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높은 수준의 글을 쓰도록 만드는 결락감
연암은 10대 때부터 『사기』에 매료되었다. 연암 문장의 드높은 기세는 『사기』가 보여주는 기운찬 문장과 상통하는 점이 많다. 연암과 사마천은 그 문장만 상통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의 심리적 기저에 있어서도 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앞서 말했듯 사마천 글쓰기의 기저부에는 자욱한 분만감이 깔려 있는데, 연암 글쓰기의 밑바닥에도 이 비슷한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연암은 자신의 글쓰기를 ‘유희遊戲’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는 분만감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뜻을 얻지 못한 채 소외되어 있던 연암으로서는 울분을 품을 수밖에 없었으며 이런 감정으로 인해 그의 글은 더욱 파격적이고 불온하게 되어 갔다. 사마천과 연암은 둘 다 ‘결락감缺落感’을 지녔다는 점에서 또 다른 공통점을 갖는다.
‘결락감’이란 무엇을 말함인가?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 뭔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 뭔가 박탈되어 있다는 느낌, 뭔가가 없다는 느낌, 이런 걸 결락감이라 한다. 작가는 결락감이 있을 때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다. 안락하고 편안하기만 해서는 진정한, 그리고 높은 수준의 글이 나오기 어렵다. 이점에서 결락감의 반대편에 있는 감정은 ‘포만감’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궁형을 당한 사마천은 어떤 의미에서 지독한 결락감을 안고 글을 썼을 터이다. 사마천이 『사기』를 쓴 것을 두고 전통적으로는 ‘발분저서發憤著書’라고 이른다. ‘발분저서’란 ‘분발하여 저술한다’는 뜻이다. 사마천은 왜 분발하여 저술에 힘썼을까? 결락감 때문이었다. 이처럼 ‘발분저서’는 기본적으로 결락감에서 비롯된다. 등 따시고 배부르고 모든 걸 소유한 사람이 왜 발분저서를 하겠는가. 다산 정약용이 18년간의 유배 생활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저술에 힘을 쏟은 것 역시 발분저서의 예에 해당한다. 연암은 다산처럼 유배를 당하지는 않았으며, 다산처럼 절체절명의 처절한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의 글쓰기가 심한 결락감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는 서로 비슷한 점이 없지 않다.
사마천, 연암, 다산 이 세 사람은 인간 기지로가 전공 분야와 관심이 제각각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발분저서를 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연암이 사회적 주변인들, 사회적 비주류에 속한 인간들과 유유상종하면서 그들에게 관심과 따뜻한 눈길을 보내거나 동병상련의 감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기실 따져보면 연암이 지닌 이 심한 결락감과 관련이 없지 않다.
이러했으므로 연암은 사마천의 마음을 잘 알아볼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 글 1단락에서 사마천의 글에 대한 경지의 논평을 한 마디로 가소롭다고 치부하고 있음도 이 때문일 것이다.
사족이지만 한마디 덧붙인다. 이 단락의 나비 잡는 아이의 비유를 시니피앙(記標)과 시니피에(記義)의 관계로 설명하거나 데리다Derrida의 차연差延(디페랑스defferance) 개념을 빌려 와 ‘대상을 글로 포착했다 싶으면 대상은 그 순간 벌써 미끄러져 나가 버린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야단스럽게 해석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이는 망발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아는 게 곧 병이다)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한문 문리도 부족하고, 문맥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으며, 생각도 짧고,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이를 메우기 위해 함부로 외국의 권위에 기대고 있으나,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는 형국이라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이러니 우리 학문이 여전히 식민성을 못 벗었다는 게 아닌가.
이 단락의 내용과는 별 관계가 없는 이야기지만, 만일 연암의 언어관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외국의 권위를 끌어올 양이면 데리다가 아니라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활동한 독일의 언어철학자 훔볼트Humboldt(1767~1835)를 거론하는 게 나을 것이다. 언어와 사물 간의 내적 긴장, 그 합치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둘 사이에는 서로 통하는 점이 없지 않으니까.
연암의 각종 글에 대한 해석에는 이런 망발이 비일비재하니 이런 걸 갖고 열을 낼 일은 아니지만 해도 해도 너무 심한 것 같아 한마디 해둔다.
▲ 전문
인용
3.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의 마음과 나비를 놓친 아이의 마음
6. 총평
'책 > 한문(漢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희병 - 연암을 읽는다 목차 (0) | 2020.04.18 |
---|---|
경지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 - 6. 총평 (0) | 2020.04.18 |
경지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 - 4. 수치심과 분만감으로 쓴 『사기』 (0) | 2020.04.18 |
경지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 - 3. 『사기』를 쓸 때 사마천의 마음과 나비를 놓친 아이의 마음 (0) | 2020.04.18 |
경지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 - 2. 작가는 고심 때문에 글을 쓸 수밖에 없다 (0) | 2020.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