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수
수(銖)
옛날에 관문(關門)을 출입할 때 명주 조각을 부신(符信) 대신으로 썼다.
수가자(手可炙)
‘세력이 불꽃 같아서 손에 닿으면 손을 지질만큼 뜨겁다’는 뜻이다.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말로, 민심의 무서움을 표현한 말이다.
수간개석준상고(須看介石遵常固)
뜻을 굳게 지켜 상도(常道)를 따른다는 뜻이다. 개석은 지조가 돌과 같이 단단함을 말한다. 『주역(周易)』 「예괘(豫卦)」에 “지조가 돌보다 단단한지라 하루가 다 안 가니 정길하다[介于石 不終日 貞吉].” 하였는데, 이것은 뜻이 굳어 안일(安逸)에 빠지지 않고 하루가 안 되어 회복하기 때문에 길하다는 뜻이다.
수간모옥(數間茅屋)
‘몇 칸 안되는 초가집(띠집)’을 말한다.
수간사마(授簡司馬)
사장(謝莊)의 「설부(雪賦)」에, “양왕(梁王)이 토원(兎園)에서 놀다가 눈이 오니 사마상여(司馬相如)에게 간(簡)을 주면서 글을 지으시요.” 하였다.
수감(水鑑)
수경(水鏡)을 전용한 말로, 후한(後漢) 때 은사 방덕공(龐德公)이 양양(襄陽) 사마휘의 총명함을 칭찬하여 붙여 준 말이다.
수강성(受降城)
한 무제(漢武帝)가 장군 공손오(公孫敖)를 시켜 새외(塞外)에 항복받는 성(受降城)을 쌓았다.
수거(鱐腒)
물고기 말린 것과 새고기 말린 것을 합칭한 말이다.
수거감우(隨車甘雨)
‘고통 받는 백성에게 덕정(德政)을 널리 펴 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후한(後漢)의 백리숭(百里嵩)과 정홍(鄭弘)이 지방장관으로 나갔을 때와, 당(唐) 나라의 안진경(顔眞卿)이 감찰 어사로 나갔을 때, 모두 백성의 편에 서서 선정(善政)을 베풀었기 때문에 그들의 수레가 향하는 곳마다 가뭄이 들었던 땅에 단비가 촉촉이 내렸다는 ‘수거감우(隨車甘雨)’의 고사가 전한다.
수견(隨肩)
어깨를 따른다는 것은 곧 연장자(年長者)에 대한 예로서, 연장자와 함께 길을 갈 적에 연하자가 연장자와 나란히 서지 않고 약간 뒤로 물러서서 가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곡례(曲禮)」 상편에 “오년의 연장자에게는 어깨를 따른다[五年以長則肩隨之].”고 하였다.
수결(授玦)
결은 패옥(佩玉)인데, 곧 임금과의 작별을 의미한다. 의례(儀禮) 상복소(喪服疏)에 의하면 “세 번 간(諫)하여도 임금이 듣지 않아서 경(境)에 나가 방척(放斥)을 기다리고 있을 때, 임금으로부터 환(環)이 하사되면 돌아오고, 결(玦)이 하사되면 떠난다…….” 하였다.
수결(受玦)
결은 한쪽이 트인 옥고리. 상고 때 조정에서 쫓겨난 신하가 국경에서 추후의 명을 기다리다가 환(環)이 내려오면 되돌아가고 결이 내려오면 관계를 완전히 끊은 것으로 이해하였다. 곧 임금으로부터 축출된 것을 말한다.
수결천장(手抉天章)
소동파(蘇東坡)가 지은 한문공(韓文公) 비(碑)에, “손으로 운한을 따내어 천장을 나누었다[手扶雲漢分天章].” 하였다. 운한(雲漢)는 은하수요, 천장(天章)은 하늘의 무늬란 말이다.
수경(水鏡)
‘물은 가만히 있으면 맑아지고 거울도 닦으면 밝아진다’는 뜻이다.
수경(水經)
한(漢)나라 상흠(桑欽)이 지었다는 중국의 강줄기에 관한 책 이름으로, 본디 1백 37조(條)이던 것을 북위(北魏)의 역도원(酈道元)이 1천 2백 52조를 보충하였다.
수경급고정(脩綆汲古井)
‘많은 재능을 연마했음’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지락(至樂)」에 “작은 주머니로는 큰 것을 담을 수 없고, 짧은 두레박줄로는 깊은 샘물을 길을 수 없다[褚小者不可以懷大, 綆短者不可以汲深].”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수경신(守庚申)
사람의 몸속에 함께 있으면서 사람의 잘못을 일일이 기억해 두었다가 경신일(庚申日)마다 천제(天帝)에게 고자질한다는 귀신(屍蟲)이 있어, 이날이 되면 부부 관계는 물론이요, 언어나 면회도 금한 채 밤새도록 조용히 앉아서 재계(齋戒)를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수경신(守庚申)이라고 하였다.
수계(受戒)
불문(佛門)에 귀의하여 승려가 되는 사람이 승려로써 지켜야 할 구족계(具足戒)를 받는 일. / 인용: 道康瞽家婦詞(정약용)
수계(修禊)
① ‘계음(禊飮)’이라고도 함. 3월 3일, 3월의 첫 번째 사일(巳日)에 불상(不詳)을 제거하기 위해 물가에서 지내는 제사를 수계(修禊)라 하는데, 왕희지(王羲之)가 3월 3일에 난정(蘭亭)에서 여러 명사들과 수계한 일이 있었다. 「난정집서(蘭亭集序)」
② ‘계를 맺다’라는 뜻이다. 한자로 ‘계(稧)’ 또는 드물게는 ‘계(禊)’라고도 쓰여, 농촌주민의 필요에 따라 예로부터 자생적으로 발생하고 두레·품앗이보다 더 활발함. / 인용: 梁四龍傳(이기발)
수계산음(修禊山陰)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집서(蘭亭集序)」에 “3월 초경에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 모여서 계사(禊事)를 닦는다.” 하였다.
수고(壽考)
『시경(詩經)』 대아(大雅) 「행위(行葦)」에 “장수를 누리며 길하여 큰 복을 크게 하도다[壽考維祺 以介景福].”라고 하여, ‘장수를 누리는 것’을 말한다. / 인용: 安亭記(이행)
수곡주(羞曲肘)
당 원결(元結)의 고사로 팔뚝이 구부러져 형체가 못난 것을 부끄러워한다. 황정견(黃庭堅)의 시에 “마음은 원차산처럼 곡주가 부끄러워[心似次山羞曲肘].” 하였다.
수공(垂拱)
천자가 덕이 거룩하면 옷을 드리우고 손을 들지 않아도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는 뜻이다.
수공묵수(輸攻墨守)
수는 공수반(公輸盤)이고 묵은 묵적(墨翟). 초(楚)나라가 송(宋)나라를 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공수반은 운제(雲梯)라는 기구를 만들었는데, 묵적이 그 소식을 듣고는 달려가서 다른 재주로 송 나라의 성을 지켰다. 그리하여 공수반이 아홉 차례에 걸쳐 그 기계를 설치했지만 묵적이 그때마다 잘 지켜 내어 공수반이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묵자(墨子)』 「공수(公輸)」
수공이천하치(垂拱而天下治)
천자는 하는 바 없이도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이다. “옷을 드리우고 팔짱을 끼고도 천하가 다스려졌다[垂拱而天下治].” 『서경(書經)』 「무성(武成)」
수공장리(垂拱張理)
옛날의 성왕(聖王)은 덕이 거룩하므로 팔짱을 끼고 가만히 앉아서도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렸다.
수관(水官)
공부(工部)를 말하는데, 오행설(五行說)에 따르면, 수(水)는 오행(五行)에서 흑(黑)에 해당한다. 『진서(晉書)』 「직관지(職官志)」
수관불(水觀佛)
수관을 한 부처, 수관은 불교 용어로서, 먼저 물의 맑은 것을 관상(觀想)하고 차차 생각을 진취시켜 나가면 유리와 같은 정토(淨土)의 대지가 넓고 편편하여 높고 낮은 데가 없고, 또 그 물과 같은 투명한 광명이 몸의 안팎에 두루 비치는 모양을 관(觀)하기까지에 이름을 말한다.
수구(綉口)
글 잘하는 이의 비단 같은 입
수구군(水口君)
윤장(尹璋)ㆍ조계형(曺繼衡)ㆍ이우(李堣) 등이 중종반정(中宗反正) 때 수구(水口)로 도망쳐 달아났는데, 공신(功臣)에 참여되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이들을 수구군이라고 불렀다.
수구성(首丘誠)
근본을 잊지 않고 죽은 뒤에도 고향에 돌아가 묻힌다는 말인데, 여우가 죽을 때에는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上
수구여병(守口如甁)
입을 병마개 막듯이 봉한다. 말을 극히 삼가는 것을 이른다. 주자(朱子)의 경재잠(敬齋箴)에 “입 지키기를 병같이 하라[守口如甁]”하였다.
수구염(手灸炎)
당 중종(唐中宗)의 막내딸 안락공주(安樂公主)가 외가(外家)인 위씨(韋氏)와 결탁하여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였으므로, 당시에 “손을 델 정도로 뜨거워 행인들이 모두 겁을 내었다[熱可炙手 道路懼焉].”라는 말이 유행하였다고 한다. 『양경잡기(兩京雜記)』 참고로 두보(杜甫)의 ‘여인행(麗人行)’에 “손을 델 만큼 뜨거운 절륜한 위세,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 승상이 성내실라[炙手可熱勢絶倫 愼莫近前丞相瞋].”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2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제가 살던 굴로 둔다는 데서 유래하여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수구함삼(守口緘三)
말조심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주(周) 나라에 가서 태묘(太廟)를 구경할 적에 오른쪽 뜰에 입을 세 겹으로 봉한 금인(金人)이 있었는데, 그 금인의 등(背)에 ‘옛날에 말을 삼가던 사람이다[古之愼言人也].’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설원(說苑)』 「경신(敬愼)」, 『공자가어(孔子家語)』 「관주(觀周)」
수구호(首邱狐)
고향을 잊지 않음. 여우가 죽을 때면 제가 살던 언덕 쪽으로 머리를 돌린다고 한다. 호사수구(狐死首丘). 『회남자(淮南子)』 「설림훈(說林訓)
수국(水國)
‘물나라’라는 뜻으로 강이나 바다를 가리킨다.
수국사(酬國士)
전국(戰國) 때에 조양자(趙襄子)가 지백(智伯)을 쳐서 멸하니, 지백의 신하 예양(豫讓)이 조양자에게 원수를 갚으려 하므로 조양자가 잡아 와서 말하기를, “네가 전일에 범씨(范氏)와 중행씨(中行氏)의 신하가 되었는데, 지백이 범씨와 중행씨를 멸할 때에는 네가 그들을 위하여 지백에게 원수를 갚지 않고 도리어 지백의 신하가 되었는데, 오늘날 지백이 망한 뒤에는 왜 나에게 원수를 꼭 갚으려고 하는가.” 하니, 예양이 답하기를, “범씨와 중행씨는 나를 보통사람으로 대우하였으므로 나도 보통사람으로 갚았고,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로 대우하였으므로 나도 국사의 은혜로써 갚는다.” 하였다. 『사기(史記)』 卷86 「자객열전(刺客列傳)」,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
수궁(守宮)
① 벽호(壁虎)ㆍ석척(蜥蜴)ㆍ첨사(簷蛇) 등으로 불리는 야행성 물도마뱀의 일종이다.
② 이 도마뱀을 그릇에 담아 붉은 주사(朱砂)를 먹여 키운다. 이 놈이 다 자라면 절구에 넣고 찧어 화장품의 일종인 붉은 연지를 만든다. 수궁으로 만든 연지를 몸에 한 번 바르면 종신토록 물이 빠지지 않는데, 다만 남녀 관계를 맺으면 없어진다고 한다.
③ 한 무제 때에 단오날에 수궁을 잡아 그릇에 담아놓고 단사를 먹여 키우다가, 이듬해 단오에 절구에 넣고 찧어 붉은 연지를 만들어 궁녀들의 팔뚝에 점을 찍는다. 이 궁녀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붉은 점이 사라지고, 그렇지 않으면 붉은 사마귀처럼 남아 있기에 궁녀들을 단속하는 수단으로 삼아 ‘후궁을 지킨다’는 뜻으로 수궁(守宮)이라 이름을 붙였다[守宮砂以朱砂飼壁虎搗爛而成者, 舊謂塗於婦女臂上可驗持貞操]. 『박물지(博物志)』 「고금사물류취(古今事物類聚)」 권9 捕守宮 / 인용: 女織屦(황상)
수궁(壽宮)
신(神)에게 제사 지내는 곳을 이른다. 곧 제사를 지내는 것은 모두 장수를 누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므로, 이곳을 수궁이라 명명한 것이라 한다.
수궁(數弓)
활 쏘는 거리의 두 배 되는 거리를 말한다.
수금진평(受金陳平)
한 고조(漢高祖) 때 주발(周勃)ㆍ관영(灌嬰) 등이 고조에게, 진평(陳平)이 제장(諸將)들로부터 금을 받고서 금을 많이 낸 사람에게는 좋은 자리를 주고 금을 적게 낸 사람에게는 나쁜 자리를 주었다고 진평을 참소한데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수금탈포(獸錦奪袍)
당 나라 현종(玄宗)이 이태백(李太白)을 불러 악장(樂章)을 짓게 하고는 상으로 짐승 모양을 그린 비단 도포를 준다고 했다. 그런데 악장을 다 지은 뒤에 현종이 짐짓 장난삼아 그 비단 도포를 주지 않았다. 이에 이태백이 이를 빼앗으려고 하자 현종이 웃으면서 주었다는 말이 있다.
수급남명짐(手汲南溟斟)
차라리 은둔 생활로 자유롭게 살겠다는 것.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그 새가 가면 장차 남명(南溟)으로 갈 것인데, 남명은 천지(天池)이다.” 했듯이 그 붕새처럼 웅지를 품고 넓은 천지를 마음껏 날아보고 싶다는 뜻이다.
수기(洙沂)
수수(洙水)와 기수(沂水)를 합칭한 말로, 공자가 수수와 사수(泗水) 사이에서 출생하여 평생 동안 이곳에서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쳤고, 기수 또한 산동성 추현(鄒縣)에서 나와 수수와 합해지는 물이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수기자(守其雌)
『노자(老子)』 28장에 있는 말인데, ‘천지가 생기기 이전에 이치만 있는 것’이란 말이다.
수낭(茱囊)
수유(茱萸)를 집어넣는 주머니라는 뜻으로, 음력 9월 9일에 수유를 담은 붉은 주머니를 차고서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며 사기(邪氣)를 물리쳤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속제해기(續齊諧記)』
수다교(修多敎)
불교(佛敎)를 가리킨다. 수다는 수다라(修多羅)의 준말로 불교의 경전(經典)을 일컫는 말이다.
수단(水團)
유월 유두(流頭)에 만들어 먹는 음식. 햇보리를 삶아 녹말을 묻혀 끓는 물에 데치거나, 흰떡을 잘게 썰어서 둥글게 빚어 꿀물에 넣고 실백을 띄운다.
수달(獸闥)
한(漢) 나라 장안(長安)의 궁문(宮門) 이름인 백수달(白獸闥) 즉 백수문(白獸門)을 말한다. 원래는 백호문(白虎門)이었는데, 당 태조(唐太祖)의 성명이 이호(李虎)이기 때문에 이를 휘(諱)하여 호(虎)를 수(獸)로 고쳤다.
수담(手談)
바둑 두는 것을 말한다. 『안씨가훈(顔氏家訓)』 「잡예(雜藝)」에 “바둑 두는 것을 수담이라고도 하고 좌은(坐隱)이라고도 하는데, 꽤 고상한 취미가 있다.” 하였다.
수당(垂堂)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는 경계를 말한다. 수당은 처마 끝 바로 밑으로, 이곳은 기왓장이 떨어질 염려가 있는 곳이므로 위험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한 문제(漢文帝)가 말을 타고 험한 언덕을 치달리려 하자, 원앙(袁盎)이 “귀한 집 아들은 마루 끝에 앉지 않는 법이다[千金之子 坐不垂堂]”하면서 만류했던 원앙계수당(袁盎戒垂堂)의 고사가 있다. 『사기(史記)』 「원앙조조열전(袁盎晁錯列傳)」
수당계(垂堂誡)
수당(垂堂)은 떨어질 위험이 있는 섬돌 가까이에 앉는 것으로서, 귀한 집 자제일수록 자신의 몸을 아껴 위험한 곳에 가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한서(漢書)』 「원앙전(爰盎傳)」
수덕진군(水德眞君)
송 나라는 화덕(火德)의 운을 탔다 하는 음양설이 있으므로, 여기서 벽력화선은 송 나라를 대표하는 신령이요, 금(金) 나라가 송 나라를 빼앗았으므로 화(火)를 이기는 수덕진군은 금나라를 대표하는 신령이다.
수도(豎刀)
춘추시대(春秋時代) 제 환공(齊桓公)의 시인(寺人)으로, 환공의 총애를 받다가 환공이 죽은 뒤 역아(易牙), 개방(開方) 등과 더불어서 권력을 다투면서 제 나라를 어지럽혔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僖公十八年
수도어행(水到魚行)
물이 오면 고기가 그 물 속을 가게 된다. 무슨 일이건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자신에게 주어진 명(命)을 파악하고 본성(本性)을 발달시켜야 하는 자신의 길(道)을 꾸준히 다듬어 나가는 것 그것을 일컬어 ‘본받음(敎)’이라고 한다. 『중용(中庸)』 1장
수등(瘦藤)
등나무 지팡이를 말한다.
수락석출(水落石出)
흑막이 걷히고 진상이 드러남을 뜻하는 고사성어다.
수롱진시희왕촉(垂隴陳詩希往躅)
춘추시대(春秋時代) 정(鄭) 나라가 막강한 진(晉) 나라의 실력자 조맹(趙孟)을 맞이하였을 때, 그의 요구에 따라 정 나라 공자(公子)들이 각각 시 한 편씩을 읊고 평가를 받았던 일을 말한다. 『춘추좌전(春秋左傳)』 襄公 27年
수뢰(獸罍)
짐승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술그릇.
수루(戍樓)
변방의 군사들이 주둔한 곳의 전망대이다.
수륜마상분(隨輪磨上奔)
개미가 맷돌 위에서 다닐 때에 맷돌은 왼쪽으로 돌고 개미는 오른쪽으로 가면 맷돌은 빠르고 개미는 느리기 때문에 맷돌을 따라 왼쪽으로 돌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맷돌을 천체(天體), 개미를 일월(日月)의 운행에 비유한 것이다.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
수륜장(垂綸莊)
장자(莊子)를 말한다. 초왕(楚王)이 그를 재상으로 초빙하였는데도, 이를 거절하고 복수(濮水)에서 낚시질을 계속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장자(莊子)』 「추수(秋水)」
수릉보(壽陵步)
한단학보(邯鄲學步)의 고사로서 새로운 것을 제대로 익히지도 못한 채 기왕에 자신에게 있었던 기예마저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저 수릉 땅의 미성년자가 한단에 와서 걸음걸이를 배우려 했던 일을 말일세. 한단의 걸음도 배우지 못한 채 옛날의 걸음마까지 잃어버렸다네그려[且子獨不聞夫壽陵余子之學於邯鄲與? 未得國能, 又失其故行矣, 直匍匐而歸耳].”라고 하였다.
수마(睡魔)
‘못 견디게 오는 졸음’을 악마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 인용: 江上女子歌(이광정)
수마(數馬)
아주 근신(謹愼)한 것을 말한다. 진(晉) 나라 때 만석군(萬石君) 석분(石奮)의 아들 석경(石慶)이 태복(太僕)이 되어 육마(六馬)를 어거하고 나갔는데, 상(上)이 그에게 수레에 채운 말이 모두 몇 마리냐고 묻자, 석경이 채찍으로 말의 수를 하나하나 세어, 여섯 마리라고 대답한 데서 온 말이다. 즉 말 여섯 마리 정도는 세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토록 신중을 기했다는 것이다. 『사기(史記)』 卷一百三 「만석장숙열전(萬石張叔列傳)」
수마시(瘦馬詩)
당(唐) 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양수마(養瘦馬) 시를 이른다.
수마제(數馬蹄)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우(外儲說右)」 상(上)에 “초 장왕(楚莊王)이 궁문(宮門)의 출입을 규제하여 군신(群臣)ㆍ대부(大夫)와 여러 공자들이 입조할 때 말발굽소리가 처마밑[霤]까지 들리게 되면 정리(廷理)가 수레채[輈]를 자르고 마부를 베었다.” 했다.
수망(輸芒)
바다에 떠내려가는 벼 까끄라기를 게(蟹)가 먹어야 독이 없어진다 한다. 오(吳)의 풍속에서, 게가 음력 8월, 즉 벼가 익을 때에 미쳐 벼이삭 하나를 가져다가 그들의 괴수(魁首)에게 바친다는 것을 이르는데, 그리고 난 다음에야 게를 먹을 수 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수면앙배(睟面盎背)
덕이 있는 자의 자태를 말한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上에 “군자는 타고난 본성인 인의예지의 덕이 마음에 뿌리박혀 있어서 그 드러나는 빛이 맑고 윤택하게 얼굴에 나타나고 풍후(豐厚)한 모양이 등에 나타난다[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 其生色也 睟然見於面 盎於背].” 하였다.
수명장수(壽命長壽)
‘수명이 길어 오래도록 사는 것’을 말한다.
수모탁마(修慕琢磨)
『시경(詩經)』 위풍(衛風) 「기욱(淇澳)」과 『대학(大學)』 3장에 “문채 있는 군자는 끊고 갈며 쪼으고 가는 것 같도다. 엄밀하고 굳세며 나타나고 성대하니 문채 있는 군자는 끝내 잊을 수 없도다[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琴兮僩兮 赫兮喧兮 有匪君子 終不可諼兮]”라 하였다.
수몽(守夢)
정엽(鄭曄)의 호이다.
수묵수계(守墨守谿)
아랫자리에 처하여 남과 다투지 않는 겸손한 덕성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수묵은 수흑(守黑)과 같은 뜻인데, 『노자(老子)』 28장에, “수컷의 강함을 알면서도 암컷의 약함을 지킬 줄 알면 모든 시내가 모여드는 천하의 계곡이 되고, 분명하게 알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자신을 지키면 천하의 법도가 된다[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는 말이 나온다.
수묵쟁(輸墨爭)
서로의 재능을 시새우는 것. 수는 공수반(公輸盤)이고 묵은 묵적(墨翟). 『묵자(墨子)』 「공수(公輸)」 / 유의어: 수공묵수(輸攻墨守).
수문(修文)
소소(蘇韶)란 사람이 죽은 뒤에 현형(現形)하였는데, 그의 종제(從弟) 소절(蘇節)이 그에게 저승의 일을 물으니, 소소가 대답하기를 “안회와 복상(卜商)은 지하의 수문랑(修文郞)이 되었다.” 한 데서 온 말인데, 수문이란 곧 문장을 관장함을 말한다.
수문(脩門)
초(楚) 나라 도읍인 영(郢)의 성문 이름으로, 보통 도성(都城)의 문을 말한다.
수문거(修文去)
진(晉) 나라 소소(蘇韶)가 이미 죽은 뒤에 다시 나타나서는 형제들에게 말하기를, “안연(顔淵)과 복상(卜商)이 지금 수문랑(修文郞)이 되어 있는데, 수문랑은 모두 여덟 명으로 귀신 가운데 성자(聖者)이다.” 하였다 한다. 『태평광기(太平廣記)』 卷319
수문랑(修文郞)
문인(文人)이 죽어 지하(地下)에서 문장을 손질하는 것을 말한다. 삼십국춘추(三十國春秋)에 “중모령(中牟令) 소소(蘇韶)가 죽었는데, 그의 종제 소절(蘇節)이 낮에 소소를 만나 유명(幽冥)의 일을 묻자, 그는 ‘공자(孔子)의 제자인 안회(顔回)ㆍ복상(卜商)은 지하의 수문랑이 되었다.’ 하였다.”
수문수의시(繡紋羞倚市)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에 “가난한 자가 부유하게 되기 위해서는, 농업보다는 수공업이 낫고, 수공업보다는 상업이 나으며, 여자가 자수의 일을 하기보다는 시장 문에 기대어 웃음을 파는 것이 나을 것이다[刺繡文不如倚市門].”라는 말이 나온다.
수문지하랑(修文地下郞)
진(晉) 나라 소소(蘇韶)가 죽었다가 살아나서 말하기를,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과 복상(卜商)이 지하(地下)에서 수문랑(修文郞) 벼슬에 있더라.” 하였다.
수미(愁眉)
후한(後漢) 때 경사(京師)의 부인들이 초생달 모양으로 가늘게 그린 눈썹 모양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오행지(五行志)」 1
수미산(須彌山)
불교의 전설 속에 나오는 서역에 있다고 하는 산으로, 수미산은 수미루(須彌樓)ㆍ소미로(蘇迷盧)라고도 하는데, 4주 세계의 중앙, 금륜(金輪) 위에 우뚝 솟은 높은 산이다. 주위에 7산(山) 8해(海)가 있고 또 그 밖은 철위산이 둘러 있어 물속에 잠긴 것이 8만 유순 물 위에 드러난 것이 8만 유순이며 꼭대기는 제석천, 중턱은 4천왕이 사는 곳이라 한다. 이 산으로 들어가면 밤이 되고 나오면 낮이 된다고 한다.
수미시(首尾詩)
송 나라 소옹(邵雍)이 지은 수미음(首尾吟)이란 시를 가리키는데, 이 시는 모두 135수나 되는바, 매수(每首)마다 첫 구절과 끝 구절이 모두 “요부는 시읊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堯夫非是愛吟詩],”로 되어 있어 수미(首尾)에 동일한 구절을 쓰고 있다. 『격양집(擊壤集)』 卷二十
수미요시(愁未要時)
소이전(小二殿)의 관할 하에 있는 지명으로, 박다(博多)에서 서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수민(壽民)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로 선정을 베풀어 잘 살게 해서 백성들을 오래 살도록 함을 말한다.
수반(倕班)
요(堯) 임금 때의 공수(工倕)와 춘추시대(春秋時代)의 공수반(公輸班)으로 모두 이름난 장인(匠人)이었다.
수발(溲勃)
우수마발(牛溲馬勃)의 준말인데, 우수는 소의 오줌을 말하고, 마발은 곧 습지(濕地)나 썩은 나무 등에서 생기는 말똥버섯을 말한 것으로, 이것들은 모두 가장 사소하고 천한 약재(藥材)에 해당한 것이다.
수방영오색(隨方映五色)
인간의 불성(佛性)을 상징하는 마니주(摩尼珠)는 아무런 색이 없으면서, 모든 색이 그 속에 비치어 나타난다고 한다.
수배류(水背流)
‘물이 거꾸로 흐르다’라는 말이다.
수배부동남산영(壽杯浮動南山影)
『시경(詩經)』 에, “남산과 같이 오래 사시어, 안 넘어지고 안 무너지소서.” 하는 축수(祝壽)의 구절이 있다.
수백(水伯)
수신(水神)으로, 보통 황하(黃河)의 물 귀신을 지칭한다. 『효경위(孝經緯)』 『원신계(援神契)』
수변오국(愁邊五國)
수심이 어린 듯해 보이는 호인(胡人)의 깊숙한 눈을 말하는데, 흔히 매의 눈을 형용할 때 쓰는 표현이다. 오국(五國)은 지금의 흑룡강성(黑龍江省) 일대로, 호인들이 살던 지역이다.
수병(守甁)
말을 극히 삼가는 것을 이른다. 주자(朱子)의 「경재잠(敬齋箴)」에 “입 지키기를 병같이 하라[守口如甁]”하였다.
수복강녕(壽福康寧)
‘오래 살고 복되며 건강(健康)하고 평안하다’는 뜻으로, 모든 인간들이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수복진성야리행(繡服眞成夜裏行)
귀한 신분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암행어사의 특수한 입장을 비유한 말이다.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부귀해져서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이는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으니[如衣繡夜行] 누가 알아주기나 하겠는가.”라고 한 항우(項羽)의 말이 실려 있다.
수부(水部)
공조(工曹)의 별칭이다.
수부(水府)
① 당(唐) 나라 제도로 호조(戶曹) 또는 호부(戶部)를 가리키는 말이다.
② 용(龍)이 산다고 하는 수궁(水宮)을 이른다. 수신(水神)의 궁전으로 신선 세계를 말한다.
수부(秀夫)
서정연(徐挺然)의 자(字)이다.
수부사군(繡斧使君)
임금으로부터 특별히 수의(繡衣)와 부월(斧鉞)을 하사받고 부임하는 지방 장관이라는 말이다.
수부삽주(繡鳧鈒舟)
유사(遺事)에 “온천(溫泉) 어탕(御湯) 안에 옥련(玉蓮)이 있는데, 물은 그 옥련 밑에서 솟아 나 온다. 매번 목욕할 적에는 금수(錦綉)로 물오리와 기러기를 만들고 또 조그만 배를 조각하여 장난거리로 삼았다.” 하였다.
수부천활(樹浮天濶)
중국의 계주와 요동 지방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두시비해(杜詩批解) 권10 봉화엄중승서성만조십운(奉和嚴中丞西城晩眺十韻)의 “땅 편평해 가람은 촉에 흔들리고 하늘 넓어 나무숲 진에 떴도다[地平江動蜀 天闊樹浮秦].”에서 나온 말로서, 산천의 풍경을 멀리 바라볼 때 숲이 우거진 산이 하늘에 솟아 있는 모양이 마치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평야가 끝없이 펼쳐져 구름이 땅에 닿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수부흥(水部興)
수부는 상서 수부랑(尙書水部郞)을 지낸 남조 양(梁)의 시인 하손(何遜)을 가리킨다. 그가 양주(揚州)에 부임했을 때 관사 앞에 매화 한 그루가 있는 것을 보고는 매일 그 밑에서 시를 읊으며 노닐었는데, 낙양(洛陽)에 돌아오고 나서도 그 매화를 잊지 못해 다시 그곳으로 보내 줄 것을 간청하여 재차 부임한 뒤에 마침 활짝 핀 매화꽃 그늘 아래에서 하루 종일 소요(逍遙)하며 시를 읊었던 고사가 있다. 그런데 두보(杜甫)가 다시 이 일화를 인용하여 “동각의 관청 매화 시흥을 북돋우니, 하손이 양주에 있을 때도 아마 이와 같았으리[東閣官梅動詩興 還如何遜在揚州].”라는 시구를 내놓으면서 이 고사가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9 和裴迪登蜀州東亭送客逢早梅相憶見寄
수불석권(手不釋卷)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음. 부지런히 학문에 힘쓴다. 송나라 ‘사마 광(司馬 光)’이 어려서부터 책을 놓지 않고 독서했다 한다. / 인용: 壬戌記(황상), 題丁大夫乞畫金弘道(신광하)
수불염심(水不厭深)
‘물은 깊음을 싫어하지 않음’이란 뜻이다.
수불점추(竪拂拈搥)
불자(拂子) 즉 총채를 곧추세우고 몽둥이질을 한다는 말로, 선가(禪家)에서 사용하는 하나의 방편이다.
수사(洙泗)
노(魯)나라의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를 말한다.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공자(孔子)가 수ㆍ사(洙泗)의 사이에서 설교(設敎)하여 시서ㆍ예악을 닦자, 사방에서 제자가 더욱 많이 왔다.” 하였다. 후세에 수사를 유가(儒家)의 대칭으로 삼았다.
수사(脩蛇)
매우 길고 큰 뱀으로, 코끼리를 통채로 삼킨다고 한다.
수사관란(洙泗觀瀾)
공자(孔子)의 학문을 닦음. 중국 산동성 곡부현(曲阜縣)에 있는 사수(泗水)와 그 지류인 수수(洙水) 사이에서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수사미언철(洙泗微言輟)
수사는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로 모두 강 이름이다. 공자가 이 근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으므로 즉 공자의 문하(門下)를 지칭한 말이고, 미언(微言)은 정미하고 오묘한 말이라는 뜻으로 곧 공자의 도학을 가리킨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중니가 죽고 나서 미언이 끊어졌다[仲尼沒而微言絶].” 하였다.
수사소(數斯疏)
『논어(論語)』 「이인(里仁)」에 “친한 벗에게도 충고를 자주 하면 소원해지는 법이다[朋友數, 斯疏矣].” 한 데서 ‘數斯疏’를 따왔다.
수사화(水梭花)
물고기의 별칭이다. 중들은 주육(酒肉)을 금하기 때문에 은어(隱語)를 사용하여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수산(守山)
밀양(密陽)의 영현(領縣)이다.
수산(囚山)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과는 달리 오히려 산이 새장처럼 자신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는 뜻인데, 당(唐) 나라 유종원(柳宗元)이 영주(永州)에 귀양가서 수산부(囚山賦)를 지은 뒤로 고달픈 유배 생활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수산부(囚山賦)
문장의 이름인데, 당(唐) 나라 때 유종원(柳宗元)이 영주(永州)에 폄적(貶謫)되어 있으면서, 자신을 산에 갇힌 신세라 여겨 이 글을 지었다고 한다.
수산유자(囚山柳子)
유자는 당(唐) 나라 때의 문장가 유종원(柳宗元)을 가리킨다. 유종원이 일찍이 예부 원외랑(禮部員外郞)을 지내다가 왕숙문(王叔文)의 당(黨)에 연좌되어 영주 사마(永州司馬)로 폄출당하자 인하여 스스로 산택(山澤) 사이에 방랑했던 것을 말한다.
수산초주상헌황(首山初鑄想軒皇)
헌황(軒皇)은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를 가리킨다. 그가 수산(首山)에서 동(銅)을 채취하여 3정(三鼎)을 만들었다고 한다.
수서(首鼠)
수서양단(首鼠兩端)의 준말로, 쥐가 의심이 많아 동굴 속에서 머리를 밖으로 내놓고 형세를 관망하는 것처럼 양편 중에 어느 편을 택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는 것을 말하는데, 곧 사람이 진퇴(進退)와 거취(去就)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수서양단(首鼠兩端)
구멍에 머리만 내민 쥐가 좌우를 살피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태도를 결정하지 못하고 분위기를 보며 눈치를 살피는 일을 말한다.
수서차(水犀釵)
물소 뿔로 깎아 만든 비녀.
수석침류(漱石枕流)
‘말을 잘못해 놓고 그럴 듯하게 꾸며댐’이나 ‘자연 속에 사는 것’을 말한다. 수석(漱石)은 돌로 양치질하는 것이고, 침류(枕流)는 흐르는 물을 베는 것을 말한다. 진(晉)의 손초(孫楚)는 젊었을 때에 숨고자 하여 왕제(王濟)에게 “돌을 베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여야겠다.”는 말이 빗나가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겠다.” 하였더니, 왕제는 “어떻게 흐르는 물을 베며 돌로 양치질하겠는가?” 반문하자, 손초는 “물을 베는 것은 귀를 씻으려 하는 것이요, 돌로 양치질하는 것은 이빨을 가다듬으려는 것이다.”라고 꾸며 대답하였다. 『진서(晉書)』 卷五十六 「손초전(孫楚傳)」 / 유의어: 수석혹침류(漱石或枕流), 침류수석(枕流漱石) / 인용: 漫錄(김창흡)
수선(水仙)
수중(水中)의 선인(仙人)이란 뜻으로 춘추시대(春秋時代) 오(吳)의 오자서(伍子胥), 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의 굴원(屈原)을 말하기도 한다.
수선(手線)
수중선(手中線)의 준말로, 자모(慈母)가 지어 준 옷이라는 말이다. 당(唐) 나라 맹교(孟郊)가 지은 「유자음(遊子吟)」에 “자애로운 어머님 손에 실을 쥐시고서, 길 떠나는 아들 위해 옷을 지어 주시누나[慈母手中線 遊子身上衣].”라는 표현이 있다. 『맹동야시집(孟東野詩集)』 卷1
수선첨난인(繡線添難認)
낮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한 것을 몸으로 느끼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궁중의 여인들이 일하는 작업의 양을 가지고 낮 시간의 장단(長短)을 가늠한 데에서 온 말로, 동지 뒤에는 점점 낮이 길어지기 때문에 “바느질하는 일이 한층 더 늘어났다[添線].”고 표현한 것이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刺繡五紋添弱線 吹葭六管動飛灰”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18 小至
수성(愁城)
‘근심’을 성에 비유하여 수성(愁城)이라 한다.
수성(壽星)
남극성(南極星) 또는 노인성(老人星)이라고도 하는데, 장수하는 것을 일컫는 데 쓰인다.
수성(水城)
간성(杆城)의 옛 이름이다.
수성여장열(收聲與藏熱)
『문선(文選)』 卷45에 양웅(揚雄)의 「해조(解嘲)」가 있는데, 여기에 “타오르는 불길은 다할 때가 있고 울리는 천둥소리도 끊어질 때가 있다고 한다. 천둥과 불을 보건대, 가득 차면 하늘이 그 소리를 거두어들이고 땅은 그 열을 숨겨 두는 법이다. 고명한 집은 귀신이 반드시 그 방을 엿본다. 권력을 잡는 자는 망하지만 묵묵히 있는 자는 살아남으며, 지위가 극에 달한 자는 높은 지위가 위태롭지만 스스로를 지키는 사람은 몸이 온전하다.[炎炎者滅, 隆隆者絶. 觀雷觀火, 爲盈爲實, 天收其聲, 地藏其熱. 髙明之家, 鬼瞰其室. 攫拏者亡, 黙黙者存, 位極者髙危, 自守者身全.]”라고 하였다. / 인용: 大賈(이조원)
수세(守歲)
① 섣달 그믐날 밤, 궁중에서는 폭죽(爆竹) 소리와 만세(萬歲) 소리가 가득하고, 사서인(士庶人)의 집에서는 가족들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밤을 지새는 것을 수세(守歲)라고 한다.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
②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지 않는데, 이것을 해를 지킨다(守歲)고 한다.
수세중현필호전(繡帨重懸蓽戶前)
여자의 생일을 말한다.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남자를 낳으면 활을 문 왼쪽에 달고 여자를 낳으면 수건을 문 오른쪽에 단다.” 한 데서 나온 것이다
수쇄(收殺)
‘거두는 것’을 말한다.
수수(修修)
갖추어져 있는 모양, 바람 소리의 형용
수수(樹樹)
나무마다, 모든 나무
수수(囚首)
죄수처럼 머리를 빗지 않아 지저분함을 이른 것으로, 송(宋) 나라 때 소순(蘇洵)이 변간론(辨姦論)을 지어 왕안석(王安石)의 표리부동하고 음험한 행위를 지적하여 “대체로 얼굴에 때가 끼면 씻으려 하고, 옷이 더러우면 빨아 입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인정(人情)인데, 지금 마치 죄수처럼 머리도 빗지 않고 상중에 있는 사람처럼 얼굴도 씻지 않으면서 시서를 말하고 있으니[囚首喪面而談詩書], 이것이 어찌 그의 정(情)이겠는가.”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가우집(嘉祐集)」 卷九
수수(叟叟)
쌀을 씻는 소리, 움직이는 모양
수수(垂手)
악부잡곡(樂府雜曲)에 속한 곡제(曲題). 대수수(大垂手)ㆍ소수수(小垂手)ㆍ독수수(獨垂手)가 있는데, 대수수는 춤을 추면서 손을 드리우는 것을 말한다.
수수(搜搜)
움직이는 모양, 구구한 모양
수수(垂垂)
차츰차츰, 점점, 두 손을 드리우고 어른께 하는 인사
수수(隨手)
① …하는 김에 …하다
② 즉석에서 하다
③ 손이 가는 대로 하다
④ 손에 지니다
⑤ 곧바로 / 인용: 회음후열전
수수방관(袖手傍觀)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 직접 간섭하거나 거들지 못하고 옆에서 보고만 있다.
수수폭서루(秀水曝書樓)
수수 사람인 주이준(朱彛尊)의 폭서정집(曝書亭集)을 가리킨다. 자는 석창(錫鬯)이다.
수숙빈교의(嫂叔貧交誼)
가난한 가운데 남편의 형제들을 알뜰히 돌보아준 것을 말한다.
수시(授時)
백성에게 농사철을 알려주는 것이다.
수시체(數詩體)
시체(詩體)의 하나로, 숫자를 시구 가운데서 넣어서 짓는 문자유희(文字遊戱)의 시이다. 잡수시(雜數詩).
수식태평연제력(誰識太平緣帝力)
정치가 아주 잘 되어 백성들이 누구의 덕택에 잘 사는 줄도 미처 모른다는 뜻이다. 중국 고대 요(堯) 임금 때에 천하가 태평하여 백성들 중에 8,90세 된 노인이 흙덩이를 치면서 노래하기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자고, 샘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서 밥 먹는데 임금의 힘(帝力)이 나에게 무슨 소용 있느냐?”고 하였다. 『사략(史略)』 「제왕세기(帝王世紀)」
수신(守申)
1년에 여섯 번 돌아오는 경신일(庚申日)에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며 근신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의 몸에 삼시(三尸) 귀신이 들어 있어 경신일마다 천제(天帝)에게 허물을 고해 바치기 때문에 이날은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모면해 보려고 한다는 풍속이 있었다.
수신(受辛)
이 두 글자를 합하면 사(辭) 자가 되므로, 즉 ‘말’을 의미한다. 『삼국지(三國志)』 「양수전(楊修傳)」
수신자득(須身自得)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내가 몸소 나서서 일할 필요 뭐 있으랴, 나의 문하생이 장군이고 정승인걸[何須身自得 將相是門生].”이라는 구절이 있다. 『백락천시집(白樂天詩集)』 卷12 洛下送牛相公出鎭淮南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자신의 인격을 닦아 행실을 바르게 한 후에,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그 후에 나라를 다스린 다음 세상을 태평하게 한다는 것이다. 『대학(大學)』
수신제가(修身齊家)
행실을 닦고 집안을 바로 잡는 것이다. 『대학(大學)』
수심가지 인심난지(水深可知 人心難知)
물의 깊이는 알 수 있으나 사람의 속마음은 헤아리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 유의어: 수심가지인심난측(水深可知人心難測)
수압(睡鴨)
조는 오리 모양의 향로(香爐). 속이 비어 있어 그 안에 향을 피우면 연기가 입으로 피어나오므로 청한(淸閑)을 즐기는 사람의 애용물이다.
수애합주소(收艾合奏簫)
음력 4, 5월의 온화한 때를 가리킨다. 소(簫)는 순(舜) 임금의 음악인 소소(簫韶)를 말한 것으로, 순 임금이 지었다는 「남풍시(南風詩)」에 “남풍(南風)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들의 괴로움을 풀어 줄 만하도다.” 한 데서 온 말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 「변악해(辨樂解)」
수액(水厄)
차를 무리하게 많이 마시게 됨을 이른다. 진(晉) 나라 때 왕몽(王濛)이 차를 매우 좋아하여 손이 그의 집에 가면 반드시 차를 마시게 되므로, 당시 사대부들이 이를 매우 고통스럽게 여겨, 매양 왕몽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오늘은 수액(水厄)이 있을 것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수양(修攘)
안으로는 정교(政敎)를 잘 닦고 밖으로는 외적의 침입을 잘 방비하는 것을 말한다.
수양(隨陽)
태양의 운행에 따라 기러기가 9월에 남쪽으로 왔다가 정월에 북쪽으로 가기 때문에, 기러기가 태양 뒤를 좇는다고 하여 수양(隨陽)이라는 별칭이 생기게 되었다.
수양(首陽)
해주(海州)의 옛 이름이다.
수양가인반(垂楊可忍攀)
송별(送別)을 말한다. 한대(漢代)에 장안(長安) 사람들은 으레 손을 전송할 적에는 패교(霸橋)에 나와서 버들가지를 꺾어 주어 송별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수양사미궐(首陽死薇蕨)
수양은 산명(山名)으로, 즉 은(殷) 나라의 충신 백이(伯夷)ㆍ숙제(叔齊) 형제가, 은 나라가 망하자 의리상 주(周) 나라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캐먹다가 굶어죽은 사실을 가리킨다.
수양성(睢陽城)
수양 태수 허원(許遠)과 함께 성을 지키며 적장 윤자기(尹子琦)와 싸워 몇 번이나 물리쳤으나, 몇 달이나 고수하다가 중과부적에 식량마저 떨어진 상태에서, 그의 명성을 시기한 임회 절도사(臨淮節度使) 하란진명(賀蘭進明)이 고의로 구원병을 보내지 않는 바람에 성이 함락되면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구당서(舊唐書)』 卷187 / 인용: 臨溟大捷歌(홍양호)
수어지교(水魚之交)
물고기가 물을 얻어야 살 수 있는 것과 같이 부부나 군신 관계의 서로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친밀한 사이를 말한다. 변하지 않는 깊은 교우(交友)관계에도 쓰이고 있다.
수여(愁予)
나로 하여금 수심에 차게 하다.
수여위(守與爲)
백성들이 지조가 있어 지킬 것은 지키고 할 것은 하는 것. 『서경(書經)』 「홍범(洪範)」
수역(壽域)
인수(仁壽)의 경역(境域)이란 뜻으로 태평한 세상을 말한다. 『한서(漢書)』 예악지(禮樂志)에 “온 세상의 백성을 이끌어 인수(仁壽)의 지역에 오르게 한다.” 하였다.
수연(獸煙)
부귀(富貴)한 집에는 숯(炭)가루를 짐승의 모양으로 만들어서 불을 피운다.
수영패(隨營牌)
평안도의 관찰사(觀察使),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의 본영(本營)에 직속된 부대를 말한다.
수예(水裔)
물가.
수오지심(羞惡之心)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수오지심의지단야(羞惡之心義之端也)
그릇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의(義)의 근본이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수와(水渦)
목욕하기 위한 조그만 물웅덩이. 궁녀들의 목욕터로 연못에 마련되었다.
수요와변(受饒瓦甂)
공자가 진채(陳蔡)에서 포위를 당하여 7일 동안을 굶다가 와증(瓦甑)의 밥을 받아먹었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재액(在厄)」,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나무가 고요하고 싶어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싶어도 이미 때 늦어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음을 슬퍼하는 말이다. / 유의어: 풍수지탄(風樹之歎)
수우(水虞)
본디 소지(沼池)나 하천(河川)을 맡은 관명인데, 해산물(海産物)을 관장하는 기관을 가리키기도 한다.
수우(邃宇)
수(邃)는 심(深)이다. 깊숙한 집. 큰 집.
수우(守愚)
당 나라 때 시인으로 명성이 높았던 정곡(鄭谷)의 자이다.
수우사(需于沙)
이 말은 『주역(周易)』 「수괘(需卦)」 구이(九二)에, “需于沙 小有言 終吉”이라고 보인다.
수운(愁雲)
사람으로 하여금 애수(哀愁)를 느끼게 하는 구름을 말한다.
수운(水雲)
① 수운은 수운향(水雲鄕)의 준말로, 안개가 피어오르는 곳. 은자(隱者)가 사는 청유(淸幽)한 지방을 가리킨다.
② 유수행운(流水行雲)의 준말이다. 종적이 일정하지 않음을 이름이니, 행각승(行脚僧)의 이칭(異稱)으로도 쓰인다.
수운(需雲)
『주역(周易)』 「수괘(需卦)」의 상사(象辭)에 “구름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 기다림이니, 군자가 여기에 의거하여 음식을 먹고 연락을 하며 기다린다[雲上於天需 君子以 飮食宴樂].” 한 데서 온 말이다.
수원(修遠)
매우 멀다.
수원(脽圓)
한(漢) 나라 제왕(諸王)인 양효왕(梁孝王)이 빈객(賓客)들을 맞이하던 토원(免園)을 말한다.
수원수구(誰怨誰咎)
누굴 원망하며 누굴 탓할 것인가. 남을 원망하거나 책망할 것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수원숙우(誰怨孰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 군자는 하늘과 사람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는다. / 유의어: 수원수구(誰怨誰咎)
수월(授鉞)
대장(大將)을 출정(出征)시킬 때에 임금이 도끼를 주는데, 그것은 생살(生殺)의 전권(全權)을 맡긴다는 뜻이다.
수월(修月)
‘달을 수리한다’는 뜻으로 『유양잡조(酉陽雜俎)』 「천지(天咫)」에 “태화(太和) 연간에 정인본(鄭仁本)이 숭산(嵩山)으로 놀러 갔다가, 어느 한 사람이 보따리를 베고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불러 깨우자 그 사람이 ‘당신은 달이 칠보(七寶)가 합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고 있는가? 나는 언제나 8만 2천 호(戶)의 달을 손질하고 있다.’면서, 보따리를 풀어 보여주는데, 그 속에 도끼와 끌이 있었다.” 하였다.
수월(水月)
삽십삼관음상의 하나로 한가한 은거 생활을 말한다.
수월경화(水月鏡花)
불가의 말로 허환(虛幻)을 비유한 것이다.
수월관음(水月觀音)
불가에서 말하는 33관음의 하나로 달이 비친 바다 위에 한 잎의 연꽃에 선 모양을 하고 있는 관음이라 한다.
수위옥(樹爲屋)
후한(後漢) 때의 은사(隱士)인 신도반(申屠蟠)이 한실(漢室)이 쇠퇴해짐을 알고는, 이에 양탕(梁碭)의 사이로 들어가 자취를 숨기고, 나무 끝에 인하여 지붕을 얽어 만들고 살면서 스스로 품팔이꾼처럼 행세했던 데서 온 말이다. 옥위수(屋爲樹)
수유(茱萸)
수유나무의 열매로, 한방에서 약재로 쓰인다. 『서경잡기(西京雜記)』의 “한 무제(漢武帝)의 궁인(宮人) 가란(賈蘭)이 9월 9일에 수유를 몸에 차고 국화주를 마시면서 하는 말이 ‘이것들이 사람을 장수하게 만든다.’ 하였다.”에서 나온 것이다. 두시비해(杜詩批解) 권6 구일남전최씨장(九日藍田崔氏莊)에 “오는 해의 이 모임에 어느 누가 건장할꼬. 술에 취해 수유 잡고 자세하게 본다네[明年此會知誰健 醉把茱萸仔細看].”하였다.
수유(首濡)
『주역(周易)』 「미제괘(未濟卦)」 상구효사(上九爻辭)에 “술을 마시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으나, 정도에 지나쳐 머리까지 담그게 되면(首濡) 잘못이다.” 하였다.
수유낭(茱萸囊)
후한 때의 풍속으로, 음력 9월 9일이면 수유(茱萸) 열매를 따서 붉은 주머니에 담아가지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菊花酒)를 마시면서 사기(邪氣)를 물리쳤던 고사가 있다.
수유만(茱萸灣)
양주부(揚州府)에 있는 항만 이른다. 거기에 수유촌(茱萸村)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수유양양회(茱萸襄陽會)
『왕우승집(王右丞集)』 권14 「구월구일억산동형제(九月九日憶山東兄弟)」의 “아마도 우리 형제 높은 곳에 올라가 머리에 수유 꽂았는데 내 한 사람 빠졌으리[遙知兄弟登高處 遍插茱萸少一人].”에서 나온 것으로, 자신이 떠난 뒤 고향의 형제가 쓸쓸할 것이라는 것이다. 양양은 중국의 지명이다.
수유이(茱萸餌)
음력 9월 9일이면 높은산에 올라가 수유 열매를 따고 국화주(菊花酒)를 마시어 사기(邪氣)를 물리치던 풍속에서 온 말이다.
수유회(茱萸會)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에 산에 올라가 산수유 열매를 따서 붉은 색 주머니에 담고 국화주(菊花酒)를 마시며 사기(邪氣)를 물리치는 세시 풍습의 일종이다.
수은(囚銀)
각 아문(衙門)에서 거두어들여 시중(市中)에 통용되지 않던 은(銀)을 백성들이 속칭으로 부르던 말이다.
수의(垂衣)
순(舜) 임금과 덕이 같다는 뜻이다. 수공(垂拱)과 같은 말로, 순 임금은 어진 사람을 선발하여 일을 맡겼으므로 자신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한다. 『주역(周易)』 「계사(繫辭)」에, “황제(黃帝) 요순(堯舜)은 의상을 드리우고(垂衣裳) 있으매, 천하가 다스려졌다[黃帝堯舜垂衣裳而天下治].” 한 말이 있다.
수의(繡衣)
①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부귀하고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수의(繡衣)를 입고서 밤길 걷기와 같다.” 하였다.
② 수놓은 화려한 옷이란 뜻으로, 암행어사(暗行御史)를 영광스럽게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수의공수(垂衣拱手)
의상(衣裳)만 드리우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는 뜻이다. 『서경(書經)』 「무성(武成)」에 “하는 일이 없어도 천하가 잘 다스려지다[垂拱而天下治].” 하였다.
수의낭군(繡衣郞君)
한무제(漢武帝)가 지방에 어사(御史)를 보내면서 수의(繡衣)를 주었다. 그것은 특별히 대우하는 것이다.
수의랑(繡衣郞)
암행어사(暗行御史)를 영화롭게 이르는 말이다.
수의상월(繡衣霜鉞)
수의는 수를 놓은 호화로운 옷이고 상월은 서릿발같이 날이 선 도끼. 한 무제(漢武帝) 때 민간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자들이 많아 어사와 중승(中丞) 등 담당 관리들이 제압하지 못하자, 광록대부(光祿大夫) 범곤(范昆)과 각 보(輔)의 도위(都尉) 및 구경(九卿) 장덕(張德) 등에게 수놓은 옷을 입고 도끼를 손에 쥐고서 군사를 일으켜 그들을 진압하게 했다는 데서 나온 것으로, 임금으로부터 어느 지방의 분쟁이나 비리를 해결하라는 특명을 받은 자를 가리킨다.
수의송(垂衣頌)
『주역(周易)』 「계사(繫辭)」 下의 “황제(黃帝)와 요ㆍ순(堯舜)은 긴 의복을 입고 천하를 다스렸다.”에서 나온 말로, 애써 공들이지 않고 스스로 잘 다스려지게 하는 성군의 정치에 대한 칭송을 가리킨다.
수의정치(垂衣政治)
무위(無爲)의 도에 입각하여 통치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周易)』 「계사(繫辭)」 下에 “黃帝堯舜垂衣裳而天下治”라 하였다.
수인(愁人)
근심에 차게 하다.
수인씨(燧人氏)
전설 속에 나오는 고대의 제왕(帝王)으로, 나무를 비벼서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처음 발명고, 숙식(熟食)하는 방법을 창안해서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한다.
수인장(數仞墻)
두어 길 되는 담장으로, 인격과 도덕이 높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부자(夫子)의 담장은 두어 길이 되기 때문에 그 문(門)을 찾아 들어가지 않는다면, 종묘(宗廟)의 아름다움과 백관(百官)의 훌륭함을 볼 수 없다[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 百官之富].” 하였다.
수자부족여모(竪者不足輿謀)
‘아이와는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다’는 말로, 풋내기와는 큰일을 꾀할 수 없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수작(酬酌)
술잔을 서로 주고 받고 한다. 말을 서로 주고 받음. 남의 말이나 행동을 업신여겨 일컫는 말
수잠(水蠶)
누에의 일종으로 길이가 6~7촌이나 되고, 흑색에 인각(鱗角)이 있으며 서리나 눈이 내릴 때에야 고치를 짓는데, 고치는 길이가 1척이나 되고 오색실이 나온다.
수장(殳斨)
사람 이름이다. 제가 수(垂)에게 공공(共工)의 책임을 맡기자 수는 수장 및 백여(伯與)에게 양보하였다. 『서경(書經)』 「요전(舜典)」
수장로사기천석(壽藏魯士蘄天錫)
『시경(詩經)』 노송(魯頌) 「비궁(閟宮)」에, “하늘이 공(公)에게 순수한 복과 오랜 목숨을 주사 노 나라를 보전케 하셨네.”라는 말이 있다.
수재(秀才)
① 당(唐) 나라 섭법희(葉法喜)가 현진관(玄眞觀)에 살 때 찾아온 손님이 자리에 가득하여 술을 구하는데, 어떤 사람이 자리로 들어와서 ‘국수재(麴秀才)’라고 자칭하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법희가 도깨비인가 의심하여 칼로 쳤더니, 술병으로 변하였다. 그래서 모두 이 술을 마시고 ‘국수재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는 말이 있다. 『사문유츼(事文類聚)』 「연음부(燕飮部)」
② 진(晉) 나라 반악(潘岳)을 가리킨다. 그의 「한거부(閑居賦)」 서문(序文)에 “수재로 천거되어 낭관(郞官)이 되었다[擧秀才爲郞].”하였고, 또 “여덟 번 관직을 옮기는 동안에 한 번 품계가 올랐으니 …… 이것이 비록 시운(時運)과 관계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내가 졸렬하다는 하나의 증거이다.”라고 하였으며, 그의 「추흥부(秋興賦)」 서문에 “나는 서른 두 살 때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余春秋三十有二 始見二毛].”라고 하였다.
수재귀지본(水哉貴知本)
『맹자(孟子)』 「이루(離婁)」 上에 “유자(孺子)가 노래하기를 ‘창랑(滄浪)의 물이 맑거든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나의 발을 씻는다.’ 하였는데, 이에 대해 공자가 ‘너희는 들으라.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게 되니, 이는 물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 하셨다.” 하였다.
수재수재(水哉水哉)
공자가 자주 “물이여, 물이여.” 하면서 찬미하였다. 『논어(論語)』 「자한(子罕)」
수재융(守在戎)
오랑캐와 잘 화친하여 오랑캐들로 하여금 중국을 지키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소공(昭公) 23년 조(條)에, “옛날에 천자는 천하를 지킴에 있어서 사방의 오랑캐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하였다.
수저(繡邸)
수불(繡佛)을 모신 저택.
수적천석(水滴穿石)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종래에는 돌에 구멍을 뚫듯이,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 작은 것이라도 모이고 쌓이면 큰 것이 됨, 큰 힘을 발휘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 유의어: 점적석천(點滴石穿) / 인용: ① 5년 후에 나갈 생각으로 일하다 ② 치열하되 여유롭게
수전(水田)
가사(袈裟)는 수전(水田)처럼 된 무늬로 만들었으므로 수전의(水田衣)라 한다.
수점(睡簟)
‘대자리에 누워 자다’라는 뜻이다.
수정(壽亭)
관우(關羽). 한수정후(漢壽亭侯) 봉호를 받았다.
수정(修靜)
육조(六朝) 때 송(宋) 나라 육견적(陸見寂)의 이른다.
수정교(水精橋)
얼음은 수정과 비슷하기 때문에 얼음이 많이 얼어붙어 다리처럼 생겼음을 말한 것이다.
수정궁궐(水晶宮闕)
전설 속에 나오는 궁궐로, 달에 있는 궁궐을 가리키기도 하고, 물속에 있다고 하는 용궁(龍宮)을 가리키기도 한다.
수정배(水精杯)
수정(水晶)으로 만든 술잔. 수정(水精)은 곧 수정(水晶)이다.
수정인(水晶人)
새우와 게를 의인화(擬人化)한 것으로 수정처럼 투명하다 하여 이름한 것이다.
수정포도(水晶葡萄)
열매가 수정처럼 하얀 포도를 말한다.
수제(水帝)
물의 신인 전욱(顓頊)으로, 전욱이 수덕(水德)으로 왕이 되었으며, 죽은 뒤에는 북방 수제가 되었다고 한다.
수제(隋隄)
수 양제(隋煬帝)가 제수(濟水)와 하수(河水)의 지류(支流)를 소통시키기 위하여 양주(揚州)에 쌓은 둑(隄)를 말하는데, 거기에 수양버들을 많이 심어 놓아 경치가 좋다.
수제심지편망기(修諸心地便忘機)
심지(心地)는 곧 마음을 말하는 것이고, 기를 잊었다(忘機)는 말은 즉 마음에 꾸밈이 없이 담담한 것을 말한다. 당(唐) 나라 사공도(司空圖)의 시에 “말이 망기에 이르니 불심에 가깝도다[語到忘機近佛心].” 라는 구절이 있다.
수제양류(隋堤楊柳)
수 양제(隋煬帝)가 운하(運河)를 파고 운하에 따라 쌓은 둑에 버들을 줄지어 심었었다. “수제의 버들이 빛을 잃었다.”함은 당 태종의 위력에 수(隋)가 패망했음을 말한다.
수제하상당금포(手製荷裳當錦袍)
은자의 소박한 복장이 마치 임금에게 하사받은 옷처럼 멋지기만 하다는 말이다.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마름과 연잎으로 윗옷 만들고, 부용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는다[製芰荷以爲衣兮 集芙蓉以爲裳].”라는 표현이 있으며, 이태백(李太白)이 황제에게서 하사받은 금포(錦袍)를 입고서 배 안에서 술을 마시며 방약무인(傍若無人)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신당서(新唐書)』 卷202 文藝列傳中 李白
수조(水曹)
수부(水部)와 같은 말로서 공부(工部)에 해당하는데, 여기서는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수부랑(水部郞) 중에 원외랑(員外郞) 각 한 사람씩 두었는데, 두보는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을 지냈다.
수조(受祖)
임금 자리를 종묘(宗廟)에서 선위 받는다는 뜻이다.
수조(水調)
상조(商調)의 슬프고 애절한 곡조 이른다.
수조가(水調歌)
악부(樂府) 상조곡(商調曲)의 이른다. 수 양제(隋煬帝)가 변거(汴渠)를 개통한 뒤에 스스로 지어 불렀다는 노래로, 애절한 뜻이 담긴 것이라 한다. 수 양제(隋煬帝)가 강도(江都)에 갔을 때 처음 지은 것을 그 뒤 당(唐) 나라 때 신수조(新水調)로 발전시켰다고 하는데, 그 곡이 은근하면서도 애절한 음조를 띠고 있다 한다. 『벽계만지(碧鷄漫志)』 「가곡(歌曲)」
수조가두(水調歌頭)
사패(詞牌)의 이름이다. 95자로 짜여져 있다. 『사율(詞律)』 卷十四
수조랑(水曹郞)
상서수부랑(尙書水部郞)을 이르는 것으로, 소식(蘇軾)의 초도황주시(初到黃州詩)에 “쫓겨난 사람은 원외랑에 비치됨도 무방하지만 시인은 으레 모두 수조랑이 되었다오[逐客不妨員外置 詩人例作水曹郞].” 한 데서 온 말인데, 예를 들면 뛰어난 시인으로 양(梁) 나라 하손(何遜)이나 당(唐) 나라 장적(張籍) 등이 모두 수조랑을 지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소동파집(蘇東坡集)』 卷二十
수족지애(手足之愛)
형제 사이의 우애를 일컫는 말이다.
수종사(水鐘寺)
양주군(楊州郡) 와부면(瓦阜面)의 조곡산(早谷山)에 있는 절 이름이다.
수좌(首座)
선종(禪宗)의 승당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중. 제일좌(第一座)ㆍ좌원(座元)ㆍ선두(禪頭)ㆍ수중(首衆)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원(禪院)에서 참선하는 스님을 수좌라 한다.
수주(守株)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준말. 변통할 줄 모르고 한 자리만 지킨다는 비유. 『한비자(韓非子)』 「오두(五蠹)」에 “송(宋) 나라 어떤 사람이 밭을 갈 때 토끼 한 마리가 달려오다가 나무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는 것을 보자, 그만 밭갈기를 중지하고 다른 토끼가 오기만 기다리면서 나무를 지키고 있었으나 토끼는 더 얻지 못한 채 남의 비웃음만 받았다[宋人有耕田者, 田中有株, 免走觸株, 折頸而死, 因釋其耒而守株, 冀復得免, 免不可復得, 而身爲宋國笑].” 하였다.
수주(隋珠)
수후(隨侯)의 구슬이란 뜻으로, 뱀이 수후(隋侯)에게 보은(報恩)했다는 명월주(明月珠)를 말한다. 수후는 주(周) 나라 때 한수(漢水)의 동쪽에 자리 잡은 제후(諸侯)인데 그는 큰 뱀이 창자가 끊긴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약을 붙여 주었다. 그후 뱀이 강에서 큰 구슬을 물고 나와 은혜를 갚았으므로 그 구슬을 수후(隋侯)의 구슬이라고 이름하였다. 『회남자(淮南子)』 「람명훈(覽冥訓)」
수주대토(守株待兎)
구습에만 사로잡혀 변통할 줄 모른다는 비유이다. 『한비자(韓非子)』 「오두(五蠹)」에 “송(宋) 나라 사람이 밭을 가는데 토끼가 달아나다가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쟁기를 던져버리고 그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가 다시 와서 부딪치기만을 기다렸다[宋人有耕田者, 田中有株, 免走觸株, 折頸而死, 因釋其耒而守株, 冀復得免, 免不可復得, 而身爲宋國笑].” 하였다.
수중동해(袖中東海)
송(宋) 나라 소식(蘇軾)이 등주(登州) 봉래각(蓬萊閣) 아래 석벽(石壁)에서 떨어져 나온 수석(壽石)을 얻고 지은 시 가운데 “이 수석 지니고 돌아오는 길, 소매 속에 동해 물결 출렁이누나[我持此石歸 袖中有東海].”라는 구절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卷31, 文登蓬萊閣下 …… 且作詩 遺垂慈堂老人
수중명월경중인(水中明月鏡中人)
당체(當體)의 진경(眞景)을 적시(摘示)하지 못한 채 허환(虛幻)하게 끝나버리고 말 것이라는 뜻이다.
수중미로(手中薇露)
당 나라 유종원(柳宗元)이 한유(韓愈)가 부쳐온 시를 받으면 먼저 장미꽃의 이슬에 손을 씻고 옥유향(玉蕤香)을 뿌린 뒤에 읽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운선잡기(雲仙雜記)』
수중포인(袖中庖刃)
포정(庖刃)은 소를 뼈와 살로 해체하는 도축업자인데, 특히 칼을 잘 사용하였기 때문에, 전하여 여기서는 관리(官吏)가 백성을 잘 다스리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
수즉다욕(壽則多辱)
‘장수(長壽)를 하면 능욕도 많이 당한다’는 뜻으로, 오래 살수록 망신스러운 일을 많이 겪게 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장자(莊子)』 「천지(天地)」
수증(修證)
만행(萬行)을 수행하는 것과 진리를 증득(證得)하는 것.
수지(首止)
제환공(齊桓公)이 제후(諸侯)들을 모은 땅이름이다.
수지청즉무어(水至淸則無魚)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숨을 곳이 없으므로 살지 않는다. 사람이 너무 야박하거나 지나치게 똑똑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피하여 벗을 사귀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입관(入官)」
수집수(數集壽)
수집은 수재(數載)와 같은 뜻으로 곧 나이가 많은 것을 나타내는 말인데, 이 말의 기원은 『회남자(淮南子)』 「전언훈(詮言訓)」의 ‘수잡(數雜)의 수(壽)’라는 데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회남자(淮南子)』의 주에 의하면 수잡의 잡(雜)은 잡(帀, 12년 간임)의 뜻으로, 곧 60~70세의 나이를 말한 것이다.
수차유가우(隨車有嘉雨)
동한(東漢)의 정홍(鄭弘)이 회음 태수(淮陰太守)가 되어 혜정(惠政)을 베풀었는데, 그의 수레가 지나가는 곳마다 단비가 내려 오랜 가뭄을 해갈시켰다는 고사가 있다. 『후한서(後漢書)』 卷33 「정홍전(鄭弘傳)」
수창(水蒼)
대부의 패옥(佩玉)인 수창옥(水蒼玉)의 준말이다.
수천라의(水濺羅衣)
미인(美人)과 노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唐) 나라 함통(咸通) 연간에 회남(淮南) 이공(李公)이 강(江)에서 놀 때, 뱃사공이 상앗대를 잘못 놀려 이공 시녀(侍女)의 옷에 물이 튀기자 이공이 난색을 지으니, 마침 자리를 함께 했던 막좌(幕佐) 배여경(裵餘慶)이 문득 이공에게 시(詩)를 지어 바치기를 “아황처럼 얼굴 고와라 금사(金絲)의 옷이요, 물총새 깃 수식 흔들려라 옥비녀 드리웠네. 이왕에 물 튀겨 비단 저고리 젖었으니, 아마도 무산 신녀가 저녁 비에 돌아왔나봐[半額鵝黃金縷衣 翠趐浮動玉釵垂 從敎水濺羅襦濕 疑是巫山行雨歸].”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수천지우(垂天之羽)
명붕(溟鵬)은 북명(北溟)의 대붕(大鵬)이라는 뜻으로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그 날개가 마치 하늘가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其翼若垂天之雲].”고 하였다.
수천지운(垂天之雲)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붕새가 한번 힘을 내어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가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고 하였다.
수첨(繡添)
자수(刺繡)하는 바느질감이 더욱 늘어난다는 말로, 동지(冬至)가 지나 날이 점점 길어지는 때를 말한다.
수첩(壽帖)
축수(祝壽)하는 글을 모은 시첩(詩帖), 또는 문첩(文帖).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가 살 수 없다는 뜻으로, 사람이 너무 결백하면 남이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입관(入官)」
수초(遂初)
① 벼슬을 떠나 은거하여 처음에 가진 소원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진(晉) 나라 손작(孫綽)이 젊었을 때 허순(許詢)과 함께 세속을 초월하려는 뜻을 가지고 10여 년 동안 산수(山水) 속에 호방하게 살면서 수초부를 지어 자신이 만족한 생활을 한다는 것을 서술하였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
② 은퇴하려던 처음 먹은 마음을 이룬다는 뜻이니, 진(晉) 나라 때 손작(孫綽)이 고상한 뜻이 있어 일찍이 수초부를 짓고 자신의 뜻을 이루었는데, 뒤에 산기상시(散騎常侍)의 벼슬을 지내면서 상소하여 환온(桓溫)의 전횡(專橫)을 저지하자, 환온이 좋지 않게 여겨 말하기를 “어찌하여 그대의 수초부를 찾지 않고 남의 국사를 간섭하는가.” 한 고사와 춘추시대(春秋時代) 월(越) 나라의 명신(名臣)인 범려(范蠡)가 월 나라를 위해 오(吳) 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는 더 이상 벼슬을 하지 않고 오호(五湖)에 배를 타고 떠나서 제(齊) 나라로 가 성명을 바꾸고 은거하였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 卷一百二十九, 『진서(晉書)』 卷五十六
수초부(遂初賦)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여 당초의 소원을 이룬 것을 노래한 글. 한(漢) 나라 유흠(劉歆)과 진(晉) 나라 손작(孫綽)의 글이 유명하다.
수칭성(水秤星)
미성(尾星) 끝에 나란히 있는 두 별을 가리키는데, 농가에서, 이 두 별이 나란히 있으면 그 해에는 비가 알맞게 내린다고 한다.
수타(酥酖)
인도의 좋은 음식인데, 유락국(乳酪麴)으로 만듦. 산가청공(山家淸供)에 “소동파(蘇東坡)가 자유(子由)와 음식을 먹으면서 그 맛을 찬미하기를 ‘이것은 천축(天竺)의 수타인가 보다. 인간에는 이런 맛이 없다.’ 하였다.” 한다.
수탄(獸炭)
① 가루숯을 짐승 모양으로 만든 것을 말하기도 하고 짐승의 뼈를 태운 숯을 말하기도 한다.
② 수탄(獸炭)은 석탄을 가루로 만들어 짐승 모양으로 뭉쳐 놓은 것인데, 도성의 호귀가(豪貴家)들이 이것을 가지고 술을 데워 마셨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진서(晉書)』 外戚 「양수전(羊琇傳)」
수택(隋澤)
『회남자(淮南子)』의 남명(覽冥) ‘수후(隨後)의 구슬(珠)’ 주(註)에, 수(隋)는 한수(漢水) 동쪽의 나라인데, 수후가 큰 뱀이 상해 끊어진 것을 보고 약을 발라 주었더니, 뒤에 뱀이 강 중에서 큰 구슬을 물고 나와 은덕을 갚았다. 그래서 수후의 구슬이라 했다.
수토은(水土恩)
우물을 파서 물을 먹고 농사 지어 배불리 먹는 것을 말한다.
수판(手板)
관리가 항시 띠 사이에 꽂고 있다가 임금의 명령이나 또는 임금에게 아뢸 일들을 기록하는 것, 즉 홀(笏)을 가리키는데 진(晉)ㆍ송(宋) 이후에 수판이라고 하였다.
수판(手版)
관원들이 지시를 하거나 일을 기록하기 위하여 가지고 다니는 좁고 긴 판자를 말한다.
수편량해(受鞭梁海)
진시황(秦始皇)이 석교를 놓아 바다를 건너가서 해뜨는 곳을 보려고 하는데 신인(神人)이 바다로 돌을 몰아 넣었으나 돌이 빨리 가지 않자 채찍질을 하니 돌이 피를 흘렸다 한다. 『삼국약기(三齊略記)』
수포(獸袍)
조사(詔使)가 입은 적색(赤色) 도포에 짐승 형상의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말한다. 당나라에서 글 잘하는 학사(學士)들에게 짐승을 수놓은 비단갖옷을 상으로 하사하였었다.
수포우선(手抛羽扇)
전쟁을 일삼지 않음을 말한다. 우선(羽扇)은 새의 깃으로 만든 부채인데,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이 일찍이 백우선(白羽扇)을 손에 쥐고 삼군(三軍)을 지휘했던 데서 온 말이다.
수풍(樹風)
풍수지통(風樹之痛)과 같은 말인데 부모가 죽어 봉양하지 못하여 슬퍼한다는 뜻이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무는 고요히 있고 싶지만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 싶지만 어버이가 계시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也].”고 하였는데, 후세에 이를 인용해 부모를 오래 봉양하지 못한 슬픔에 비유하였다.
수하(隨何)
한 고조(漢高祖) 때의 변사(辯士)로서 공을 많이 세운 문신(文臣)이다.
수하탐환(樹下探環)
진(晋)나라 양호(羊祜)가 다섯 살 때에 유모(乳母)를 보고, “내가 가지고 놀던 금가락지를 가져 오라.” 하였다. 유모는, “네가 원래 그런 물건을 가진 일이 없었다.” 하니, 양호가 곧 이웃에 사는 이씨(李氏)의 동산 뽕나무 속에서 금가락지를 찾아내었다. 주인이 놀래며, “이것은 나의 죽은 아이가 잃어버렸던 것인데 네가 왜 가져가는가.” 하니, 유모가 상세히 이야기하였다. 양호는 곧 이씨의 죽은 아이의 후신(後身)인 것이다.
수해(受醢)
‘소금에 절인다’는 뜻이다.
수해(繡獬)
해치(獬豸)를 수놓은 법관이 쓰는 관(冠)을 말한다.
수해(竪亥)
우(禹) 임금의 신하로, 걸음을 잘 걸었다는 신화 속의 인물이다. 『회남자(淮南子)』 「지형훈(地形訓)」에 “수해에게 북극에서부터 남극까지 걸어가게 하였더니, 모두 2억 3만 3천 5백 리(里) 75보(步)였다[使豎亥步 自北極 至于南極 二億二萬三千五百里七十五步].”라는 말이 나온다.
수해소(袖海蘇)
소식(蘇軾)의 시에 “我携此石歸 袖裏有東海”의 구가 있다. 『시인옥설(詩人玉屑)』
수행(遂行)
멀리가다.
수향(睡鄕)
가상적인 태평의 나라. 소식(蘇軾)의 수향기(睡鄕記)에 ‘……천하가 잘 다스려짐이 수향과 같다.” 하였다.
수향(睡鄕)
잠 속에 들어간 꿈의 세계. 곧 잠자는 것을 말한다. 꿈나라.
수향후(睡鄕侯)
수향의 공후(公侯). 수향은 잠자는 사이에 마음이 가 있는 곳 즉 꿈나라를 말한 것으로, 곧 모든 세상일을 잊고 무위(無爲)의 세계로 돌아감을 비유한 말이다. 소식(蘇軾)의 수향기(睡鄕記)에 의하면, 특히 황제(黃帝)와 요순(堯舜) 시대를 수향의 풍속으로 규정하고 있다.
수현(守玄)
양웅(揚雄)의 「해조부(解嘲賦)」에, “나는 공명(功名)을 구하지 못하므로 잠자코 홀로 나의 태현(太玄)을 지키겠다.” 하였다. 태현은 그가 『주역(周易)』을 모방하여 지은 글이다.
수현문(守玄文)
현(玄)은 곧 도(道)를 뜻한 것으로, 한 애제(漢哀帝) 때 양웅(揚雄)이 세상에 나가지 않고 꼭 들어앉아 초(草)했던 『태현경(太玄經)』를 이르는데, 양웅이 태현경을 초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 卷八十七
수형(水衡)
한대(漢代)에 천자의 사유의 금전을 관리하는 기관이다.
수형전(水衡錢)
수형은 한(漢) 나라 때 세무(稅務)를 맡은 벼슬 이른다. 이 수형의 관아에 저장한 돈은 모두 임금의 사장(私藏)이므로,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돈을 의미한다.
수호(愁胡)
매는 원래 호지(胡地)에서 나왔기 때문에 호지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두보(杜甫)의 화응시(畵鷹詩)에 “몸 솟구쳐 교활한 토끼를 생각하고 곁눈질하여 호지를 생각하는 듯하네[攫身思狡兎 側目似愁胡]” 한 데서 온 말이다. 『두소릉집(杜少陵集)』 卷一
수호(愁胡)
‘수심이 어린 듯한 호인(胡人)의 깊숙한 눈’을 말하는데, 흔히 매의 눈을 형용할 때 쓰는 표현이다.
수화(羞花)
당대(唐代)의 미녀 양옥환(楊玉環)은 당명황(唐明皇)에게 간택되어져 입궁한 후로 하루 종일 우울했다. 어느 날 그녀가 화원에 가서 꽃을 감상하며 우울함을 달래는데 무의식중에 함수화(含羞花)를 건드렸다. 함수화는 바로 잎을 말아 올렸다. 당명황이 그녀의 ‘꽃을 부끄럽게 하는 아름다움’ 에 찬탄하고는 양귀비(楊貴妃)를 ‘절대가인(絶對佳人)’이라고 칭했다.
수화지리(水火之利)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양(梁) 나라 하원(何遠)이 무창태수(武昌太守)가 되었는데, 여름에 마실 물이 나쁘므로 사람을 시켜 민가(民家)의 좋은 우물의 냉수(冷水)를 길어다 먹으면서 물 값으로 돈을 주었는데 주인이 받지 아니하니, “그러면 그 물은 길어다 먹지 않겠다.” 하며 기어이 돈을 주었다.
수후(隨侯)
춘추시대(春秋時代) 한수(漢水) 동쪽에 있던 수 나라 임금인데, 그는 명월주(明月珠)라고 불리는 진귀한 구슬을 갖고 있었으므로 수후의 구슬(隨侯之珠)이라 하여 유명하였다. 『회남자(淮南子)』 「범론훈(汎論訓)」
수훤당(樹萱堂)
훤은 망우초(忘憂草)인데 본디 어머니가 거처하는 북당(北堂) 앞에 심는 것이므로, 즉 어머니의 걱정을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수훤자이양(樹萱自頤養)
원추리(萱草)는 근심을 잊게 하는 풀(忘憂草)로서 모든 시름을 씻어 준다는 데서 인용된 말이다. 『시경(詩經)』 위풍(衛風) 「백혜(伯兮)」
수희(隨喜)
‘남의 착함을 따라서 기뻐한다’는 뜻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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