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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사, 서설(序說) - 2. 자료의 선택 문제: 풍요(風謠)와 위항시인(委巷詩人)의 의지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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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사, 서설(序說) - 2. 자료의 선택 문제: 풍요(風謠)와 위항시인(委巷詩人)의 의지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1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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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풍요(昭代風謠)162()의 시편(詩篇)을 시체(詩體)에 따라 선집(選集)하여 영조(英祖) 13년 정사(丁巳, 1737)에 간행되었으며, 원집(原集) 9()과 습유(拾遺)ㆍ별집(別集)ㆍ별집보유(別集補遺) 등을 합쳐 2()으로 편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뒷날 풍요삼선(風謠三選)을 편찬할 때(哲宗 8, 1857) 소대풍요(昭代風謠)가 산망(散亡)될 것을 우려하여 그 이듬해(戊午)에 운각자(芸閣字)로 다시 인출(印出)한 중인본(重印本)이 널리 유행(流行)하고 있다. 편자는 고시언(高時彦, 1671~1734)으로 알려져 왔으나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확실한 증거가 제시된 일은 없다. 오광운(吳光運, 1698~1745)의 서문과 발문에 따르면 채팽윤(蔡彭胤)이 부집(裒集)한 것을 이달봉(李達峰)이 산정(刪正)하고 오광운(吳光運) 자신이 보산(補刪)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로부터 120년 뒤에 간행된 풍요삼선(風謠三選)의 발문(跋文)에는 고시언(高時彦)을 편자로 단정(斷定)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고시언(高時彦)의 제사(題辭)소대풍요(昭代風謠)권수(卷首)에 있는 것으로 보아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편자로 알려진 이 두 사람은 모두 책이 간행되기 전에 죽었다. 이 사실은 고시언(高時彦)의 작품(作品)이 이미 별집(別集)에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으며 오광운(吳光運)의 발문(跋文)그 일을 주관하던 사람이 또한 모은 후에 죽었다[主其役者又裒後死].”라는 기록으로도 확인된다. 이러한 일련(一聯)의 사실을 종합해 보면, 이 책은 그 선집(選輯)에서부터 간행에 이르는 동안 오랜 기간이 소요되어 결과적으로 여러 사람의 공동참여로 이루어지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정집(正集) 9() 외에 습유(拾遺)ㆍ별집(別集)ㆍ별집보유(別集補遺) 등을 추보(追補)하여 정집(正集)과 함께 간행한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 주는 단적인 증좌(證左)가 될 것이며 권수(卷首)에 제사(題辭)를 붙인 고시언(高時彦)의 작품(作品)이 별집(別集)에 수록되고 있는 현상은 이 책의 간행 경위를 사실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보면, 소대풍요(昭代風謠)를 선집(選輯)한 것은 채팽윤(蔡彭胤)이며 고시언(高時彦)이 간행에 참여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오광운(吳光運)의 협조로 마무리를 한 것 같다.

 

이 책에 수록된 시인(詩人)들은 중서인(中庶人)을 비롯하여 상인(商人)ㆍ천예(賤隸) 출신(出身)까지도 망라되고 있지만, 그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의역중인(醫譯中人)과 서리(胥吏)이며 이 가운데서도 특히 의역중인(醫譯中人)하대부와 같은 등급의 사람[下大夫一等之人]’으로 지칭(指稱)될 정도로 그 역할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이들은 대부분이 서울의 중인층으로서 그들이 담당하는 업무의 성격상 도시적인 지식인으로 또는 문인(文人)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때로는 사대부의 지우(知遇)를 입어 이들과 망년지교(忘年之交)를 맺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제(國制)의 금고(禁錮)로 환로(宦路)의 진출이 제한되어 있던 이들은 양반 사대부의 유액(誘掖)과 추만(推輓)에 힘입지 않고서는 그들의 성취가 용이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의 간행에 있어서도 사대부의 협조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정에 대해서는 고시언(高時彦) 자신이 비장(悲壯)하게 칠언으로 읊고 있다. 그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與東文選相表裏 동문선(東文選)과 더불어 서로 표리가 되니
一代風雅彬可賞 일대(一代)의 풍아(風雅) 빛나서 볼 만하도다.
貴賤分岐是人爲 귀천(貴賤)을 나눈 것은 인간이 한 짓이지만
天假善鳴同一響 하늘이 준 좋은 노래는 같은 소리로다. (昭代風謠)卷首, 題辭

 

이 책의 성격은 동문선(東文選)과 더불어 표리가 되는 관계에 있음을 천명하고 있으며, 인위적인 신분에는 귀천(貴賤)의 차이가 있지만 하늘이 준 노래는 같은 소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위항시인은 문학 양식에 있어서도 그들 나름의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사대부층의 시문(詩文)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이 책에 수록된 시편(詩篇)의 대부분이 금체시(今體詩)로 채워져 있는 것도 시대의 풍상(風尙)을 그대로 추수(追隨)한 것이며 그들의 능력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배율(排律)과 같은 장편(長篇)유희경(劉希慶)최기남(崔奇男)홍세태(洪世泰) 등 명가(名家)의 작품에서 찾아 볼 수 있을 뿐이며, 고체(古體)에 있어서도 전기(前記) 육가잡영(六家雜詠)의 여섯 사람 시()가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작가 의식에 있어서도 현실 문제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대개 회고적(懷古的)인 감상(感傷)으로 흐르고 있어 스스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인용

목차

서사한시

한시미학

16~17세기 한시사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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