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를 외치다 대나무가 된 사내를 위한 헌사
죽오기(竹塢記)
박지원(朴趾源)
진부해진 대나무에 대한 글들
古來讚竹者甚多. 自『詩』之「淇澳」, 歌咏之嗟嘆之不足, 至有‘君’而尊之者, 竹遂以病矣. 然而天下之以竹爲號者不止, 又從以文而記之. 則雖使蔡倫削牘, 蒙恬束毫, 不離乎風霜不變之操, 䟽簡偃仰之態. 頭白汗靑, 盡屬飣餖, 竹於是乎餒矣. 顧以余之不文, 讚竹之德性, 以形容竹之聲色, 作爲詩文者多矣, 更何能文爲.
‘대나문 언덕’이란 호를 짓고서 기문을 부탁하다
梁君養直, 介直有志節者也. 甞自號曰‘竹塢’, 而扁其所居之室, 請余爲記. 而果未有以應之者, 吾於竹, 誠有所病焉故耳.
뭘 지어도 너무 뻔해질 대나무에 대한 글, 죽어도 못 짓네
余笑曰: “君改其額, 文當立就爾.” 爲誦古今人奇號韻題之如烟湘閣ㆍ百尺梧桐閣ㆍ杏花春雨林亭ㆍ小罨畫溪ㆍ晝永簾垂齋ㆍ雨今雲古樓者, 屢數十百, 勸其自擇焉. 養直皆掉頭而“否否” 坐臥焉竹塢, 造次焉竹塢. 每一遇能書者, 輒書竹塢而揭之壁, 壁之四隅, 盡是竹塢. 鄕里之以“竹塢”譏者亦多, 恬不知恥, 安而受之.
대나무를 외치다 대나무가 된 사내
所以請余文者, 今已十年之久, 而猶不少變. 千挫百抑, 不移其志, 彌久而罙切. 至酹酒而說之, 聲氣而加之, 余輒默而不應, 則奮然作色, 戟手疾視, 眉拂个字, 指若枯節, 勁峭槎枒, 忽成竹形.
대나무가 된 사내에게 바치는 헌사
嗚呼! 養直豈眞癖於竹, 而愛之至哉. 觀於外可見其肝腎肺胃, 磐矹犖确, 如奇巖巉石, 而叢篠幽篁, 森鬱其中也. 余之文至此而惡能已乎. 古之人旣有尊竹而‘君’之者, 則如養直者, 百世之下, 可爲此君之忠臣矣. 吾乃大書特書而旌之曰: “高孤貞靖, 梁處士之廬.” 『燕巖集』 卷之十
해석
진부해진 대나무에 대한 글들
古來讚竹者甚多.
예로부터 대나무를 기린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시경』 「기욱」의 시로부터 노래하고 읊조리며 감탄하는 것으로도 부족하여
至有‘君’而尊之者, 竹遂以病矣.
‘차군(此君)’【차군(此君)은 진(晉) 나라 때 왕휘지(王徽之)가 일찍이 빈집에 우거하면서 대나무를 심게 하므로, 혹자가 그 까닭을 묻자, 왕휘지가 읊조리면서 대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어찌 하루라도 차군이 없어서야 되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耶].”라고 했다는 데서, 전하여 대나무의 별칭으로 쓰임】이라고까지 하면서 대나무를 높였으니, 대나무는 마침내 신물나게 되었다.
然而天下之以竹爲號者不止,
그럼에도 천하엔 대나무를 호(號)로 삼는 사람들이 그치지 않았고
又從以文而記之.
또한 따라서 문장을 지어 그것을 기록했다.
則雖使蔡倫削牘,
그러니 비록 종이를 만든 채륜으로 하여금 종이를 더 잘라 생산하게 하고
蒙恬束毫,
붓을 개발한 몽염으로 하여금 붓을 묶어 더 생산하게 하더라도
不離乎風霜不變之操,
바람과 서리에도 변하지 않는 지조라느니,
䟽簡偃仰之態.
탈세(脫世)의 기상으로 안거(安居)【언앙(偃仰): 안거(安居)한다는 뜻임】하는 자태라느니 하는 것을 벗어나진 않으리라.
頭白汗靑, 盡屬飣餖,
머리가 희어지도록 글을 쓴 것들【한청(汗靑): 푸른 대나무의 진액을 빼낸다는 말로, 한간(汗簡) 또는 살청(殺靑)이라고도 하는데, 한(漢) 유향(劉向)의 『별록(別錄)』에 “살청이란 대나무를 곧게 다듬어 대쪽을 만들어서 글씨를 쓰게 하는 것이다. 햇대나무에는 진액이 있어 잘 썩고 좀이 잘 들므로 대쪽을 만들 경우 모두 불 위에 쬐어 말린다.”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후대에는 사책(史冊) 또는 그 저술의 완성을 의미하게 되었다】이 모두 진부한 말【정두(飣餖): 두정(餖飣)이라고도 함. 『옥매(玉梅)』에 “당(唐) 소부감(少府監)에서 어찬(御饌)에는 구반장류(九盤裝纍)를 쓰는데 이름을 구정식(九飣食)이라 하였다. 그래서 지금 시속의 연회에는 점과(黏果)를 자리에 진열해놓고 이를 간석정좌(看席飣坐)라 한다. 옛날에는 정좌(飣坐)라는 칭호가 있는데 앉아서 보기만 하고 먹지는 않음을 이름이다.” 하였다. 한유(韓愈)의 남산시(南山詩)에 “或如臨食案 看核紛飣餖”라 하였으므로 세상에서는 문사(文詞)의 퇴체(堆砌)를 일러 정두라 한다】이 되었으니,
竹於是乎餒矣.
대나무는 이로부터 말라 지겨워졌다.
顧以余之不文, 讚竹之德性,
돌아보건대 나의 문장을 잘 짓지 못함에도 대나무의 덕성을 기리고
以形容竹之聲色, 作爲詩文者多矣,
대나무의 성색(聲色)을 형용하는 시문을 지은 게 많았으니,
更何能文爲.
다시 어찌 글을 지으랴.
‘대나문 언덕’이란 호를 짓고서 기문을 부탁하다
梁君養直, 介直有志節者也.
양직 양호맹(梁浩孟)은 절개가 곧고 기지와 절도가 있는 사람이다.
甞自號曰‘竹塢’,
일찍이 자호(自號)하여 ‘죽오(竹塢)’라 했고
而扁其所居之室, 請余爲記.
그가 거처하던 방에 편액(扁額)하여 걸면서 나에게 기문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而果未有以應之者,
그러나 과연 그것에 응할 수 없었던 것은
吾於竹, 誠有所病焉故耳.
나는 대나무에 참으로 괴로워하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뭘 지어도 너무 뻔해질 대나무에 대한 글, 죽어도 못 짓네
余笑曰: “君改其額, 文當立就爾.”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편액을 바꾼다면 기문은 마땅히 곧 성취될 것이네.”
爲誦古今人奇號韻題之如烟湘閣ㆍ
그러고선 고금의 사람들의 기이한 호나 운치 있는 제목들, 예를 들면 연상각ㆍ
百尺梧桐閣ㆍ杏花春雨林亭ㆍ小罨畫溪ㆍ晝永簾垂齋ㆍ雨今雲古樓者,
백척오동각ㆍ행화춘우림정ㆍ 소암화계ㆍ주영염수재ㆍ우금운고루와 같은
屢數十百, 勸其自擇焉.
수십 수백 개를 외워주며 스스로 선택하길 권했다.
養直皆掉頭而“否否”
그런데도 양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네. 아니네.”라고만 말하며,
坐臥焉竹塢, 造次焉竹塢.
앉으나 서나 “죽오!”, 잠깐 사이에도 “죽오!”라 했다.
每一遇能書者,
매번 한 번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만나면
輒書竹塢而揭之壁,
갑자기 ‘죽오’를 써 달라하고선 벽에 걸어두니,
壁之四隅, 盡是竹塢.
벽의 사면(四面)이 모두 다 ‘죽오’라는 글씨였다.
鄕里之以“竹塢”譏者亦多,
이런 상황이다 보니 마을에서 “죽오”라고 놀려대는 사람들이 또한 많아졌는데,
恬不知恥, 安而受之.
양직은 담담히 부끄러워하지 않고 편안히 받아들였다.
대나무를 외치다 대나무가 된 사내
所以請余文者,
나에게 기문을 지어 달라고 청한 지
今已十年之久, 而猶不少變.
이미 10년이나 흘렀는데도 오히려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千挫百抑, 不移其志,
천 번 꺾이고 백 번 억눌렸지만 그 뜻을 바꾸지 않아
彌久而罙切.
더욱 오랠수록 더욱 간절해졌다.
至酹酒而說之, 聲氣而加之,
그래서 술을 부어주며 지어달라고 설득하기도 하고, 소리와 기색을 더하기도 했지만
余輒默而不應, 則奮然作色, 戟手疾視,
내가 잠깐 침묵하며 응하려하지 않으니 울그락붉으락 노기를 띠면서 손으로 삿대질하며 노려보니,
眉拂个字, 指若枯節,
눈썹(미간)이 ‘个’자로 떨리고 손가락은 마른 대나무 마디 같았으며
勁峭槎枒, 忽成竹形.
굳세고 가파르며 강인한 것이 문득 대나무 형상이 이루어졌다.
대나무가 된 사내에게 바치는 헌사
嗚呼! 養直豈眞癖於竹, 而愛之至哉.
아! 양직은 참으로 대나무에 벽(癖)이 있어 대나무 사랑하길 지극히 하였구나.
觀於外可見其肝腎肺胃, 磐矹犖确, 如奇巖巉石,
외부로 살펴봄에 간과 신장과 폐와 위를 볼 만한 것이 굳세고 우뚝하여 기암괴석과 같지만,
而叢篠幽篁, 森鬱其中也.
떨기 조리대와 그윽한 대나무가 그 속엔 울창했던 것이다.
余之文至此而惡能已乎.
그러니 나의 기문을 여기에 이르러 어찌 그만둘 수 있으랴.
古之人旣有尊竹而‘君’之者,
옛 사람이 이미 대나무를 높였고 대나무를 차군(此君)이라 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則如養直者, 百世之下,
양직과 같은 사람이라면 백대 이후로
可爲此君之忠臣矣.
차군(此君)의 충신이 되었다고 할 만하리라.
吾乃大書特書而旌之曰:
나는 곧 대서특필하여 정려했다.
“高孤貞靖, 梁處士之廬.” 『燕巖集』 卷之十
“고고(高孤)하고도 곧으며 온화로운 양 처사의 오두막.”
인용
4. 대나무를 닮아 간 사내
6. 총평
'산문놀이터 > 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지원 - 증백영숙입기린협서(贈白永叔入麒麟峽序) (0) | 2021.11.13 |
---|---|
박지원 - 증계우서(贈季雨序) (0) | 2021.11.13 |
박지원 - 주영염수재기(晝永簾垂齋記) (0) | 2021.11.13 |
박지원 - 종북소선 자서(鍾北小選 自序) (0) | 2021.11.13 |
박지원 - 자소집서(自笑集序) (0) | 2021.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