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숙
숙경(宿耕)
보리는 늦가을에 심어서 이듬해 익기 때문에 보리를 ‘숙맥(宿麥)’이라 하기에, 숙맥(宿麥)을 심으러 밭을 가는 것을 말한다. / 인용: 嶺南歎(윤현)
숙계(叔季)
말세(末世)라는 뜻이다. 숙(叔)과 계(季)는 끝(末)이라는 뜻이므로 쇠란(衰亂)한 세상을 숙세(叔世)라 하고, 망하게 된 세상을 계세(季世)라 한다.
숙계(夙契)
전세(前世)의 약속이란 뜻이다.
숙근(宿根)
다년생의 묵은 뿌리.
숙녹비대전(熟鹿皮大典)
푹 익은 사슴 가죽에 써 놓은 법전이란 말로, 법을 집행하는 관리들이 자신들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적용할 수 있는 애매 모호한 법이라는 뜻이다.
숙단(叔旦)
주(周) 나라 성왕(成王)의 숙부(叔父)인 주공 단(周公旦)을 말한다. 『예기(禮記)』 「악기(樂記)」
숙도(叔度)
동한(東漢) 염범(廉范)의 자(字)이다. 그가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나가서, 금화(禁火)와 야간 통행 금지 등 옛 법규를 개혁하여 주민 편의 위주의 정사를 펼쳐 나가자, 백성들이 “우리 염숙도여 어찌 늦게 오셨는가. 불을 금하지 않으시어 백성 편케 되었나니, 속옷 한 번 못 입다가 지금은 바지가 다섯 벌[廉叔度 來何暮 不禁火 民安作 平生無襦今五袴]”이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 「염범전(廉范傳)」
숙류적상(宿瘤摘桑)
숙류녀(宿瘤女; 혹이 달린 여자)가 뽕을 따다가 제왕(齊王)을 만나 착한 말을 하였으므로, 제왕이 기특히 여겨 왕후(王后)로 삼았다.
숙망(宿莽)
겨울에도 그 뿌리가 죽지 않아 봄에 거기서 새로운 싹이 움튼다는 향초. 주자집주(朱子集註)에, “草 冬生不死者 楚人 名曰宿莽”라 했다.
숙맥(宿麥)
가을에 파종해서 이듬해에 수확하는 보리를 말한다.
숙맥불변(菽麥不辨)
콩(菽)과 보리(麥)를 구분하지 못한다. 사리 분별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킨다.
숙무(宿莽)
겨울에 나서 얼어 죽지 않는 풀을 초(楚) 나라 지방에서는 숙무라 한다 한다.
숙민(肅愍)
우겸(于謙)의 고치기 전 시호(諡號)이다. 우겸은 영종이 포로로 잡혀 있을 때에 경제(景帝)를 세우고서 먀선(乜先)에게 대항하였으며, 영종이 귀국하여서는 먀선과의 화의(和議)를 성사시켰는데, 영종이 복위한 뒤에 서유정(徐有貞)의 참소를 당하여 살해되었다. 홍치(弘治) 연간에 숙민(肅愍)으로 추시(追諡)하였으며, 만력(萬曆) 연간에 충숙(忠肅)으로 개시(改諡)하였다. 『명사(明史)』 卷一百七十 「우겸열전(于謙列傳)」
숙복(宿福)
불가 용어. ‘전세에 이룬 복과 선의 뿌리’를 말한다..
숙봉관어청환(孰封關於請丸)
『후한서(後漢書)』 「외효전(隗囂傳)」에 “원수(元遂)가 외효에게 유세하기를 ‘제가 흙덩어리 하나를 가지고 대왕을 위해 동쪽의 함곡관(函谷關)을 지키겠습니다.’ 하였다.” 하였다.
숙부기혁(孰腐其嚇)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완추(鵷雛)라는 새는 죽실(竹實)이 아니면 먹지를 아니하는 것인데, 올빼미가 썩은 쥐를 먹으려다 완추가 날아 지나가는 것을 보자 썩은 쥐를 빼앗을까봐 노하여 공갈하는 소리를 지른다[夫鵷鶵發於南海而飛於北海, 非梧桐不止, 非練實不食, 非醴泉不飮. 於是鴟得腐鼠, 鵷鶵過之, 仰而視之曰 ‘嚇!’ 今子欲以子之梁國而嚇我耶].” 하였다.”
숙불환생(熟不還生)
익힌 것은 다시 날 것으로 되돌릴 수 없다. 준비한 음식을 다 먹고자 할 때 쓰는 말이다.
숙산(叔山)
월형(刖刑)을 당한 노(魯) 나라의 숙산무지(叔山無趾)가 공자(孔子)를 찾아오자 처음에는 거절하였다가 그의 말을 듣고는 받아들인 이야기가 전해 온다.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
숙산월(叔山刖)
노(魯) 나라의 다리 병신 숙산무지(叔山無趾)라는 사람이 공자를 찾아왔다가 공자의 책망을 듣고는 “내가 세상일에 무지한 나머지 내 몸을 함부로 쓰다가 다리 하나를 잃고 말았다[吾唯不知務而輕用吾身, 吾是以亡足].”고 한 이야기가 있다.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
숙살(肅殺)
엄혹하고 소슬한 계절, 즉 깊은 가을을 말한다. 그에 따라 초목을 말라죽게 한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 인용: 檄黃巢書(최치원)
숙석지간(宿昔之間)
하룻밤 사이에.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석(昔)’은 ‘석(夕)’과 통한다. 숙석(宿昔)은 ‘지난 날’이란 뜻으로 왕일(往日)과 같은 뜻이다. / 인용: 梨花庵老僧行(최성대)
숙손(叔孫)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 나라 숙손표(叔孫豹)를 가리킨다. 숙손표가 여러 곳으로 사신을 다닌 일이 있으므로 이에 비유해서 쓴 말이다. 『좌전(左傳)』 成公ㆍ襄公
숙수(菽水)
자로(子路)가 집안이 빈한해서 어버이에 대한 효도(孝道)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탄식을 하자, 공자가 “콩죽을 쑤어 먹고 물을 마시더라도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린다면 그것이 효이다[啜菽飮水盡其歡 斯之謂孝].”라고 위로했던 고사가 있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下
숙수락(菽水樂)
콩죽을 먹고 물을 마시는[啜菽飮水] 빈사(貧士)의 생활 가운데에서도 어버이를 즐겁게 해 드리려는 아들의 극진한 효(孝)를 받았다는 말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下
숙수환(菽水歡)
숙수는 콩과 물로서 매우 박식(薄食)이므로, 숙수의 즐거움이란 곧 가난한 중에도 부모를 잘 봉양하여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下에 “콩죽을 쑤어 먹고 물을 마시더라도 그 속에서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바로 효도이다[啜菽飮水盡其歡 斯之謂孝].”라는 공자(孔子)의 말이 실려 있다.
숙숙(淑淑)
아름다운 모양, 물이 깊은 모양, 물이 맑게 괴어 있는 모양
숙숙(宿宿)
이틀 밤을 묵음, 종종걸음으로 걷는 모양
숙식(熟食)
한식절(寒食節)의 별칭이다. 한식일에는 불을 금하게 되어 있으므로, 그 전일에 음식을 익혀 두었다가 이날 찬 음식으로 먹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숙야(叔夜)
삼국(三國) 때 위(魏) 나라 혜강(嵇康)의 자.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의 한 사람으로 속절(俗節)에 초연한 태도로 금서(琴書)와 시화(詩畵)를 즐기며 살았다. 그는 성미가 괴이하여 큰 버드나무 아래서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두들기기를 좋아하였다. 『진서(晉書)』 「혜강전(嵇康傳)」
숙야단류(叔夜鍜柳)
숙야는 동진(東晉)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의 자이다. 혜강이 평소 대장일을 좋아하여 자기 집에 있는 큰 버드나무 밑에서 여름철이면 대장일을 하였는데, 동평(東平)의 여안(呂安)이 혜강의 고상한 운치를 매우 좋아하여 늘 생각한 나머지 문득 천리 길을 와서 혜강을 만나자 혜강이 그를 친구로 삼아 잘 대우했다 한다. 『진서(晉書)』 卷四十九 「혜강전(嵇康傳)」
숙야조제서(叔夜早題書)
자신의 인생관을 일찍이 글로 써서 피력했다는 말이다. 숙야(叔夜)는 진(晉) 나라 혜강(嵇康)의 자(字)로 「양생론(養生論)」과 「군자무화론(君子無和論)」 등의 글을 남겼다.
숙예(淑艾)
수신(修身)을 잘한다는 뜻이다.
숙예관원(叔譽觀原)
조문자(趙文子)가 숙예와 함께 진(晉) 나라 경대부의 무덤이 있는 구원(九原)을 가서 보고 “죽은 사람을 만일 되살릴 수 있다면 내가 누구와 함께 가는 것이 좋겠는가?”라고 숙예에게 물은 일이 있고, 그 주에 “숙예(叔譽)는 숙향(叔向)이다.” 하였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下
숙예지종멸(叔譽知鬷蔑)
숙예는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 나라 숙향(叔向)을 가리킨다. 숙향이 정(鄭) 나라에 갔을 때, 정나라 대부(大夫)인 종멸(鬷蔑)이 얼굴이 매우 못생겼었는데, 숙향을 만나보기 위해 숙향에게 술 대접하는 심부름꾼을 따라 들어가 당(堂) 아래에 서서 한 마디 훌륭한 말을 하자, 숙향이 마침 술을 마시려다가 종멸의 말소리를 듣고는 “반드시 종멸일 것이다.” 하고, 당 아래로 내려가서 그의 손을 잡고 자리로 올라가 서로 친밀하게 얘기를 나누었던 데서 온 말이다. 『좌전(左傳)』 昭公二十八年
숙옹(肅雝)
공경스럽고 유화한 모습을 말한다. 『시경(詩經)』 소남(召南) 「하피농의(何彼穠矣)」에 “어찌 숙옹치 않으리요 가마 탄 왕희(王姬)를 보소.” 한 데서 온 말이다.
숙옹농리(肅雍穠李)
『시경(詩經)』 소남(召南) 「하피농의(何彼穠矣)」에 “어쩌면 저리도 아름다운가, 복숭아꽃 오얏꽃 같구나! 어찌 온화하지 않겠는가 왕희(王姬)의 수레로다.” 하였는데, 여기서 인용한 말이다.
숙우초분애(淑郵超氛埃)
『초사(楚辭)』 「원유(遠遊)」에 “絶氛埃而淑尤兮 終不反其故都”라 한 데서 온 말인데, 그 주에 의하면, 조상보다 더 훌륭하게 도를 행하고 선을 닦아서 속세를 떠나 신선이 되어가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숙유(菽乳)
두부(豆腐)의 별칭이다.
숙자(叔子)
진(晉)의 양호(羊). 숙자(叔子)는 그의 자(字)이다. 오(吳)를 다스리면서 선정을 베풀어 그가 죽은 후 오의 백성들이 그의 덕을 추모하여 현산(峴山)에다 비를 세웠는데, 그 비를 바라보는 자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진서(晉書)』 卷三十四
숙재(叔載)
이전(李㙉)의 자(字)이다.
숙종(肅宗)
현종(玄宗)의 아들로 천보(天寶) 14년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켜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이 함락되자 현종은 파촉으로 피난하였다. 이때 마외(馬嵬)라는 곳에 이르자, 부로(父老)들의 간청에 의하여 이곳에 머물러 있다가 뒤에 영무(靈武)에서 즉위한 다음 현종을 높여 태상황(太上皇)으로 모셨으나 간신들의 모함에 의하여 부자간에 불화(不和)가 생겼다. 『신당서(新唐書)』 「숙종황제본기(肅宗皇帝本紀)」
숙채종수별낙천(宿債終須別樂天)
낙천(樂天)은 당 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호이다. 백거이에게 번소(樊素)라는 기첩(妓妾)이 있어 노래를 매우 잘했었는데, 백거이가 늙고 병들었을 때 빚에 의하여 부득이 번소를 놓아주게 되어 서로 이별을 매우 아쉬워했던 데서 온 말이다. 『낙천집(樂天集)』 卷十八
숙초(宿草)
1년 이상 묵은 풀을 말한 것으로, 즉 묘(墓)를 쓴 지가 1년 이상이 지났음을 말한다.
숙평(叔平)
이준(李埈)의 자(字)이다.
숙피서(叔皮書)
숙피(叔皮)는 동한(東漢)의 사학가(史學家)이며 문학가(文學家)였던 반표(班彪)의 자(字)로, 『문선(文選)』 권9에 그의 대표적 문학 작품인 「북정부(北征賦)」가 실려 있다.
숙피일론(叔皮一論)
숙피(叔皮)는 한(漢) 나라 반표(班彪)의 자이며, 논문은 그가 지은 왕명론(王命論)을 가리킨다.
숙향구어주빙리(叔向拘圉疇憑理)
억울하게 죄를 받아도 누구 하나 변호해 준 사람이 없었음을 비유한 말이다. 숙향은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 나라 대부인 양설힐(肹舌肸)의 자. 양설힐이 일찍이 부사(副使)가 되어 상사(上使) 한기(韓起)와 함께 초(楚) 나라에 갔을 때, 초왕(楚王)이 진 나라와의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원한을 풀기 위해, 한기는 궁중의 수위(守衛)로 삼고 양설힐은 거세(去勢)하여 내시(內侍)로 삼으려고 여러 신하들에게 의논을 하자, 위계강(薳啓疆)이라는 신하가 왕에게, 여러 가지 사리를 들어 말하여 훌륭한 외국 사신들을 아무 잘못도 없이 그렇게 대해서는 절대로 안 되니, 예의를 깍듯이 갖추어 대접해야 한다고 역설함으로써, 끝내 그들이 초왕으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고 돌아왔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좌전(左傳)』 昭公 五年
숙헌(叔獻)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자(字)이다.
숙호돈(宿好敦)
도공(陶公)은 진(晉) 나라 도연명(陶淵明)의 「칠월야행강릉도중작(七月夜行江陵途中作)」이라는 시에 “시서야 진작부터 좋아했고 말고, 동산의 숲 둘러봐도 속된 뜻이 하나 없네[詩書敦宿好 林園無俗情].”라는 구절이 있다.
숙홀(儵忽)
① 숙(儵)과 홀(忽)은 신(神)의 이른다.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에 “남해(南海)의 신을 ‘숙’이라 하고 북해(北海)의 신을 ‘홀’이라 하며 중앙(中央)의 신을 ‘혼돈(渾沌)’이라 한다. 숙과 홀이 혼돈을 찾아갔더니 혼돈은 이들을 잘 대접하였다. 숙과 홀은 혼돈의 은혜를 갚으려고 ‘남들은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이것으로 보고 들으며 숨을 쉬고 밥을 먹는데 혼돈만은 없으니 우리들은 시험삼아 한번 구멍을 뚫어 주자’ 하고는 하루에 한 구멍씩 뚫었더니, 혼돈은 7일 만에 결국 죽고 말았다.” 하였다. 혼돈은 땅을 말한 것으로 맨 처음의 혼돈은 형체가 없었는데 구멍을 뚫어 죽고나서부터 지금과 같은 지구의 형체가 생겼다는 전설이 있다.
② 재빨리 달린다는 말이다. 홀연히. 갑자기.
숙후지음(叔后知音)
숙후(叔后)는 진(晉)의 현대부(賢大夫) 숙향(叔向)으로 이름은 힐(肹). 숙향의 아우 양설호(羊舌虎)가 난영(欒盈)에 붙어 난리를 꾸미다가 실패하자 숙향도 구속되었었는데, 집안 식구들이 걱정하자 숙향은 “우리를 구원해줄 사람은 반드시. 기대부(祁大夫)일 것이다. 그는 밖으로 천거할 적엔 원수도 버리지 않았고 안으로 천거할 적엔 친자식을 버리지 않았으니, 나만을 버리겠는가.” 하였는데, 기해(祁奚)는 퇴로해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는 급히 말을 달려 집권(執權)하고 있던 조선자(趙宣子)를 만나 숙향의 어짊을 말하여 사면하게 한 다음 숙향을 만나보지도 않고 갔으며, 숙향 역시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떠났다. 『춘추좌전(春秋左傳)』 襄公 二十一年
숙흥야매(夙興夜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잔다는 뜻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완(小宛)」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곤하여 너의 부모를 욕되게 하지 말라[夙興夜寐 無忝爾所生].” 하였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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