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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16. 시와 문자유희: 한시의 쌍관의 - 1. 초록 저고리, 국수 한 사발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16. 시와 문자유희: 한시의 쌍관의 - 1. 초록 저고리, 국수 한 사발

건방진방랑자 2021. 12. 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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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와 문자유희(文字遊戱): 한시(漢詩)의 쌍관의(雙關義)

 

 

1. 초록 저고리, 국수 한 사발

 

 

조선 중기의 학자 김일손(金馹孫)이 젊어 산사(山寺)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그가 띄운 편지 한 통이 장인에게 배달되었는데, 편지의 사연이 야릇하였다.

 

 

文王沒 武王出 周公周公 召公召公 太公太公

 

 

이를 현대어로 옮기면 이렇게 된다. “문왕(文王)이 돌아가시자, 무왕(武王)이 나오셨네. 주공(周公)이여 주공(周公)이여! 소공(召公)이여 소공(召公)이여! 태공(太公)이여 태공(太公)이여!” 예전 은() 나라가 임금 주()의 포학한 통치로 혼란에 빠지자, 제후였던 문왕(文王)은 어짊으로 백성을 다스려 모든 제후들이 그를 존경하여 따랐다. 그가 세상을 뜬 뒤에도 주()의 포학한 정치는 끝날 줄을 몰랐다. 이에 그 아들 무왕(武王)이 의로운 군대를 일으켜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웠다. 이때 무왕(武王)의 수레를 막고 출병(出兵)의 불가함을 막았던 이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이다. 이와는 달리 무왕(武王)을 보필하여 주()왕조의 기틀을 다진 세 공신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주공(周公)과 소공(召公)과 태공(太公)이다. 후세는 이 세 사람을 삼공(三公)’으로 기려 높였다.

 

다시 이런 역사 배경을 알고 다시 위의 편지를 읽어 보면, 어진 임금이 어진 임금의 뒤를 잇고, 다시 충직한 신하가 보필하는 아름다운 광경에 대한 찬탄이 된다. 그런데 산사(山寺)에서 공부를 잘하고 있던 사위가 뜬금없이 장인에게 보낸 편지치고는 왠지 괴이쩍다. 김일손은 과연 장인어른! 저 요즘 이렇게 열심히 중국 역사 공부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하려고 편지를 띄웠던가? 그런 것이 아니다. 문왕(文王)은 이름이 ()’이고 무왕(武王)의 이름은 ()’이다. 주공(周公)은 이름이 ()’이고 소공(召公)()’이다. 그리고 태공(太公)의 이름은 ()’이다. 이것을 음독(音讀)과 훈독(訓讀) 섞어 읽게 되면 요렇게 된다.

 

 

(신발) ()이 없어 발()이 나왔으니, 아침()마다 저녁(=)마다 바라고 바랍니다().

 

 

쉽게 말해 장인 어른! 신발 한 켤레만.” 이 위 편지의 진짜 사연이다. 맹랑한 편지를 앞에 두고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윽고 무릎을 친 장인은 두 말 않고 가죽신 두어 켤레를 산사(山寺)로 보냈다.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나오는 이야기다.

 

요로원야화기에도 이와 비슷한 장난시가 실려 있다.

 

大寒漢高祖 陶淵明不來 굉장히 추운 한고조(漢高祖)에게 도연명(陶淵明)은 오지를 않네.
欲擊始皇子 囊無項將軍 진시황(秦始皇)의 아들을 치고자 하나 주머니에 항장군(項將軍)이 없고나.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은 웬 때 아닌 추위에 떨고 있으며, 시대도 다른 도연명(陶淵明)은 왜 그에게 오질 않는가. 진시황의 아들과 주머니 속의 항장군(項將軍)은 또 무슨 관련이 있는가? 위 시는 이런 식으로 읽어서는 백 날 골머리를 썩여봐도 소용이 없다. 앞서 김일손의 편지를 읽는 것과 꼭 같은 독법(讀法)으로 해결해야 한다. 한고조(漢高祖)의 이름은 ()’이고 도연명(陶淵明)의 이름은 ()’이다. 시황(始皇)의 아들은 부소(扶蘇)’이고, 항장군(項將軍)의 이름은 ()’이다. 이를 풀어 다시 읽으면 위 시는 이렇게 된다.

 

 

대단히 추운 방(: 漢高祖)

(: 陶淵明)이 오질 않네.

부쇠(扶蘇: 始皇子. 부싯돌을 말함)를 치고자 하나

주머니에 깃(: 項將軍)이 없구나.

 

 

잠자리가 하도 추워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부시를 꺼내 불이라도 붙여 몸을 녹이고 싶은데 깃이 없으니 불을 붙일 도리가 없다는 타령이다.

 

 

김삿갓의 시 속에서도 이런 말장난의 예는 흔히 발견된다.

 

天長去無執 花老蝶不來 하늘은 길어 가도 잡을 수 없고 꽃이 늙으니 나비도 오지 않네.
菊秀寒沙發 枝影半從地 국화는 찬 모래에 곱게 피었고 나뭇가지 그림자 반쯤 드리웠는데,
江亭貧士過 大醉伏松下 강 가 정자를 가난한 선비 지나다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 엎어졌구나.
月移山影改 通市求利來 달이 옮겨가자 산 그림자 바뀌고 저자에선 를 구해 사람들 돌아오네.

 

김삿갓이 방랑의 길목에서 한 집에 묵어갈 것을 청하니, 주인은 난처해하다 천장에 거미집이 어지러운 골방으로 안내하고는 식사라고 내 온 것이 국수 한 사발에 간장 반 종지가 전부였다. 창가에 흘러드는 달빛을 보다가 바로 앞에 칙간에서 나는 구린내에 코를 막으며 그는 그날 밤 잠을 설치고 말았다.

 

그러나 위 시를 의미로 읽어 나가면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경상(景象)을 시간의 전개에 따라 옮겨 적은 것일 뿐이다. 면밀한 독자들은 혹 가다 부자연스런 한두 글자가 눈에 거슬린다고 느낄 것이다. 원시를 독음만 가지고 읽어보면 어떻게 되는가 보자.

 

 

천장엔 거미집, 화로에선 젓불 내음.

국수 한 사발에 간장 반 종지.

강정과 빈 사과, 대추와 복숭아

워리 사냥개, 통시에선 구린내.

 

 

시인은 이런 함정을 파 놓고 그럴듯한 포장을 해 놓고 독자들이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구전(口傳)도 있다.

 

草綠積雨裏 菊秀寒沙發 연일 내린 장마비에 풀은 푸른데 국화는 찬 모래에 곱게 피었네.

 

초록 저고리를 입은 아가씨가 시장한 길손에게 국수 한 사발을 내 오는 모습을 보고 지었다는 이야기가 덧붙어 있다. 독음으로 읽어보라.

 

조선 후기 신광수(申光洙)의 작품으로 알려진 다음과 같은 작품도 있다.

 

爾年十九齡 乃操持瑟瑟 네 나이 이제 열아홉인데 벌써 비파를 갖고 다루네.
速速許高低 勿難報知音 빠를젠 빠르고 높고도 낮게 지음(知音)에게 알리기 어렵지 않네.

 

문면 그대로 읽으면 열아홉 난 기생의 능숙한 비파 연주 솜씨를 감탄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원문을 독음으로 읽게 되면 섹스 장면에 대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노골적인 묘사가 되어, 그녀와 하룻밤 농탕한 잠자리를 청하는 농지거리가 되고 만다. 위에 해석해 놓은 것은 독자를 현혹하기 위한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장난치고는 고약하리만치 지나치다. 그러나 이런 유의 문자유희가 단지 시덥지 않은 장난질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樂民樓下落民淚 낙민루(樂民樓) 아래서 백성 눈물 떨어지니
宣化堂上先禍當 선화당(宣化堂) 위에 화()가 먼저 당하리라.
咸鏡道民咸驚逃 함경도 백성들 모두 놀라 도망 가니
趙基榮家祚豈永 조기영(趙基榮) 집안이 복이 어찌 오래 가리.

 

함경감사 조기영(趙基榮)이란 자의 탐학을 풍자 고발했다는 김삿갓의 시이다. 낙민루(樂民樓)와 선화당(宣化堂)은 실제 함경 감영 안에 있던 누당(樓堂)의 이름이다. 시를 독음으로 읽어 보면 각 구의 앞 세 자와 뒤 세 자가 독음이 같음을 알게 된다.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즐거워한다는 낙민루(樂民樓)에서 정작 백성들은 낙루(落淚)를 하고 있으니, 교화(敎化)를 선양한다는 선화당(宣化堂)에는 교화는커녕 재앙 밖에 닥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감사 조기영(趙基榮)의 토색질은 함경도민(咸鏡道民)함경도(咸驚逃)’ 즉 모두 놀라 달아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각각의 단어마다에 반어적 의미를 연결시킴으로써 서슬 푸른 풍자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인용

목차

1. 초록 저고리, 국수 한 사발

2. 장님의 단청 구경

3. 견우(牽牛)와 소도둑

4. 뻐꾹새 울음 속에 담긴 사회학

5. 선덕여왕의 자격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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