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수치심과 분만감으로 쓴 『사기』
『사기』라는 저술의 심연에는 어찌해서 수치심과 분만감이 깃들여 있는 것일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선 사마천의 생애를 간단하게라도 살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사마천 시대의 군주인 무제武帝는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전제군주였다.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정복 전쟁을 벌였다. 베트남을 침공하고 한반도를 침략했다. 그리고 흉노와 줄창 싸웠다. 당시 이릉李陵이라는 20대의 용맹한 장수가 있었다. 그는 흉노와 싸워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전투에서 불행히 흉노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으나 부하들이 전멸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제는 이릉이 자결하지 않고 포로가 되었다고 해서 그의 구족九族을 멸해 버렸다.
사마천은 당시 궁정의 역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으로부터 이 직책을 물려받았다. 사마천은 이릉과 아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무제의 이런 조처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여 무제에게 자신의 생각을 아뢰었다.
무제는 격분했고 사마천은 그날로 투옥되어 궁형에 처해졌다. 궁형이란 거세去勢, 즉 남자의 생식기를 제거하는 잔인한 형벌이다. 하지만 정해진 보석금을 내면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는 길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사마천은 평소 알던 친구들에게 좀 도와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사마천은 이때 세상에 대한 통절한 경험을 했고, 이 경험은 『사기』의 글쓰기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투사되어 있다.
『사기』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남을 돕는 협객적 인간을 더없이 훌륭한 인간으로 찬미하고 있음도 이와 관련된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는 건 남자로서 너무나 수치스런 일이니 처음엔 자결을 하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밤을 꼬박 세우며 고민한 결과 아버지가 쓰다 만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는 결국 궁형을 받았고, 석방되어 『사기』를 완성하였다.
바로 이런 개인적 배경 때문에 『사기』의 가장 깊숙한 밑바닥에는 수치심과 분만감이 깃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마천 글쓰기의 원점을 이룬다고 할 이런 마음을 나비 잡다 놓친 아이의 마음에 비유하고 있는 연암의 발상은 기발하고도 날렵하다. 연암이 지닌 비범한 감수성의 일단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요컨대 연암은 이 단락에서, 『사기』를 읽을 때 그 글 속에 알게 모르게, 혹은 미묘하고 은밀하게, 투사되어 있는 사마천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 그리하여 그런 마음과 교감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사기』 독서의 가장 높은 경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전문
인용
3.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의 마음과 나비를 놓친 아이의 마음
6.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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