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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15. 실험정신과 퍼즐 풀기 - 3. 파자(破字)놀음과 석자시(析字詩)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15. 실험정신과 퍼즐 풀기 - 3. 파자(破字)놀음과 석자시(析字詩)

건방진방랑자 2021. 12. 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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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파자(破字)놀음과 석자시(析字詩)

 

 

한시 중에는 앞서 장두체(藏頭體)와 같이 파자(破字)하여 장난을 친 문자 유희가 심심찮게 있다. 다음은 흔히 김삿갓의 시로 알려진 작품이다.

 

仙是山人佛弗人 신선은 산 사람이나 부처는 사람 아니요
鴻惟江鳥鷄奚鳥 기러기는 강 새지만 닭이 어찌 새리요.
氷消一點還爲水 얼음이 한점 녹으면 도로 물이 되고
兩木相對便成林 두 나무 마주 서니 문득 숲을 이루네.

 

말인즉 구구절절이 옳다. ‘()’()’()’이 결합된 것이니 이를 파자(破字)하면 산인(山人)’이 되고, ‘()’불인(弗人)’이 된다. ()’강조(江鳥)’ 두 글자를 합한 것이고, ‘()’()’()’를 묶은 것이다. 일단 이 네 글자를 파자(破字)하여 이를 의미로 풀은 것이 12구가 된다. ‘()’자에서 점 하나가 녹아 버리면 ()’가 된다. ‘()’이 두 개 나란히 마주 보면 ()’이 된다. 재미있는 문자유희의 모습이다.

 

청나라 때 문인 사치엄(史致儼)이 아홉살 때 현시(縣試)에 응시하였는데, 현령이 다음 구절에 대구를 맞추게 했다.

 

閒看門中月 한가로이 문 가운데 달을 보면서

 

사치엄이 즉각 응대했다.

 

思耕心上田 생각은 마음 속의 밭을 간다오.

 

()’은 글자 모양이 ()’ 가운데 ()’이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 위에 ()’을 얹은 꼴이니, 절묘한 대구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의미도 새겨둘 만하니 금상첨화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예는 또 있다.

 

鴻是江邊鳥 甹爲天下盤 기러기는 강가에 사는 새이고 누에는 천하의 벌레로구나.

 

이 같은 것도 모두 파자(破字)를 활용하여 같은 원리로 지어진 구절들이다.

 

 

出門遠觀山山翠 문을 나서 멀리 보니 산마다 푸르르고
朋友相送月月親 벗을 보낸 뒤부터 달만 보면 반갑구나.

 

위의 시에서는 ()’산산(山山)’으로, ‘()’월월(月月)’로 각각 파자(破字)하여 장난친 경우이다. 이러한 장난이 보다 더 진전되면, 다음과 같은 창작으로 이어진다.

 

日月明朝昏 山風嵐自起 해와 달 아침 저녁 환하게 밝고 산 바람에 이내가 절로 이누나.
石皮破仍堅 古木枯不死 돌 껍질은 깨뜨려도 단단만 하고 고목은 말랐어도 죽지 않았네.
可人何當來 意若重千里 보고 싶은 그대가 오지 않으매 마음은 천리나 떨어져 있는듯.
永言詠黃鶴 志士心未已 시를 지어 황학(黃鶴)을 노래하자니 지사(志士)의 마음은 끝이 없어라.

 

() 나라 때 무명씨의 작이다. 산 속을 거닐며 먼 곳에 있는 지기(知己)를 그리는 마음을 노래하였다. 이제 글자가 조합되는 경위를 알아보자. 처음 다섯 구는 앞의 두 글자를 합하여 세 번째 글자로 만든 것이다. 일월(日月)’이 옆으로 합쳐져 ()’이 되고, ‘산풍(山風)’은 아래 위로 ()’이 되었다. ‘()’은 산 속에 떠도는 안개 비슷한 푸른 기운, 즉 이내를 말한다. ‘석피(石皮)’는 차례대로 ()’자를 만들고, ‘고목(古木)’은 뒤집어 ()’가 되었다. 5구의 가인(可人)’은 앞쪽에서 ()’가 되고, 6구는 천리(千里)’는 뒤쪽에서 ()’을 조합하였다. 다시 영언(永言)’으로 ()’을 만들고, 8구에서는 지사(志士)’()’을 만들었는데 여기서는 글자를 합하지 않고 오히려 빼고 있다. 같은 원리로 글자를 만들어 가면서도 각 구절이 위치나 방식에서 흥미로운 대조를 이루었고, 각 구절의 가운데 글자를 조합자(組合字)로 하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이런 형태는 좀 더 유희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명나라 때 노단(盧枬)이 장난으로 노래하였다.

 

鳥入風中 새가 바람 속에 들어가더니
銜出盤而作鳳 벌레를 물고 나와 봉황 되었네.

 

()’자 속으로 ()’가 들어가서는 ()’을 물고 나왔으니, 결국은 ()’자로 된 것이다. 그러자 그 친구 왕운풍(王雲風)이 대답하였다.

 

馬行蘆畔 말이 갈대 물가를 거닐다가
吃盡草以變驢 풀을 다 뜯어 먹자 나귀로 변했네.

 

()’()’ 곁을 지나다가 ()’를 다 뜯어 먹었으니 남은 것은 ()’ 뿐이다. 거기에 다시 ()’를 붙이면 ()’가 된다. 묘한 장난이다. 더욱이 왕운풍(王雲風)에게 ()’자로 농을 걸자, 그는 노()단의 ()’자로 되받아 응수한 것이어서 묘미가 있다. 김삿갓의 시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다.

 

天脫冠而得一點 하늘이 모자를 벗고 한 점을 얻으며
乃失杖而橫一帶 ()’가 지팡이를 잃고 띠를 하나 둘렀네.

 

무슨 소리일까. ‘()’이 모자를 벗으면 ()’가 된다. 여기에 다시 한 점을 얹으면 ()’이다. ‘()’가 지팡이를 잃으면 ()’만 남고, 여기에 다시 띠를 하나 둘러 주면 ()’가 된다. ‘견자(犬子)’ 쉽게 말해 개새끼이다. 부아가 치밀어 욕은 퍼부어 주어야겠는데 툭 뱉는 대신 비꼬아서 말한 것이다.

 

 

고대 중국에는 이렇듯 글자를 떼었다가 다시 붙이는 파자(破字)나 합자(合字)의 방식을 활용한 은어(隱語)나 수수께끼가 많이 전해진다. 후한서(後漢書)』 「오행지(五行志)에는 한()나라 헌제(獻帝) 때 서울에서 불리웠다는 동요가 실려 있다.

 

千里草何靑靑 천리초는 어찌 저리 푸르른가.
十日卜不得生 열흘 동안 점을 치니 살지를 못한다네.

 

무슨 말인가. ‘천리초(千里草)’를 한데 묶으면 ()’이 되고, ‘십일복(十日卜)’()’자가 된다. ‘청청(靑靑)’은 푸르게 우거져 왕성한 모양이고, ‘부득생(不得生)’은 결국 망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위 노래는 당시 전횡을 일삼던 간신 동탁(董卓)이 지금은 저렇듯 날뛰고 있지만 마침내는 머지않아 망하고 말 것이라는 예언성 참요(讖謠)였던 것이다.

 

고려 말 십팔자득국(十八子得國)’의 참언(讖言)이 이씨(李氏) 조선(朝鮮)의 건국을 예언했다던가, 조광조(趙光祖)를 모함키 위해 대궐 오동잎에 꿀물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고 새겨 놓아, 벌레가 이를 갉아 먹자 왕에게 바쳐 조씨(趙氏)가 왕()을 꿈꾼다고 모함하여 사화(士禍)의 피비린내를 일으켰던 것은 다 위와 같은 착상에서 나온 것이다.

 

다음 시는 당말(唐末) 어떤 나그네가 청룡사(靑龍寺)란 절로 스님을 찾아 왔다가, 만나주지 않고 물리치자 절 문에 적어 놓고 갔다는 작품이다.

 

龕龍去東海 時日隱西斜 감실에 새긴 용은 동해로 가고 어느덧 해는 서산에 기울도다.
敬文今不在 碎石入流沙 글을 숭상하는 이 이제는 없어 돌멩이 부서지고 모래 되었네.

 

나그네는 무슨 뜻으로 이런 시를 적어 놓았던 것일까? 1층의 뜻은 이렇다. 청룡사(靑龍寺)에 와서 용과 같은 큰스님을 만나 불법(佛法)의 대의(大義)의 깨닫고자 하였건만, 먼 길을 찾은 객을 절은 문전박대로 쫓아낸다. 고약한 절 인심이다. 그래서 그는 12구에서 청룡사(靑龍寺)에 이미 룡()이 떠나 버려, 절의 기상도 서산의 낙일(落日)처럼 기울어 간다고 조소하였다. 큰 바위 같이 중심을 잡아줄 학승(學僧)이 없으니 나머지야 돌멩이 부서진 모래알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이런 조소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제 2층의 숨겨진 퍼즐이 있다. 위 시는 자세히 보면 앞에서 본 것과 같이 파자(破字)를 활용한 석자시(析字詩)이다. 1구 첫 자 ()’에서 반을 끊어 둘째 자 ()’으로 이었고, 2구도 ()’를 갈라 ()’을 만들었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에서 ()’, ‘()’에서 ()’을 따왔다.

 

뒤늦게야 한 중이 문득 깨닫고 말하기를, “우리들을 크게 욕한 시로구나!”라고 하였다. 그 중은 이 시에 담긴 제 3층의 암호를 읽은 것인데, 그것은 합사구졸(合寺苟卒)’ 네 글자이다. 이 글자들은 앞서 파자(破字)하고 남은 것들이다. ()’에서 ()’을 떼고 ()’이 남았고, ‘()’에서 ()’을 취하자 ()’가 남은 것이다. 나그네는 의도적으로 합사구졸(合寺苟卒)’ 네 글자를 남겨 온 절간에 구질구질한 졸장부밖에 없음을 기롱한 것이다. 파자(破字)를 활용한 비교적 단순한 석자시(析字詩)가 이에 이르러 다시 한 단계 더 복잡하게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인용

목차

1. 빈 칸 채우기, 수시ㆍ팔음가ㆍ약명체

2. 구슬로 꿴 고리, 장두체와 첩자체

3. 파자놀음과 석자시

4. 이합체와 문자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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