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곳
어제 당신께서는 정자 위에서 난간을 배회하셨고, 저 역시 다리 곁에 말을 세우고는 차마 떠나지 못했으니, 서로간의 거리가 아마 한 마장쯤 됐을 거외다. 모르긴 해도 우리가 서로 바라본 곳은 당신과 제가 있던 그 사이 어디쯤이 아닐까 하외다. 昨日足下, 猶於亭上, 循欄徘徊, 僕亦立馬橋頭, 其間相去已爲里許. 不知兩相望處, 還是那際. |
당시 연암은 경지와 유별留別했던 듯하다. 떠나는 사람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을 ‘유별’이라 하고, 남아 있는 사람이 떠나는 사람을 전송하는 것을 ‘송별’이라 한다. 연암이 떠나왔으니, 연암은 유별한 게 되고, 경지는 송별한 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작별이 퍽 아쉬웠던 모양이다. 경지는 말을 타고 떠나가는 연암을 정자 위 난간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연암은 연암대로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아 가다가 잠시 다리 위에 말을 세우고는 서성거리고 있다. 연암은 떠나가는 자신을 경지가 정자 위에서 줄창 응시하고 있음을 몸으로 느껴 알고 있으며, 경지 역시 천천히 말을 몰아가고 있는 연암의 뒷모습에서 연암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를 느끼고 있다. 이 단락의 첫 문장은 그 점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단락의 두 번째 문장이자 마지막 문장인 “모르긴 해도 우리가 서로 바라본 곳은 당신과 제가 있던 그 사이 어디쯤이 아닐까 하외다(不知兩相望處, 還是那際)”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 말을 타고 가던 등 뒤로 경지의 시선을 계속 느끼던 연암은 사오백 미터쯤 가서 다리 곁에다 말을 세우고는 고개를 돌려 정자 위의 경지를 쳐다보았을 테고, 경지도 눈을 떼지 않고 떠나가는 연암을 계속 보고 있던 터이니 두 사람의 시선은 급기야 사로 마주치게 되었을 것이다.
바라보는 두 시선은 어디서 만났겠는가? 연암에게서 만났겠는가, 경지에게서 만났겠는가? 이도 저도 아니며, 두 사람이 있는 곳 사이의 어느 지점일 터이다. 두 시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융합되어 말할 수 없이 애틋한 정을 만들어냈을 터이다. 연암이 말하고자 한 바는 바로 이 점이다.
그런데, 이 문장 속의 ‘사이’라는 말은 2단락에 나온 ‘사이’라는 말과 똑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2단락에서 제시된 선문답은 이 단락의 진술을 이끌어내기 위한 복선과도 같은 것이다.
이 글은 1단락과 2단락은 이 마지막 단락에 와서 하나로 합쳐진다. 앞에서 말한 대로 글 끝에 와서 비로소 하나로 쫙 꿰지고 있는 셈이다.
▲ 전문
인용
1. 경지란 누구인가?
5.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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