동안 꼬박 꽃망울을 응시한 것이다. 내가 잠에서 눈을 떴을 때, “난 보았다!” 그 한마디 속에 성취된 엄마의 감성과 해탈인에 가까운 그 환한 얼굴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대학교 때 나는 풍세면을 지나 깊은 고을 광덕면에 자리 잡고 있는 폐찰에 가까운 광덕사에서 중노릇을 한 적이 있다. 공부한다고 들어갔다가 아예 머리 깎고 스님옷을 입고 염불을 외웠다. 몇 달을 지내고 집에 오는데 나는 삿갓을 쓰고 스님 복장을 입은 채 갔다. 상경길에 시골 할머니들이 어찌나 나에게 인사를 하는지, 우리 민중 속에 불교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상당히 두려웠다. 평생을 기독교에 헌신하신 어머니가 갑자기 변모한 나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놀라실까?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대문을 밀치고 들어가는 순간, 엄마가 화단에서 꽃을 가꾸고 계셨는데, 순간 뒤돌아보시는 엄마의 낯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예기치 않은 그 순간에도 단지 아들이 돌아왔다는 반가움에 활짝 웃음 지으셨던 것이다. 내가 무슨 옷을 입었든지 간에, 그것은 인지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단지 막내아들 용옥이였을 뿐이다. 옷이 아닌 인간을 바라보셨다. 엄마는 내가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교회에 나가지 않았을 때에도 단 한 번도 그에 관해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용옥이가 자각이 들어 그리하는 것이니 그대로 두어라!”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날 교회에 나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잃어버린 양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의 회초리와 더불어 신약성경』 『천자문』 『격몽요결을 암송했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말씀하셨다: “용옥아! 너는 너보다 더 부귀한 인간들로부터 상찬을 들으려 하지 마라. 항상 너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라. 영원히 이 땅의 젊은이들을 교육해야 한다.” 엄마는 영원히 이 민족의 미래만을 걱정하는 인간이었다. 과거의 사감에 사로잡힘이 없으셨다. 나는 생각한다. 학교는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엄마의 품이 되어야 한다고.

 

 

호학의 달인 김용옥 선생. 

 

 

 

우리 민족 교육의 이상은 과거제도 이전의 풍류

 

교육에 관한 한 우리 민족은 지구상의 어느 민족에도 뒤짐이 없는 완미한 전통을 지녀왔다. 교육에 관하여 외국의 모델을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전사를 길러내기 위하여 전체주의적 폭력을 조장한 플라톤의 교육론으로부터 출발한 서양의 교육사는 아직도 전체주의와 개인주의의 극심한 대립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교육 전통은, 물론 조선의 과거제도와 그와 구조적으로 결탁된 일본제국주의 식민지교육 그리고 군사독재정권의 국가주의에 의하여 왜곡되기는 했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함장하고 있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세계문명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교육은 고운 최치원(崔致遠, 857~908년 이후 사망)이 말한 화랑교육의 실상, 유ㆍ불ㆍ도의 다양한 이념을 배타 없이 수용하는 풍류(風流)’라는 현묘지도(玄妙之道)’로 복귀하는 영원한 테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람신성(神聖, divinity)’을 의미하며 흐름[]’은 실체적 정체성을 거부하는 역동적 균형이다. 인간의 현묘한 신성(神性)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역동적 조화를 지향하는 몸의 흐름을 말한다.

 

 

교육열이 입시열로 귀결되는 건 문제가 된다. 그게 모든 교육을 다 잡아 먹으니 말이다.  

 

 

 

녹두장군과 단원고 학생들

 

어두운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 녹두장군 전봉준은 이와 같이 외쳤다: “나를 죽일진대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고가는 사람에게 내 피를 뿌려주는 것이 가할진대 어찌 컴컴한 적굴 속에서 암연(暗然)히 죽이는가!” 컴컴한 바닷 속으로 스러져간 단원고의 학생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외치고 있다: “우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나 도올은 마지막 한마디만 교육 담당자들에게 간곡히 말하고 싶다: “혁신은 창조적 전진(creative advance)이다. 해체(deformation, deconstruction)가 아닌 형성(formation, construction)이다.”

 

 

 

세월호는 2016년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묻는 바로미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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